한면택 워싱턴 특파원 현장보고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못 막는 워싱턴 당파싸움

2020-08-10 11:08:06 게재

미국의 코로나19 사태 재악화와 불경기 추락을 최소화하고 하루 속히 재확산을 저지하며 경제를 반등시키는데 가장 절실한 게 1조달러 이상의 추가 경기부양책이 꼽히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10차례나 되는 협상에서도 합의에 실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를 건너뛰고 대통령 행정명령만으로 구호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서는 등 당파대결을 벌이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7월 2일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명령 서명 '실업수당과 감세' 등 일방통행 =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의회승인없는 일방적인 행정조치를 단행하고 나섰다. 워싱턴 정치권에서 10차례나 되는 지도부 협상에도 불구하고 주말까지의 합의에 실패하자 토요일인 8일 당초 예고했던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코로나 구호에서도 독자행보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대통령 행정명령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된 4가지 구호조치를 행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자신의 골프장인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서 4가지 조치를 담은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첫째, 3000만명의 실직자들이 7월 31일자로 상실한 연방실업수당을 주당 400달러로 축소 시켜 지급하는 조치를 취했다. 주당 400달러 가운데 25%인 100달러는 주정부들이 부담하도록 해서 연방차원의 실업수당은 기존의 600달러에서 300달러로 반감된다. 트럼프 행정명령은 재난구호기금 700억달러 가운데 440억달러를 배정하고 12월 6일까지 사용토록 했으나 단 5주동안 지급할 수 있는 규모로 계산되고 있다. 둘째, 연봉 10만달러 이하의 근로자들에게는 사회보장세 6.2%를 9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유예해줘 그만큼 급여인상 효과를 보도록 조치했다.

트럼프, 독자안 행정조치 서명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자신의 골프 리조트에서 코로나19 사태 관련, 실업수당 지급 연장 등 독자적인 지원책을 담은 행정조치에 서명하고 있다. 베드민스터 로이터=연합뉴스


셋째, 트럼프는 행정명령을 통해 렌트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세입자들이 강제로 퇴거당하지 않도록 연방차원에서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번 보호조치는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공공주택에 주로 해당되면서 4500만 세입자 가구 중에 1250만 가구에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학자금 융자의 상환을 연기할 수 있는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했다.

◆트럼프 조치 '속빈 강정', '가짜 감세' =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를 건너뛰고 대통령 권한만으로 종료된 연방실업수당을 되살려 지급하려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3000만 실직자들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받지 못한채 수개월 기다려야 하는 상황다. 이번의 트럼프 연방실업수당 주당 400달러는 7월 31일자로 종료된 600달러 프로그램과는 다른 것이다. 이 때문에 각주 정부들이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므로 실제로 실직자들에게 지급하기까지는 수주, 수개월이 걸릴 수 있어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의회에서 다수의 민주, 공화 양당의원들로 부터 일축 당했던 사회보장세 면제를 되살려 우선 9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유예하고 그다음 의회에서 면제를 추진한다는 방안을 담았다. 그러나 이 유예분은 고용주들이 원천징수를 중단해야 하고 2021년에는 다시 납부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재선되면 이 유예분을 완전 면제하도록 의회에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제 어떻게 될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가짜 감세로 불리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의 합의실패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인 행정명령을 끝내 발동함에 따라 미국민 1인당 1200달러씩의 2차 직접지원과 중소업체들에 대한 종업원 급여 무상지원(PPP) 프로그램은 늦춰졌다.

◆백악관-민주당 지도부 10차례 협상에도 합의실패 =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이 나오기전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간에 무려 10차례 협상이 벌어졌으나 당초 스스로 약속했던 데드라인인 주말까지의 합의에 실패했다.

백악관에서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마크 메도우스 비서실장과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상원대표는 거의 매일 협상을 벌여왔는데 지난 7일에는 90분간 무려 10번째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양측의 협상에서는 그간 최대 쟁점으로 알려졌던 연방실업수당 주 600달러를 되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 코로나 구호 패키지 규모를 놓고 대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도부는 하원에서 가결한 히어로스 법안이 3조4000억달러 규모이고 공화당이 상원에 상정한 힐스 법안이 1조달러인 만큼 중간선인 2조달러로 결정하자고 제안했으나 백악관측은 거부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주정부, 로컬정부에 9150억달러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백악관과 공화당은 1500억달러로 잡고 있어 전체 규모까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말 타결이 물 건너간 후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대표는 "백악관이 우리가 제안한 숫자에 가까워지면 언제라도 다시 만나자고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시 협상타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과 마크 메도우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민주당이 입장을 바꿔야만 협상재개와 타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므누신 재무장관과 메도우스 비서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행정명령을 발동해 연방실업수당 연장, 세입자 강제퇴거 중단 등의 지원조치를 단행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공개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참모들의 권고대로 8일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코로나 사태 재악화, 고용과 경제 회복 둔화 = 워싱턴 정치권이 다급한 코로나 구호 패키지 법안을 제때에 확정하지 못한 채 당파 대립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코로나19 사태는 계속 재악화되고 있고 그 여파로 미국경제와 고용의 회복속도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미국의 7월 실업률이 10.2%로 하락하고 일자리가 176만개 증가해 예상을 웃돌았으나 회복세는 크게 둔화되는 혼조를 보였다. 미국의 7월 실업률은 10.2%로 전달 11.1%에서 0.9%포인트나 대폭 하락했다. 7월 한 달간 미국경제에선 일자리를 176만개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150만개 증가를 내다본 월가 경제분석가들의 예상치를 웃돈 것이다.

하지만 7월의 10.2% 실업률과 176만개 일자리 증가는 최근의 회복세에서는 다시 주춤해진 것이다. 미국경제에선 5월에 270만개, 6월에는 480만개의 일자리를 회복시켰는데 7월에는 176만개 증가로 크게 둔화됐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재 악화되면서 고용시장에도 다시 찬바람이 몰아닥쳤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재개방에 돌입한 5월부터 6월, 7월까지 일자리가 많이 회복돼 실업률도 떨어지고 있으나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실업대란, 실직사태를 탈출하기란 매우 먼 길인 것으로 지적된다.

미국에는 아직 실직자들이 1630만명이나 있고 실업률도 코로나19 사태 직전 3.5%보다 3배나 높은 수준이어서 정상화까지는 극히 먼 길 인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의 재악화로 일터복귀가 지연되고 항구적으로 없어지는 일자리도 많아 미국 고용시장의 회복은 수개월, 수년이 걸릴 것으로 경제 분석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11월 대선과 연말에도 두자리수인 10%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