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7주년 기획-광장열기 뉴미디어로 확산 | ② 국민이 '직접' 말한다

인터넷에 쏟아진 '국민청원', 청와대에 공론장 만들었다

2020-10-20 11:52:54 게재

신분 노출 없이 입법·사법·행정 업무 건의

3년동안 87만건 청원, 1억5088만명 동의

청와대 "국민이 분노 털어놓는 것도 민심"

청와대 '국민청원'은 유권자들이 자신이 뽑은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할 수 있는 대나무숲이 됐다. 2016년 10월부터 시작한 촛불의 힘으로 만들어진 문재인정부의 대표 상품이 되기도 했다.

'푸른 기와집'인 청와대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1987년으로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2002년 '탈권위'의 노무현 대통령 등장 이후 조금은 대중과 가까워졌지만 '베일에 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은 다시한번 '불투명한 권력'으로 회귀해 있는 현위치를 보여줬다.

세월호 유가족 "진상규명 위한 청원 동참해달라"│세월호 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해 '4.16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13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 처리 청원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주 = 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100일째인 2017년 8월 19일에 '국민청원'을 도입하면서 '듣는 대통령'으로 시작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권한이 쏠려 있는 대통령이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모토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며 문턱을 낮춰놓았다.

◆문턱 확 낮췄다 = 애초부터 국민청원은 온라인으로 본인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쏟아내도 괜찮은 곳으로 지정했다.

청원법에서는 반드시 본인을 확인하고서야 청원에 참여할 수 있지만 '국민청원'은 예외다. 국민청원은 법적 효력이 있는 청원이 아니다. 대통령의 의지일 뿐이다.

국민청원은 따라서 문턱을 크게 낮췄다. 사회관계망(SNS, 소셜네트워크시스템)을 통해 인증이 가능하도록 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도한 'e 국민청원'인 '위더피플'이 이름과 주소를 통해 로그인을 하고 계정을 만들어야 하는 것에 비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청와대는 2019년 1월 8~18일까지 7만7321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실명제와 도입과 관련, '필요하다'는 의견이 63.3%로 '불필요하다'(36.7%)는 의견을 크게 앞질렀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인터넷의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어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는 이유였다. 청원법 등 법적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인터넷을 통한 의견개진으로 봤던 것이다.

또 2019년 3월 31일 전까지는 국민청원 사이트에 노출하기 전에 필요한 사전동의단계가 없었다. 청원이 인터넷에 올라가면 곧바로 일반인의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한 달(30일)에 20만명의 동의를 얻으면 정부 관계자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답변자로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나서거나 장관이나 청장이 되기도 했다. 실제 결정과 집행이 가능한 직급과 직책을 가진 정부 관료가 국민 앞에서 상황인식과 견해, 향후 조치 계획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계까지 상세히 밝혀줬다.

'위더피플'이 적용했던 '답변 불가 원칙'도 없앴다. 게다가 원칙적으로 동의기준이 충족된 후 한 달 이내에 답변을 주도록 했다.


◆화 푸는 곳? = 국민청원에는 단순 화풀이 청원도 올라왔고 행정부 외에도 입법부, 사법부 등과 연결돼 있는 법개정, 재판에 대한 의견까지 제시되면서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애초 국민청원은 무엇이든 물어보고 제안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됐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국민청원 기획자인 정혜승 뉴미디어 비서관은 2018년 인터뷰에서 "온라인 공간이 원래 자유로운 의견이 오가는 열린 공간"이라며 "국민의 놀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 장난스럽고 비현실적인 제안도 이 공간에서는 가능하고, 국민들이 분노를 털어놓을 곳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분노를 털어놓는 것도 역시 민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용이 항상 정제될 수는 없고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며 "청원이든 어떤 방식이든, 공론장에 참여하고 민주주의의 직접 주체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경험해보시길 바란다"고 했다. "청원이라는 공론장을 함께 지키고 키워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도 했다.

◆급증하는 국민청원 = 국민청원에 대한 국민 참여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7년 8월 19일~2020년 7월 31일까지 약 3년간의 국민청원 실적을 보면 87만건의 청원이 게시됐고 1억5088만명의 청원 동의가 이뤄졌다. 매일 817건의 청원이 이뤄지고 14만건의 동의를 받았다. 방문자는 31만명이었다.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189건으로 한 달에 5건에 달했다. 답변이 이뤄진 청원은 178건이었다.

국민청원 참여를 수치로 보면 국민청원 사이트 방문의 경우 1년차(2017년8월19일~2018년7월31일)엔 6680만명이었고 2년차(2018년8월1일~2019년7월31일)와 3년차(2019년8월1일~2020년7월31일)엔 각각 1억1008만명. 1억6148만명이었다. 동의건수는 1년차 3874만건에서 2년차엔 4564만건, 3년차엔 6649만건으로 급증했다.

오바마정부였던 2011년 9월~2016년 12월까지 위더피플에는 약 48만여 건의 청원이 접수됐고 2900만명이 이용했으며 동의에 참여한 사람은 4000만명이었다. 268건의 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이중 227건에 대해 정부가 답변했다. 청와대는 정기적으로 국민청원 빅데이터를 분석, 정책에 참고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미국의 위더피플 사례를 통해 살펴본 청와대 국민청원의 개선방안'보고서를 통해 △삼권분립 등에 따라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권한 밖에 있는 권한(입법권, 사법권 등) 행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많다는 점 △특정 집단이나 인물에 대한 과도한 비난성 청원이나 무분별한 청원, 혐오적 표현을 담은 청원 등을 지적하면서도 "청와대 국민청원은 기존의 문서 중심의 청원제도에 비해 접근성이 뛰어나고, 청원 내용에 동조하는 여론 형성을 손쉽게 할 수 있으며 일정 수 이상이 동의를 받을 경우 정부 당국이 답변을 해 시민들의 청원 효능감을 증진시켰다"고 평가했다.

["[창간27주년 기획] 광장열기 뉴미디어로 확산"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