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정책심의회 정책 총괄·조정기능 작동 멈췄다

2020-12-09 11:09:30 게재

지원사업수 4년만에 30.2% 증가 … 부처별 유사·중복·비효율 심각

부처 조직이기주의로 한계 보여 … "국무총리 소속으로 격상 필요"

중소기업 지원사업수가 크게 늘었다. 덩달아 예산도 증가했다.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10여년 전부터 제기돼온 정책의 유사·중복과 비효율성이 더 심해졌다.

중소벤처기업부 출범 후 정책 효과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신설된 중소기업정책심의회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부여한 중소기업 업무의 총괄·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탓이다.


국회와 중소기업 전문가들 사이에서 "시급히 중소기업정책 추진체계를 정비해 정책 효과와 예산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최근 중소기업 관련 사업과 예산이 크게 증가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중소기업 지원사업수는 1754개다. 2017년(1347개)보다 30.2%가 증가했다. 사업예산도 올해 26조1406억원으로 4년전(16조5808억원)보다 57.7%(9조5600억원)가 늘었다.

중앙행정기관은 20개 부처에서 439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예산은 23조1862억원으로 전체 사업예산의 88.7%를 집행하고 있다.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는 2조9544억원의 예산으로 1315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각 부처별로 지원사업 우후죽순 = 문제는 사업과 예산이 크게 증가하는데 검증과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각 부처가 중소기업 지원사업을 협의와 점검없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유사·중복 사업이 발생하고 있다. 지원사업이 복잡하고 다양해 정책 수요자인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다.

이런 문제는 10여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중소기업계와 전문가들은 유사·중복 사업의 통·폐합을 꾸준히 요구했다. 국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비효율성 개선을 주문했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에 나섰다. 2018년 중기부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유사·중복 여부를 점검하고 지원 효과를 높이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정부 부처는 일부 사업의 통폐합을 진행했다. 하지만 생색내기에 그쳤다.

현재 사업수는 더 늘어났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정부와 지자체의 창업지원사업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유사·중복 개선과 합리적인 역할 분담을 통한 효율성 제고 방안 마련'을 다시 요구했다.

이는 중기부 출범 후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총괄조정 기구로 설치한 중소기업정책심의회가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총괄조정기능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경만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은 지난 10월 중기부 국정감사에서 "중소기업 정책자금 기획부터 집행까지 책임질 총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 지원기관 간 역할분담이 불명확하고, 절차가 중복되는 등 종합적인 컨트롤타워(총괄조정 기능) 부재로 인해 비효율성이 심각하다는 주장이다.

같은당 이성만 의원(인천 부평구갑)도 국감에서 "중기부가 타 부처의 중소기업 관련 예산편성에서 중복사업 등을 사전에 검토하고 의견을 내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중소기업정책의 총괄·조정기능 부재를 지적했다.


◆부처 차관들 첫 안건부터 반대 = 현재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기구는 중소기업정책심의회다. 중소기본법에 명시돼 있다. 위원장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맡는다. 위원은 정부위원(부처 차관)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르면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장은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신설·변경 시 타당성, 기존 제도와 중복성 여부, 수혜자 선정, 운영방안 등을 중기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소기업정책심의회에서 조정한다.

중소기업정책심의회는 제3차 회의까지 열렸다. 하지만 중소기업정책심의회는 정부부처의 조직이기주의에 막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2019년 4월에 열린 1차 회의부터 삐걱거렸다. 첫번째 안건은 '중소기업지원예산 효율화 방안'이었다. 핵심 내용은 통합관리시스템 활용한 중소기업 지원사업 평가와 신설·변경사업 사전협의제 도입이다.

민간위원들은 적극 공감하며 지지했다. 반면 정부위원들은 반대 의견을 냈다. 각 부처에서 시행하고 있는 업무와 중복된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위원들은 자기가 속한 부처 입장만 반복할 뿐이었다.

당시 민간위원으로 참석한 인사는 "안건은 이미 각 부처와 협의해 올라 온 것인데도 반대하는 건 조직이기주의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이와함께 법적 제도적 기반도 미흡하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사업 평가와 협의 결과가 예산으로 연결되지 않고 총괄조정기능의 이행 강제력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조직법에도 중기부 관장 사무에 중소기업 정책의 총괄조정 내용이 빠져있다.

최근에는 정부 스스로 중소기업정책심의회 기능을 무시하기도 했다. 정부가 2년간 600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추진한 것이다.

◆타 조직과 핵심기능에서 차이 = 중소기업계와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총괄조정 기구의 위상 제고를 요구했다.

노민선 단장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위원장인 중소기업정책심의회를 국무총리 소속의 중소기업위원회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며 "중앙안전관리위원회와 사회보장위원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안전관리위원회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도 중소기업정책심의회와 동일한 정책총괄 기능을 하는 기구다.

하지만 핵심 기능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행정안전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실무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 중소기업정책심의회는 위원장이 중기부 장관으로 각 부처의 이해를 조정하기에는 벅찬 상황이다.

예산 심의기능에서도 차이가 난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연구개발(R&D) 총괄)와 중앙안전관리위원회(재난 및 안전 총괄)에는 관련 법에서 예산심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중기정책심의회에는 예산심의 기능이 빠져 있다.

지난 2일 열린 '중소기업 정책 총괄·조정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예산과 연계돼야 중소기업정책의 총괄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며 "조달 등 비예산 중소기업정책도 함께 심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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