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각지대' 국회, 2년여 방치한 인권센터 설립 재추진

2021-01-26 10:59:34 게재

2018년 국회 내 성폭력 확인하고도 덮어버려

의장직속 자문위 가동 … 상반기 중 계획 확정

2018년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이후 쟁점으로 부상했다가 잠잠해진 국회 인권센터 설립이 재추진된다. 특히 최근 정치권의 성폭력 관련한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국회내에 성폭력 신고, 상담 등을 담당한 인권센터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2년 여 전에 추진했을 때에 인권센터에 조사권 부여 등에 논란이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 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국회의장 직속 성평등 국회 자문위원회가 발족, 인권센터 설립에 대한 논의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6개월동안 빠르게 검토해 기구설립을 위한 직제개편안과 구체적인 역할과 권한 등을 확정하고 내년 예산안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눈물 닦는 배복주 부대표 |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왼쪽)가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오른쪽은 정호진 대변인. 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성평등 자문위는 "성평등 국회 실현을 위한 의회 운영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갖고 이달부터 6월까지 6개월간 가동된다. 첫 회의는 이달 27일로 예정돼 있다.

이미경 자문위원장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자문위 운영기간이 짧아 많은 주제를 다루기 보다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주제로 압축하려고 한다"면서 "인권센터 설치를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각 정당에서는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가능성이 높고 드러냈을 경우 잘했다고 하기 보다는 비난이 거세질 수 있다"면서 "국회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희 부의장은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 부의장 공약 중 하나가 '성평등한 국회'"라며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성희롱 성폭력이나 갑질도 굉장히 많다고 한다. 제대로 상담도 하고 상담 받고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가칭 '국회인권센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근무상 불이익, 갑작스런 해고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인권센터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인권 사각지대' 국회 의원회관 = 국회 의원회관은 인권 사각지대다. 상하관계가 뚜렷한데다 채용과정이 철저하게 의원이나 상급 보좌관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성공회대 연구팀이 국회 윤리특위의 용역을 받아 국회의원과 보좌진 2750명에게 설문지를 배포해 회수한 923명의 대답을 분석한 결과 성희롱 피해자는 99명에 달했다. 이중 7급 이하가 71.1%였다. 심한 성추행을 입은 피해자는 13명, 강간미수 피해자 1명, 강간 및 유사강간 피해자는 2명 등이었다. 가해자는 6급 이상이 56.0%로 최고위급 보좌관인 4급이 21명으로 30%를 차지했다. 국회의원 8명도 가해자 명단에 들어갔으며 이중 2명은 가벼운 성추행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후 국회는 전혀 추가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8일 국회 사무총장 직속으로 국회인권센터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사무처 직제 일부 개정규칙안'은 운영위에서 잠자다 폐기됐다. 인권센터 설치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부실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센터의 조직에서의 위치, 국회의원·보좌진에 대한 유효한 조사, 징계 절차 방식 등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국회 직원이 국회 보좌진이나 국회의원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문제제기도 나왔고 국회의원들이 이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국회의원 조사는 국가인권위에 넘기는 등의 절차에 대한 세부 조항도 필요했다. 국회사무처가 구상한 인권센터는 2명의 인권전문가로 구성되며 국회의원과 직원을 대상으로 성 인권을 포함한 인권 전반에 대한 고충 상담·중재·조사, 상시적인 인권관련 교육 및 인권침해 예방 업무, 성폭력·성희롱 및 직장 내 괴롭힘 비위사건에 대한 조사 참여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러나 결국 국회사무처는 인사과에 1명의 전문임기제 공무원을 두는 데 그쳤다. 2018년 11월에 개소한 성희롱 고충 및 심리상담실은 국회의원회관 5층에 위치해 있으며 국회의원 보좌진(별정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국회 지원기관(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도서관)에 근무하는 국회 공무원들의 심리상담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배정된 공무원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임상심리전문가)다. 성폭력 전담인력이 이닌 셈이다.

주요 내용도 성폭력과 관련한 사안(지난해 6월말 현재 35건, 7.1%)은 미미하며 주로 마음건강(30%), 대인관계(16.7%) 상담에 치우쳐 있다. 물론 여기에도 성추행 등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애초 계획한 인권센터와는 크게 거리가 있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평가다.

◆독립적인 인권센터 필요 = 인권센터의 독립기구화도 주요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애초 사무처가 생각했던 규칙안에는 "국회의원, 국회직원들의 인권 보호 및 인권의식 증진을 위해 독립된 기구"로 명시하고는 '사무총장 직속'으로 두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운영위에 제출될 때는 '과장급 기구'로 낮춰 잡았다. 앞의 성공회대 연구진은 "독립기구가 아니면 제대로 조사할 수 없으며 성폭력 등의 문제는 2차 피해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영역으로 전문가의 대응이 절실하다"면서 "실태조사에서 나온 개선방안으로 가장 많은 게 '강력한 가해자 처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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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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