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논란-학교폭력
'학폭' 터질 때만 땜질 … '실효성 없어'
체육계 폭로 잇따르자 과거 대책 '재포장' … 원격수업으로 '사이버폭력' 늘어
최근 체육계 학폭사건 폭로가 잇따르자 정부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방안을 제시했다. 폭력을 저지른 학생은 운동선수로 성공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제4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학교운동부 폭력 근절 및 스포츠 인권보호 체계 개선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가해자 무관용 처벌과 영구퇴출, 피해자 법률상담 지원 등을 제시했다.
또 운동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도록 유·청소년 주말리그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중에 개최되는 종목별 대회도 가급적 주말로 전환시킨다는 내용이다. 주말리그 확대 방안은 지난 정부에서도 제시했던 방안이다. 사고가 터지자 과거 정책을 모아 새로 포장한 셈이다.
이런 방안에 대해 현장에서는 체육계에만 맞춘 정책이라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구체적인 학교폭력 예방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교육부와 체육계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인성교육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을 제시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운동부 폭력이 여전히 대물림됐고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교육부가 제시한 정책은 시도교육청의 벽을 넘지 못했다. 현상만 보고 마련한 응급처방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증거를 찾을 수 없는 경우 피해자들은 2차 피해로 역공을 당하기 쉽다.
교육부는 합리적 실적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학교 현장에 스포츠과학 훈련방식을 확산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정책에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다.
◆체육계 폭력, 원인은 침묵의 카르텔 = 체육계 폭력이 지속되는 이유는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 때문이다. 선수 생활을 접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폭력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원인이다.
과거 운동부는 공부는 접고 운동에만 매진했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면 평생 먹고산다는 공식이 통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하늘이고 구세주가 된다. 감독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재개약이 어렵다. 성적이 떨어지거나 시합에서 지면 폭력이 앞서는 구조다.
'운동은 맞으면서 배운다'는 근거 없는 논리가 대를 이어 지속되는 이유다. 성적이나 상납구조가 부실한 선수는 왕따까지 당한다. 체육계 폭력은 선후배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감독과 선수, 감독과 학부모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자식의 미래를 위해 참고 넘어간다는 게 경험자들의 진술이다.
경기도 한 고교 체육교사는 "유도나 레슬링, 태권도 같은 개인종목의 경우 감독과 심판의 카르텔이 학생 선수의 미래를 좌우한다"며 "이 과정에서 금품상납과 술 접대는 비일비재하고 때로는 성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쉬쉬하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학생 선수 6만여명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조사를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응답자 14.7%가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체육계 특성상 실제로는 더 많은 선수가 폭력을 경험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대학 선수들은 신체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비율이 32%나 됐다. 초중고 선수의 2배가 넘는다. 한국체육대학 관계자는 "유년 시절 경험한 폭력이 성인이 돼서 분출하는 것"이라며 "가해자 피해자 모두 운동으로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실행 가능한 예방교육 내놔야 = 학교 폭력은 피해자들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가해자가 운동부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체육계 폭력 근절을 위해 엘리트체육을 국민정서에 맞는 생활체육으로 바꾸고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십년간 지속된 엘리트체육 교육과정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교수사회의 기득권과 카르텔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경우 엘리트체육을 내려놓고 생활체육으로 전환한 지 오래다. 독일 스포츠 클럽의 경우 생활체육에서 선수발탁이 이루어진다.
대구 영남대 한 심리상담 전문의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우울과 불안, 예민함 등의 피해를 공통적으로 호소한다"며 "특히 지속적인 피해 학생들의 경우 자아 존중감이 낮아지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폭 피해 경험은 타인에 대한 경계나 신뢰 결핍으로 이어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이나 SNS 무기로 등장 = 코로나19로 원격학습이 늘어나면서 신체 폭력은 줄고 사이버 폭력이 늘어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과거와 달리 스마트폰이나 SNS 등이 주요 무기로 등장한 것이다.
최근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중 사이버폭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8.7%, 2019년 8.9%, 2020년 12.3%로 증가했다. 폭력 피해장소가 학교 밖인 경우 2019년 25.1%, 2020년 35.7%로 대폭 늘었다.
올해도 학교폭력 '사각지대'와 생활지도 공백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교육청이나 학교는 근본적인 원인도 모르고 학생 생활지도 현황 파악도 못하고 있다. 학교현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전무하다.
경기도 수원시 한 중학교 상담교사는 "학교폭력은 점차 교묘해지는데 오프라인에 익숙한 교사들이 사이버 폭력을 조사하는 건 쉽지 않다"며 "문제가 불거지면 증거를 없애버리고, 새로운 공간에서 비난이나 왕따 등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 폭력이 외국 사이트에서 벌어진 경우라면 조사하기는 더 어렵다. 가해댓글이나 게시물을 지워버릴 경우 수사기관도 조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에서 사이버폭력을 따로 분리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사이버 폭력은 피해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학폭 피해자 중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례는 11%에 달한다.
[관련기사]
▶ 사이버 어울림교육, 사이버 폭력 잡는다
▶ 요즘 '메이커 교육'이 뜨는 이유
▶ "분리·처벌하기보다 관계회복에 무게둬야"
▶ [2020년 바뀐 학교폭력 처리 절차] 주관부서 바뀌고 기록기준 완화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