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 10년, 일본 원전 혼돈의 미래

2021-03-08 12:38:32 게재

민주당정권 “2030년 원전가동 제로”에서 자민당정권 “원전비중 20~22%”로 선회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지방 앞바다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대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의 영향으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일본정부는 이듬해 모든 원전의 가동을 일시정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당시 민주당정권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2012년 9월 ‘2030년 원전가동 제로’를 선언했다.

일본정부는 올해 국가의 에너지정책 기본방향을 담은 ‘에너지 기본계획’을 개정한다. 기본계획 개정을 앞두고 정치권과 산업계, 학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원전의 미래에 대한 공방이 한창이다. 민주당정권이 원전 제로를 선언했지만, 현 자민당정권은 2030년 전력생산에서 원자력 비중을 3배 이상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후쿠시마 원전폭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자력사고등급 기준으로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레벨7’에 해당하는 판정을 받았다. 그 이후 10년간 일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원전에 대한 공포감 확산 및 규제 강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일본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 ‘원전신화’가 깨지고 ‘원전공포’가 확산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에서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나면서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해양으로 대량 누출된 전무후무한 원전사고는 일본인은 물론 세계 각국에 충격과 공포감을 줬다.

일본원자력문화재단이 해마다 벌이는 조사에 따르면 원전사고 이후 일본 국민의 원전에 대한 여론은 악화했다. 2010년 ‘원전에 대해 불안하다’는 대답은 45%였지만 2019년에는 55%까지 증가했다. 최근 원전에 대한 일본 국민의 위기감이 다소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도 있지만 사고 이전에 비해서 높은 불안감은 여전하다.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당시 민주당정권은 2012년 5월 전국적으로 원전의 일시적인 가동중단을 단행했다. 또 원전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원전가동에 관한 기준의 엄격화 △재생에너지 고정가격 매입제도(FIT) 도입 △가정용 전력 거래 전면 자유화(실제 시행은 2016년) 등 공급구조를 크게 바꾸는 정책을 실시했다.

특히 2012년 9월 내각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던 ‘원자력안전보안원’을 폐지하고, 독립기구인 ‘원자력규제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강력한 감독체계를 마련했다. 규제위는 이후 2013년 7월 원자력 안전기준과 사고대책 등을 강화하는 새로운 규제 기준을 시행하면서 가동 중단된 원전의 재가동 및 신규 건설에 강력한 방어장치를 작동했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에 따르면 올해 2월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 6기 등 전국적으로 24기가 폐쇄돼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2015년 원전 일시중단 이후 처음 가동이 재개된 가와우치 원전 1호기 등 9기가 규제위의 허가로 재가동이 가능하지만 실제 가동중인 곳은 4기에 불과하다. 이밖에 11기는 신규 허가기준에 따라 가동여부를 심사중이다.

에너지정책의 변화는 일본의 경제 전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자원에너지청이 2020년 발표한 ‘에너지백서’에 따르면, 2010년 연간 총 전력생산량은 1조1495억kWh에서 2011년 1조902억kWh로 줄어든 이후 2018년에는 1조512억kWh까지 줄었다. 전력소비 감소는 더 가팔랐다. 2010년 1조354억kWh에서 2018년에는 8.7% 줄어든 9457억kWh까지 떨어졌다.

전력생산 구조의 변화 및 경제적 충격

지난 10년간 전력생산 원천도 크게 바뀌었다. 원자력 비중은 2010년 25.1%에서 2019년에는 6.2% 수준으로 급감했다.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등 화력발전은 같은 기간 65.4%에서 76.8%로 늘었고, 재생에너지 비중도 9.5%에서 18.0%로 증가했다.

에너지 자원에서 화석연료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일본의 무역수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본 재무성이 발표하는 ‘무역수지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2010년 5조3000억엔의 무역수지 흑자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한 2011년 4조4000억엔의 적자로 전환한 이후 2012년(8조2000억엔)과 2013년(13조 8000억엔)까지 적자폭이 급증했다.

무역수지 적자의 최대 원인은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의 수입증가가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실제로 2011년 전체 무역수지 적자(4조4000억엔)에서 광물성연료의 적자폭은 5조엔으로 전체 무역적자 규모를 웃돌았다. 2012년과 2013 년에도 광물성연료의 적자폭은 각각 6조6000억엔과 9조8000억엔으로 무역수지 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일본의 무역수지가 이후 흑자와 적자를 넘나드는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에너지 수입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화석연료 수입액은 2010년 17조4000억엔에서 2011 년 21조8000억엔으로 급증한 이후 2014년 27조7000억엔까지 증가했다. 원전 재가동이 이뤄진 2015년 18조2000억엔으 로 줄었고, 2016년에는 12조1000억엔까지 감소했다.

일본 국제통화연구소는 2018년 무역수지가 다시 적자로 전환한 것과 관련 “원유와 액화천연가스를 비롯해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라며 “에너지 가격의 변동에 따라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2018년 일본의 화석연료 수입액은 19조3000억엔으로 2017년(15조8000억 엔)에 비해 크게 늘었다. 무역수지도 1조2000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정부의 원전 정책은 자민당 재집권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자민당정권은 2014 년 ‘에너지 기본계획’을 개정하면서 “원자력발전은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라고 규정해 필요성을 인정했다. 2015년도에는 2030 년까지 전력원 구성에서 원자력 비중을 20~22%로 늘리겠다고 결정했다. 2030년 까지 ‘원전가동 제로’를 선언한 민주당정권의 방침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자민당 정권의 돌변과 원전 증설론 대두

아사히신문은 7일 “탈탄소 정책의 뒷면에는 원자력발전 복권을 획책하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지난 10년 동안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정책은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0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실질적으로 제로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후 원전 확대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12월 ‘그린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원자력 의존도를 가능하면 낮춰나가면서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필요성을 재차 언급했다. 이처럼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움직임에는 경제산업성을 중심으로 한 관료집단과 기존 거대 전력회사 등 원전 관련 업체, 일부 전문가들의 분위기 조성이 한몫하고 있다.

에너지 기본계획을 주도하는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말 개최한 심의회에서 도요타 마사카즈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 이사장은 “원자력발전의 신규 증설을 준비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오치 히토시 게이단렌 부회장은 지난달 경제산업성 자문회의에서 “원전이 안정적 공급과 경제성, 환경적 측면에서 우수하다”면서 “장기적으로 신규 건설이 없을 경우 관련 산업의 기술과 인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원전 재가동과 신규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재생에너지 관련업체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전국소비자단체연락회는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며 “현재 18% 수준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에는 5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를 판매하는 ‘민나 전력’ 미야케 세이야 전무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에너지정책 대전환의 호기였는데 이를 살려나가지 못한 10년이었다”며 “기술자 입장에서 보면 비약적인 기술혁신이 없어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40% 정도까지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후쿠시마 원전사고 10년을 맞아 안전성 문제도 논란이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지난 4일 ‘2011~2021년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의 현실’이라는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총 32번의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본정부가 특별 제염구역으로 설정한 지역의 대부분이 여전히 방사성 세슘으로 오염돼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6일 후쿠시마 제1원전 지역을 방문해 “(오염수 처리와 관련) 적절한 시기에 정부가 책임을 갖고 처리 방침을 결정하고 싶다”고 말해 방류 강행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일본 NHK가 지난해 11월 국민 2300여명을 조사한 결과,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반대하는 의견(51%)이 찬성(18%)을 크게 웃돌았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백만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