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분담금, 결국 미국 뜻대로

2021-03-11 11:00:46 게재

2021년 13.9% 증액, 다년협정 … 달라진 안보상황 반영 못해 부담 키워

한미가 최근 합의한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정의 실제 내용이 공개됐다. 10일 외교부에 따르면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간 적용되며 협상이 불발됐던 지난해는 동결돼 1조389억원이다. 2021년은 13.9% 증가했는데 역대 최고였던 2002년 5차 협정의 25.7%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2022년부터 2025년까지는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을 반영해 인상하기로 했다. 새롭게 추가된 대목이다. 국방부의 '2021∼2025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5년까지 국방예산은 연평균 6.1% 증가하며 2021년 국방예산은 5.4% 증가로 이미 확정됐다.


따라서 2022년 분담금은 전년도 국방예산 증가율인 5.4%만큼 증가한 1조2472억원이 된다. 향후 국방중기계획의 국방예산 증가율 6.1%를 가정하면 2025년에 1조4896억원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5년 만에 43% 인상되는 셈이다. 증액의 상한선을 두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과거 8차(2009∼2013년)와 9차(2014∼2018) 협정 땐 전전년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되 연간 인상률이 4%를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이를 통해 저물가 시대에는 연간 인상율이 1% 안팎에 머물고, 고물가가 되더라도 상한선을 둬 금액이 급증하는 것을 막는 장치를 뒀지만 이번에는 사라졌다.

만약 또 다시 트럼프 행정부와 같이 노골적이고 무리하게 증액을 요구하는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절충안으로 국방비 증가율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지만 우리로서는 상당한 지출증가로 귀결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이번 합의안을 놓고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동맹을 복원하고 불확실성에서 벗어난 점은 성과로 평가된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내 방위비 인상폭을 두고 기싸움을 반복했던 한국 측으로서는 향후 다년협정을 통해 향후 5년 동안 안정성을 확보한 점을 다행스럽게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은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거칠고 무리하게 미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복원이라는 미명아래 여전히 자국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세종연구소 김정섭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1월 22일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가 동맹 복원을 강조한다고 해서 방위비 협상에서 대폭 양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은 독일이나 일본 등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분담정도는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은 18.6억달러, 한국은 8.5억달러, 독일은 5.9억달러를 분담하고 있어 절대 규모 면에서는 일본, 한국, 독일 순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 규모(GDP) 대비 분담금 비중으로 보면 한국이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0.052%로서 일본의 0.037%, 독일의 0.015%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능력 대비 한국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분담하는 셈이다. GDP 대비 국방비 수준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2.4%에 이르고 있어 1%대 수준인 일본과 독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또다시 국방예산에 연동한 분담금 상승률에 합의한 것은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지우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주한미군의 숫자는 크게 줄어든 반면 우리정부가 해마다 미군의 첨단무기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1991년 최초 방위비 분담을 시작할 때 지원금 규모는 1.5억달러였는데 지난 30여년 동안 약 6.2배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주한미군 규모는 4만여명에서 지속 감소해 현재 2만85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10년 간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무기도입 비용만 27.6조원(244억달러)에 이르며 기타 각종 무상지원까지 포함하면 수조원을 넘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달라진 안보환경이 제대로 반영됐는지 여부가 여전히 의문시 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달리다보니 하루빨리 협상을 마무리 짓는 쪽에만 관심을 쏟았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종대 전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비용을 실사해서 필요한 만큼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단 총액부터 합의하여 챙기고 보자는 게 미국의 접근방식"이라며 "총액이 증가하니까 미 국무부는 기쁜 나머지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이라고 잔뜩 치켜세우고, 그 다음에 이 공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찾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한미 방위분담금 협정에 맞는 사용처를 찾지 못하면 은행에 쌓아두고 이자수입을 올릴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해 왔다. 우리 국민들에게 이번 협상이 뭐가 잘 된 협상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권영근 국방개혁연구소장도 이번 합의에 대해 "일본 경제가 한국경제의 3배 수준이며, 주일미군 병력 5만4000명은 주한미군 병력의 거의 2배 수준"이라며 "이는 국가 경제력과 주일미군 병력수만을 고려하는 경우에도 한국은 일본이 매년 지불하는 방위비분담금의 1/6 수준을 지불함이 적합할 것이란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분담금을 거의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한국은 13.9%를 인상하고 방위비 증액까지 약속한 것은 부당할 뿐 아니라 한미동맹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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