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인 이야기│(42) 이재철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정부 확인 피해금액이라도 지원"

2021-04-14 11:17:06 게재

7860억원 중 2362억원 미지급 … "피해기업에 대한 이자놀이도 중단해야"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5년이 지났다. 박근혜정부의 일방적 폐쇄는 남북평화 공존의 공간을 무너뜨렸다. 개성공단기업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줬다.

문재인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북미와 남북 관계는 다시 냉랭해졌다. 마침내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개성공단기업의 꿈도 TNT에 무너져 내렸다.
지난 8일 이재철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이 서울 여의도 협회사무실에서 활동계획을 설명했다. 사진 김형수 기자


한순간에 생산공장을 두고 몸만 빠져 나온 기업들은 살기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켰다.

속칭 나 하나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개성공단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이재철 제씨콤 대표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제9대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에 선출됐다.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추대됐다.

지난 8일 만난 이 회장의 첫마디는 개성공단기업의 고통이었다.

"기업들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정부가 판단해 폐쇄한 만큼 피해기업이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 회장의 호소처럼 125개 입주기업 중 5개 이상은 폐업했다. 20여곳이 휴업 중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월 내놓은 '개성공단 가동중단 5주년 입주기업 조사'에 따르면 입주기업 10곳 중 7곳 이상(76.6%)이 2015년 대비 2020년 매출액이 감소했다. 특히 매출액 50억원 미만 소기업은 76.1%나 줄었다.

기업인이 세상을 등진 상황도 발생했다. 최근에도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게 식자재를 공급하던 기업인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그는 공단이 폐쇄되자 인테리어업, 그림 판매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었다.

많은 기업인들은 신용불량자로 추락했다. 일당 일거리 찾아 전전하거나, 택시 대리기사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의류업체 대표는 베트남 투자 실패로 연락이 끊겼다.

이 회장은 "정부가 확인한 피해금액만이라도 우선 전액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부정책 실행으로 입은 피해는 마땅히 보상해줘야 하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 기업부터 살리자는 절규인 것이다.

협회가 조사한 125개 입주기업의 실질적 피해액은 1조5404억원에 달한다. 반면 정부가 회계법인에 의뢰해 산출한 입주기업 피해액은 7860억원이었다. 협회가 산출한 액수의 51% 수준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정부는 전액 지원하지 않았다. 두차례 정부 지원금은 5498억원으로 정부 확인금액에 2362억원이 모자란다.

정부대출금 이자 감면도 요구했다. 이 회장은 "정부정책으로 피해를 본 기업에게 정부가 이자놀이를 하는 게 말이 안된다"며 목소를 높였다. 정부대출금을 받은 기업들은 한국수출입은행 1.5%,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2%의 대출이자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5년간 공단폐쇄로 그나마 도움됐던 정부지원이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 개성공단기업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인 셈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 재개와 정상화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응답기업의 91.9%는 개성공단 재입주를 희망했다. 남북경협 재개를 대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는 '정부 정책결정에 대한 피해보상 근거 마련'을 꼽았다.

이 회장은 기존 경협보험이나 남과 북이 합의해 만들었던 법, 제도 등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다. 향후 개성공단이 재개될 때 다시는 이번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가 국제규범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2016년에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에 대한 위헌 여부 심판 결정이 조속히 내려질 수 있도록 여론조성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개성공단에 두고온 공장, 설비 등을 확인하기 위한 방북도 통일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방침이다.

이 회장은 "기업인들이 개성공단을 방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회장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게 있다. 개성공단이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개성공단이 잊혀진 존재가 됐다. 개성공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개성공단 없는 한반도 평화번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절대 잊혀져서는 안된다." 그의 목소리는 젖어들었다.

그는 지금도 가끔 북한근로자가 나타나는 꿈을 꾼다. 문득 상념에 젖어들 때면 맹장수술로 고생한 북한 근로자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편 이 회장은 2005년 12월에 개성공장을 설립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성 투자를 단행했다. 광통신부품과 인공치아 보철물 생산기지로 구축했다.

광통신부품은 중국공장 일부를 개성공단으로 이전했다. 인공치아 보철물을 생산해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세계시장에 공급했다.

공장이 정상적으로 안착이 되자 2009년에는 공장을 확장했다. 북한근로자는 1200명까지 늘었다. 공장 확장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개성공단 정상가동을 위해 혼신을 다해왔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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