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여전히 비닐하우스 살아"

2021-04-14 12:21:22 게재

정치하는엄마들, 포천 이주노동자 기숙사 6곳 고발

땅에 구덩이 파고 화장실로 … "근로기준법 등 위반"

지난해 12월 경기 포천의 한 채소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행씨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숨진 사고 후 이주노동자들의 주거환경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지만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경기 포천 지역의 '비닐하우스 기숙사' 6곳의 소유주를 포천경찰서와 고용노동부 등에 고발했다.

13일 정치하는엄마들에 따르면 고 속행씨가 숨진 후 비닐하우스 기숙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랐지만 지난 2월 찾은 현장에선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포천 지역의 채소농장은 대개 비닐하우스 수십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검정색 차광막으로 덮여있고 접시 모양 위성 안테나와 LPG가스용기, 도로명주소판이 설치된 곳은 모두 이주노동자의 거주시설로 사용되고 있었다. 화장실은 비닐하우스 외부에 설치돼 있었는데 잠금장치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한 곳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플라스틱 대야를 묻어 여성 노동자의 화장실로 제공하고 있었다. 기숙사 이용료는 매월 약 20만원이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현장조사 중 발견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6곳의 주소지를 특정해 이들 소유주가 근로기준법과 농지법, 건축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과 포천경찰서에 고발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55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기숙사는 △침실 하나에 15명 이하의 인원이 거주할 수 있는 구조 △적절한 화장실과 세면ㆍ목욕시설 △채광과 환기를 위한 적절한 설비 △화재 예방 및 화재 발생 시 안전조치를 갖출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대표는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거주환경은 노동이나 인권문제이기도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보면 이주노동자들의 피눈물로 자란 농산물로 아이들 밥상을 차리고 있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장조사 등을 한 박민아 활동가는 "지난해 이주노동자 사망사건까지 있었지만 큰 개선이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먹는 밥상이 인간다움을 회복할 때까지 행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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