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에서 빠져 있는 한방치료 | ①'특약 보장' 제도화

수술 피하려 한방치료 받았지만 보험 안돼 결국 중단

2021-05-11 11:02:03 게재

현행 제도 '의료선택권 제한' … "4세대 실손보험 특약으로 한방비급여 신설해야"

40대 중반 A씨는 평소 허리가 아팠는데 올해 초 들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디스크 질환이니 시술이 필요하다며 신경성형술을 권유했다. 시술 후 1~2주간은 통증이 나아졌으나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재발했고 의사는 디스크를 잘라내는 수술을 권했다. A씨는 수술을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에 한방병원에 내원했고 추나요법, 침·뜸치료와 함께 도인운동요법, 약침요법, 한약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호전됐다. 그러나 A씨는 진료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약침요법, 한약치료 등 한방 비급여 치료가 실손보험이 되지 않는 항목임을 알게 됐고 높은 비용 부담으로 인해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재발되는 통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을 찾아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A씨는 "한방치료가 실손보장이 되었다면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높은 비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방병원에서 환자에게 추나요법을 시행하는 모습. 추나요법은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한방치료법이다.


30대 여성 B씨는 지난 1월 갑자기 얼굴 근육이 마비되고 감각이 떨어져 한방병원을 찾았다. 한의사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벨마비)로 진단하면서 기본적인 양방 스테로이드 치료 이외에 회복과 후유증 발생을 최소화하는 한방치료를 권유했다. 안면추나요법, 안면도인운동요법, 약침치료, 한약치료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B씨는 고민에 빠졌다. 침 치료 이외에는 실비가 보장되는 치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면신경마비는 급여 대상 질환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 한방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급성기에 적절한 한방치료를 받지 못한 B씨는 세 달이 지나 후유증이 남은 채로 다시 병원을 찾아와 뒤늦은 치료를 받고 있다. B씨는 "환자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치료 항목에 대해 실비 보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1일 이진호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한방물리요법, 약침료, 첩약 등 질환치료에 필요하지만 실손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많은 한방이용자들이 중도에 한방치료를 그만두고 있다"면서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에서 실손의료보험 특별약관에 일부 한방 비급여 항목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한방이용자의 의료선택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실손보험은 한방진료 가운데 침, 뜸, 부항, 추나요법 등 건강보험 급여 항목을 보장해주고 있다. 하지만 한방진료는 급여보다 비급여 항목이 많아 실손보험 보장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오는 7월 도입될 4세대 실손보험에 한방 비급여 항목을 특별약관(특약)으로 신설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보험에선 한방진료비 비중이 43% = 한방진료에 대해 보험 적용이 되고 있는 자동차보험을 보면 한방진료 보험보장에 대한 소비자 수요를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1999년 한방진료가 자동차보험에 도입된 이후 자동차보험 한방진료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용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자동차보험 한방진료의 현황과 개선과제' 정책보고서(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한방진료비는 2014년 2722억원에서 2019년 9569억원으로 5년 새 252% 늘었다. 같은 기간 양방진료비는 1조1512억원에서 1조2573억원으로 9.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한방진료비가 전체 자동차보험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19.1%에서 2019년 43.2%로 5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환자 수 역시 양방의 자동차보험 환자수가 2014년 179만명에서 2019년 189만명으로 6% 증가하는 동안 한방의 자동차보험 환자수는 2014년 48만명에서 2019년 127만명으로 167% 증가했다. 한방진료비 규모는 몇 년 동안 큰 폭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양방진료비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일부 과잉진료 등의 논란이 있지만 양방진료만큼이나 한방진료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의사협회는 실손보험 한방진료 특약 신설을 통해 가입자의 합리적인 치료방법 선택을 유도하고 적정 비급여 시장가격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4세대 실손보험에서는 비급여 진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가 차등부과되기 때문에 손해율 악화를 막을 수 있고 자기부담률도 30%로 상향돼 일부 소비자의 과잉 진료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여기에 현재 높은 손해율을 기록하고 있는 표준화 전 실손 가입자들에게 제4세대 실손으로 갈아탈 수 있는 동기 부여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잉진료 제어안돼 손해율 급등 우려" =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의 주요인으로 비급여 진료를 꼽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업계는 한방 비급여 진료 특약을 추가하는 의견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자동차보험에서 한방진료 비중이 늘어나며 손해율이 악화된 경험도 부정적인 인식을 더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1인당 진료비의 경우 2014년 대비 2019년 양방이 3% 증가하는 동안 한방은 32%나 증가했고, 같은 기간 비급여 진료비는 양방은 47% 감소했지만 한방은 271% 늘어났다. 이처럼 한방의 1인당 진료비와 비급여 진료비가 양방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점 때문에 과잉진료 논란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낸 '2020년 자동차보험 사업실적' 자료에서도 인보상 중 한방의료비가 전년대비 26.7%나 증가하며, 처음으로 한방의료비(8849억원)가 양방의료비(7968억원)를 추월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한방진료 실손 특약 신설과 관련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방진료는 진료행위의 치료목적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상품화 논의 이전에 한방진료의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과잉진료 제어, 치료와 보신 목적 구분 등이 어려워 실손 손해율 급등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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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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