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 제대로 하려면

여당, 야당 때 낸 법안대로 "청와대 사전검증서 국회 제출"

2021-05-14 11:27:59 게재

이명박정부 초반, 진보진영 사실상 당론법안 제출

민주당, 야당 시절 40명 청문보고서 채택 거부

자료제출 거부·허위 발언에 대한 징계 요구도

인사청문회가 '도덕성 검증'으로 흐르는 게 문제일까.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많다. 정책검증으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심각한 하자'를 찾아내기 어렵고 그것이 국민적 분노를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다. 인사청문회가 후보를 지명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대 이면서 검증대라는 점에서 야당은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고 짧은 시간(20일)에 가장 효율적이고 파괴력이 있는 도덕성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도덕성 검증을 탓할 게 아니라 도덕성 검증에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인사청문회를 정책검증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문제제기는 현재의 여당이 야당시절에 내놓은 법안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현재의 야당이 내놓은 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야당에 '무안주는 청문회'를 그만두라는 공격이나 '여야가 합의한 안을 통과시키자'는 제안보다는 여당이 먼저 야당 시절 요구했던 내용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규탄하는 국민의힘│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인사청문특위에서 채택되지 않은 가운데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김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14일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행정부 공직 후보자에 대하여 임명에 동의하지 않거나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비율은 문재인정부(79명 중 24명, 30.4%), 이명박정부(79명 중 22명, 27.8%), 박근혜정부(75명 중 14명, 18.7%), 노무현정부(50명 중 4명, 8.0%)였다. 최근의 총리 1명과 장관 3명까지 합하면 문재인정부 행정부 공직후보자 82명 중 2명이 추가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되지 않았으므로 26명인 31.7%가 된다.

모든 청문대상자 중에서 야당이 임명 동의를 할 수 없다거나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경우가 김대중정부 2건, 노무현정부 5건, 이명박정부 26건, 박근혜정부 14건이었으며 문재인정부가 32건이었다.

청문후보자의 도덕성 등 자질 문제의 심각성을 제외하고 단순 비교하면 문재인정부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후보자들이 야당의 '비토'에 걸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또 주목받는 것은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는 2건, 5건에 그쳤다는 점이다. 당시엔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상자가 적은 데다 '관행'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00년 23개 공직에 그쳤던 청문대상자가 이제는 66개로 늘어났다.

◆첫 단추는 누가 끼웠나 = 도덕성을 중심으로 한 인사청문회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우리 인사청문회는 능력은 그냥 제쳐두고 오로지 흠결만 놓고 따지는 무안 주기식 청문회다. 이런 청문회로 좋은 인재를 발탁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인사청문회가 정권심판용으로 부각된 것은 이명박, 박근혜정부때부터다. 현재 여당이 야당일 때다. 이명박정부 26건, 박근혜정부 14건 등 40건이 민주당이 야당시절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한 결과다. '무안주기 청문회'의 첫 단추를 민주당이 먼저 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도 개선 얘기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도덕성 검증도 중요한데 비공개 청문회로 하고 그 다음에 공개된 청문회는 정책과 능력을 따지는 청문회가 돼서 두 개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청문회로 개선돼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철희 정부수석은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개선 꼭 필요하다고 본다"며 "다음 정부는 서로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장담하고 있으니 다음 정부부터 적용한다는 조건 하에 인청 개선에 대한 열린 토론이 이뤄지면 좋겠다. 제도가 좋은 사람을 발탁하는 과정이 돼야지 좋은 사람을 내치는 과정이 혹시라도 안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역시 야당시절에 여당의 이같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여당이 야당시절에 요구한 내용을 먼저 시행하는 게 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검증시스템 강화 필요 = 여당은 이명박정부 초반인 2009년 4월에 박병석 의원(현 국회의장)이 대표발의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에 진보진영 의원 83명이 같이 참여했다. 이 법안에서는 △공직후보자에 대한 사전조사 결과보고서 제출 △청문심사기간 30일로 확대 △대통령·대통령당선인 또는 대법원장,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존중 등을 담았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사전조사 결과보고서 제출'이다. 청와대의 검증시스템에 대한 검증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는 세부 자료라든지 부동산거래라든지 여러 가지 정부가 공유한 자료를 제출받아 그것을 자료로 삼고 검증대상자에 검증질문서를 작성하게 하고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으로 검증한다. 이 검증이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럴만한 기능과 인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검증시스템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법안검토보고서는 "이러한 사전 조사를 통해 보다 심도 있는 인사청문을 실시하게 함으로써, 공직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 및 이를 통한 국회의 국정 통제에 기여하는 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함께 여당이 야당 시절 많이 내놓은 법안은 철저한 자료제출, 자료제출 거부에 대한 강력한 조치, 허위 증언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등을 담은 것들이었다. 이는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내놓은 법안들이기도 하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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