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에 환경책임보험도 혜택 확대

2021-06-11 11:22:43 게재

독일, 환경사고는 물론 자연훼손도 피해 범위에 포함 … "사회적 위험 분산 차원에서 접근해야"

#1. A기업이 소유한 땅에 묻혀있던 오래된 배관에서 석유류가 새어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기름 유출 사고로 해당 업체는 정밀조사는 물론 토양 정화, 정화 검증 등 각종 비용을 떠안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천천히 진행되는 토양오염 특성상 추가 피해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토양오염의 경우 다른 오염보다 원상태로 되돌리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부담이 상당했다.

#2. 화학물질을 다루는 B공장에서 철(Fe)과 염소(Cl)의 화합물인 염화제이철(FeCl₃)이 유출됐다. 인근 하천까지 해당 물질이 흘러들어가면서 문제는 커졌다. 하천오염 사고의 경우 번지는 속도가 빠른데다 하천 생태계까지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방재작업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 해당 기업은 방재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막대한 손해를 봤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연합뉴스


탄소중립 시대를 맞이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기본이 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영업이익 외에도 친환경이 투자기준이 되면서 덩달아 기업들의 환경오염사고에 대한 책임도 커지는 상황이다. 환경오염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는 물론 사고 기업과 국가에까지 여러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 사고 기업은 이미지가 실추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심한 경우 피해배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되면 피해복구를 위해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어 '피해자의 쟁송(재판을 청구하여 서로 다툼)고통-사고기업 도산위험-국민 세금 투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험개발원의 '환경오염배상책임보험 제도 및 상품 설계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구미 불산 사고로 인한 피해 복구를 위해 국민 세금 554억원이 투입됐다.

◆ 환경사고 복구에 국민 세금 투입되는 악순환 예방 = 최근 환경책임보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환경책임보험이란 환경오염 사고 발생 시 제3자가 당한 물적, 신체적 피해를 보상해주는 보험을 말한다. 천재지변이나 고의적인 사고를 제외한 대기 수질 화학 폐기물 해양 토양시설 등에서 발생한 환경오염 사고들을 담보한다. 실제로 A, B 기업의 경우 환경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해당 사고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유럽 미국 일본 등의 경우 형태와 범위 등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환경책임보험이 도입된 지 오래다. 독일은 아예 법적으로 가입을 의무화했다. 게다가 전세계적으로 기업의 환경책임이 강화하면서 환경오염피해 범위도 더 확대되는 추세다. 환경오염 사고뿐만 아니라 자연침해(자연환경훼손)도 환경오염피해 범위에 넣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환경책임보험이 도입된지 5년이 됐다. 의무가입대상 사업자들은 관련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업종별 세분화된 특성을 반영한 보험설계가 가능하길 바라고 있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환경책임보험 보장범위 개선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보험산업협회(GDV)는 2019년 '환경위험보험(Umweltrisikoversicherung·URV)'을 개발했다. 민사상의 환경책임보험과 자연생태환경 피해를 담보하는 환경손해보험을 통합한 상품이다.

장재옥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은 이미 100만개 기업들이 환경책임보험에 가입했다"며 "우리나라도 사회적 위험 분산 차원에서 환경책임보험 가입사업장을 확대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또 "개인적인 피해가 아니더라도 자연환경훼손에 대한 구제가 가능하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사전에 예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형사고가 나면 복구 등에 필요한 시간이나 재원 등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2016년 7월부터 환경책임보험이 실시됐다.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특정대기유해물질 배출시설(1~5종) △위해관리계획서 작성·제출대상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지정폐기물 처리시설 등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30여만개 사업장 중 1만4470곳이 법적으로 의무가입대상(2020년 12월말 기준)이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가입률은 97.46%(1만4102개 사업장)다. 환경책임보험의 가입, 사고접수와 보험금 지급 업무는 대표보험사인 DB손해보험에서 담당한다. 각 회원사 참여율에 따라 NH농협손해보험 AIG손해보험 삼성화재보험 현대해상화재보험이 공동으로 보험금 지급 등을 부담하는 구조다.

◆ "업종별 특성 반영한 맞춤 설계 필요"= 이양수 한국염료안료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아무리 제도 도입 취지가 좋아도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비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업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화재보험 등만 들었을 때보다 연평균 7~10% 정도 추가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현장 의견을 수렴해 1일부터 개정된 환경책임보험 요율을 적용 등 여러 보완책을 발표한 바 있다. 환경책임보험보장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환경책임보험 요율이란 보험료를 결정하기 위해 취급물질과 시설의 위험도별로 기본요율 자기부담금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한 것이다. 자기부담금이란 보험사고로 인한 손해에 대해 계약자가 부담하는 금액을 말한다. 이번 개정 요율에 따라 사고발생 시 사업장이 부담해야 할 자기부담률이 최고 보상한도액의 0.5%에서 0.1%로 완화됐다. 이에 따라 자기부담금보다 손해액이 적어서 지급되지 않던 소규모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서도 보장이 가능해졌다.

일반화학물질 요율도 신설됐다. 일반화학물질 사고로 인한 피해가 발생해도 환경책임보험에서 피해자 배상금이 지급되지 않은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환경오염사고에 대한 배상청구 가능 기간도 확대했다. 보험기간 만료 후 60일에서 1년까지로 늘어났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오염피해의 경우 사고의 인지 및 손해배상 청구까지의 기간이 길어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배상청구 가능 기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환경책임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업체들이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사고 전반에 대해 스크린해 보는 계기가 됐다"며 "업계 입장에서도 필요한 제도인 건 사실이지만 좀더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장 범위가 늘어나면 좋지만 그만큼 보험료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기업 부담도 덜고 환경책임보험제도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설계가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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