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공조장치 품질부정 사건 '일파만파'

2021-07-06 11:16:20 게재

나가사키 공장서 35년간 규정 어기고 검사 … 뉴욕지하철 등 납품, 국제문제로 비화 가능성

일본 미쓰비시전기 나가사키제작소에서 철도차량용 공조장치와 공기압축기에 대한 품질검사를 35년 이상 부정하게 벌여온 사건이 연일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회사측은 검사 방식에는 부정이 있었지만 제품의 품질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해외로 수출한 부품과 기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제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나온다.


◆해외 15개국, 1만6000대 수출 = 미쓰비시전기 나가사키제작소에서 차량 내부의 온도와 습도, 공기 청정도 등을 조절하는 공조장치에 대한 부정한 검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달 14일이다. 미쓰비시측이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오는 9월까지 최종 조사결과를 내놓겠다고 한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1985년부터 지난해까지 35년간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스기야마 타케시 사장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직적인 부정행위였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6일 "미쓰비시전기의 공조장치가 15개국에 수출됐다"면서 "뉴욕지하철 등에 납품한 기계와 부품에서 일부 품질상 문제가 될 수 있을지 당국이 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 35년간 나가사키 공장에서 제작해 출하한 공조장치가 일본 국내에 6만8000대, 해외에 1만5800대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압축기도 최근 15년간 1500대를 출하했지만 모두 국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쓰비시 공조장치를 공급받아 만들어진 차량이 현재 운행되는 곳은 뉴욕을 비롯해 영국 런던지하철 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가와사키중공업은 미쓰비시의 공조장치를 장착해 만든 지하철 차량을 뉴욕 교통국에 지금까지 2200대 가량 납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이 회사 제품이 들어간 차량을 제작하는 기업은 일본 밖에도 7개 기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기야마 타케시 미쓰비시전기 사장이 지난 2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철도 차량용 공조장치의 검사가 조작된 것에 대해 사죄했다. 사진 연합뉴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뉴욕 등에서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노우에 로우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구도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문제가 됐던 고베제강소의 품질 부정사건과 닮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세부적인 계약 내용에 따라서는 미쓰비시전기뿐만 아니라 완성된 차량을 납품한 가와사키중공업에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케다 마사히사 미국변호사는 "안전성에 관한 문제로 인식될 경우 미국 법무부가 흥미를 가지고 조사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사기죄 혐의 등을 거론했다. 특히 미국에서 조사 주체인 법무부와 연방검사가 미국내 자회사 등에 대해 상당한 고강도의 조사를 벌일 가능성도 나온다. 다만 2017년 고베제강소의 데이터 조작사건 때는 미국 법무부가 2년여에 걸쳐 조사한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창사 100주년에 터진 독선과 오만 = 이번 미쓰비시전기 품질 검사 부정사건은 회사 창립 100주년에 터진 대형 악재로 그동안 곪았던 내부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언론은 이번 사건이 미쓰비시전기의 내부의 품질에 대한 자만과 사업부문별 이기주의, 경영진의 무능, 사외이사의 감시 기능 부재 등 여러가지 원인을 지목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당국이 제시하는 의무 검사 방식과 부품을 발주하는 거래처가 지정하는 방식을 어기고 사실상 제멋대로 품질 검사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방수 검사와 과부하 시험, 규격 검사 등에서 정해진 검사를 무시하고 자사에서 정한 대로 집행하고, 정작 당국과 거래 당사자에게는 위조된 데이터를 보고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스기야마 사장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품질이 제일'이라고 호소해 왔지만 사내의 상식으로 품질 기준을 운영했었다"며 "스스로 기술력이나 품질에 대한 사고방식을 절대시하고, 우리의 기준이면 된다는 오만과 자만에 빠졌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미쓰비시전기는 1921년 창업한 이래, 1952년에 '품질봉사의 미쓰비시전기'라는 회사의 기본 철학을 결정해 널리 알려왔다.

미쓰비시의 품질에 대한 자만은 사업부문별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도 나가사키제작소가 본사의 최고경영진도 간섭하지 못할 정도의 지나친 권한을 가지면서 생겨났다는 평가다. 일본 제조업이 대체로 사업부문별 권한이 강한 가운데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60~7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기업의 성장에 크게 공헌을 했지만 1990년대 이후 버블경제가 붕괴하면서 각 사업부문이 자기 이익을 최우선하는 이른바 '개별 최적'이라는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자 미쓰비시전기도 1998년 복수의 사업부문을 묶어서 '총괄사업본부제'를 도입해 부문별 이기주의의 폐해를 개선하려고 했지만 2000년대 이후 밀어닥친 디지털경제가 결과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21세기 들어 전기 및 전자업계에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여기에 뒤처진 미쓰비시도 반도체 구조조정 등 개별 사업조직이 생존경쟁에 내몰렸다. 생존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업조직별 경쟁이 결과적으로 '자기조직 이기주의'를 강화하고, 결국 나카사키제작소의 부정사건도 본사의 통제 밖에서 35년간 이뤄졌다는 인식이다.

여기에 미쓰비시전기는 발전소와 철도 등 인프라시스템의 완성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주력산업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직이기주의를 부추켰다.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 등 완성된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 비해 부품을 다루는 각 사업부문이 개별적으로 자기 사업부문만의 최적의 조건을 추구하는 지배구조가 뿌리깊게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 회사 한 직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같은 공장에서도 부서가 다르면 전혀 대화와 소통을 하지 않는다"고 말해 내부 이기주의와 소통부재를 지적했다.

◆최고경영진 무능과 사외이사 감시망 작동 안해 = 미쓰비시전기는 최고경영자의 임기를 사실상 4년으로 제한하는 관례에 따라 본사의 통제권이 현장에 미치지 못했다. 내부에서는 "사장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인식이 강해 '상징적인 존재'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최근 이 회사 CEO가 대부분 사업부문에서 나오지 않고 연구파트나 생산기술 파트에서 잇따라 선출되는 점도 현장과 거리를 벌렸다는 평가다.

경영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의 문제도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6일 "미쓰비시전기 품질 부정을 주주총회 직전에 파악한 사외이사의 감시책임에 의문이 든다"며 "12명의 이사 가운데 7명의 사내 출신을 뺀 5명이 사외이사인데 외무성 사무차관, 검찰총장 등 대부분 전직 고위 관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 5명의 사외이사는 지난해 총 7100만엔(7억2400만원)의 보수를 받아 1인당 평균 1억원이 넘었다. 더구나 일부 사외이사는 9년이라는 장기간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회사 내부와 밀착했을 것이라는 의심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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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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