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중동산-미국산 원유의 가격역전 현상
한국, 중동산 원유도입 늘어날 듯
셰일오일 생산 감소로 WTI 가격 급등
10년간 더 비싸던 두바이유보다 올라
연초 대비 중동산 두바이유는 배럴당 19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각각 24달러 올랐다. 미국 셰일오일의 생산이 감소하면서 WTI 가격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두바이유와 WTI의 가격역전 현상으로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도입 비중이 다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두 유종 가격 최근 엎치락뒤치락 =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WTI 가격이 두바이유 보다 비쌌다. 2004년에는 두 유종의 가격차이가 7.73달러(WTI 41.47달러, 두바이유 33.74달러)에 달했다.
통상적으로 WTI는 품질이 좋은 경질유(Light crude oil)이자 저유황유이고, 두바이유는 이보다 유황 함량이 많고 질이 떨어지는 중질유다. 따라서 WTI 가격이 더 비싼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 들어 두 유종의 가격차이가 좁혀들더니 2011년 두바이유 105.98달러, WTI 95.11달러로 가격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두 유종 가격을 비교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공급과잉 현상이 심화되면서 WTI 가격약세 현상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에서 셰일오일·가스 생산이 급증, 이러한 흐름이 지속됐다.
두바이유 가격은 WTI 보다 비싼 상태로 10여년을 이어왔다.
그러나 올해 6월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6월 8일 WTI 가격이 70.05달러로, 두바이유 69.34달러를 재역전한 이후 엎치락뒤치락이 반복되고 있다.
7월 평균(1~16일) 가격은 WTI 73.58달러, 두바이유 73.54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WTI 가격 강세는 10여년 전과 반대로 셰일오일 생산이 급감한데 기인한다.
◆셰일오일 생산 감소 지속 전망 = 교보증권에 따르면 미국 셰일오일 일평균 생산량은 2020년 800만배럴에서 올해 700만배럴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원유가격 급락으로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이 대거 파산한 영향이 크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알래스카 원유 시추를 중단시키는 등 '청정에너지혁명'을 추진함으로써 전통 원유기업 생산량이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에너지 컨설팅기업 우드맥킨지 자료를 인용해 현재 매물로 나온 글로벌 석유기업 자산이 총 1400억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미국 엑슨모빌과 셰브런, 영국 BP, 프랑스 토탈, 네덜란드 로열더치셸 등은 2018년 이후 약 30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처분했다.
미국 셰일오일 생산감소로 유가인상이 가속화되자 전통 산유국들은 미국 셰일업계가 다시 생산에 나서지 않기를 희망하는 분위기다.
다만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추가 감산 완화 정책을 8월부터 시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산유국들의 이번 합의로 원유 생산량이 늘어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OPEC+는 지난해 5월 코로나19로 인한 수요감소에 대응해 당시 세계 생산량 대비 10% 수준인 하루 약 1000만배럴의 감산을 결정했다. 그 뒤 2022년 4월까지 점진적으로 감산 규모를 줄여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란의 국제 석유시장 복귀 주목 = 이처럼 두바이유와 WTI의 가격역전으로 50%대까지 하락했던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도입 비중이 다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중동산의 빈자리를 차지했던 미주산(미국·멕시코산) 원유수입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두바이유가 우리나라 원유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87.1%에 달했다. 2017년까지도 두바이유 비중이 80%를 넘었다. 이후 점진적으로 하락하다 올 3월에는 중동산 원유도입 비중이 57.5%까지 떨어졌다.
반면 미국을 포함한 미주산 원유 비중은 2017년 4.0%에서 올 3월 25.2%까지 늘었다.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난 데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통상압력과 우리 정부의 운송비 지원 등으로 미국산 수입을 꾸준히 늘려온 탓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감소가 지속되면서 WTI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미국산 원유의 물량·가격 이점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중동산 원유도입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팀장은 "업계 입장에선 정제 채산성을 맞추려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원유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국내 휘발유 값은 싱가포르 현물시장 국제제품 가격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중동산 도입 확대가)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란의 국제석유시장 복귀 여부가 주목된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란의 제재 해제와 석유시장 복귀가 머지않았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업적인 포괄적핵합의(JCPOA) 복원을 공약했기 때문이다. 이란은 2018년 트럼프정부의 JCPOA 파기 이전 OPEC 국가 중 원유 생산 3위였다.
이란은 원유수출 재개시 그동안의 손실보존을 위해 낮은 가격으로 수출물량 극대화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두바이유 가격 인하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