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조영숙 양성평등대사

생존자 중심 접근, 행동으로 이어져야

2021-11-19 10:56:23 게재

90년대 코소보, 르완다 등에서의 대규모 강간사건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분쟁하 성폭력을 인권차원에서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평화 구축·유지 의제로까지 다루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국가 비상사태 선포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내 재집권 이후 전 세계가 분쟁하 성폭력에 대해 더욱 우려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최근 미얀마 군부에게 "성폭력이 또 다른 무기"가 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과거 로힝야 소수민족을 향하던 폭력이 이제는 자국민에게도 자행되는 것이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재집권에 따라 그간 진전을 이루어낸 여성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유와 동등한 기회, 그리고 공공 분야에서의 역할을 박탈당했고,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2021년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한 한국의 노력은 국제사회의 주목과 지지를 받고 있다. 식민지배와 산업화를 거쳐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을 이루어 낸 한국의 저력이 미얀마 국민과의 연대를 통해, 그리고 아프간 '특별 기여자' 391명을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온 '미라클 작전'을 통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경제적 부담으로 여기던 사람들조차 한국이 민주주의와 인권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게 되었다.

오는 11월 25일 외교부가 주최하는 제3차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국제회의'가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개최된다.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분쟁하 성폭력 근절을 위한 이니셔티브의 일환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외교부는 그간의 '생존자 중심 접근'이 생존자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에서 더 나아가, 평화구축과 화해의 과정에 있어 여성의 역할과 리더십을 적극 강조할 예정이다. 시민사회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양성평등대사로 국제사회와 밀접히 교류하고 있는 필자는 한국 정부가 평화구축 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리더십을 포함한 명실상부한 '생존자 중심주의'를 이끌어 나가고 있음이 매우 자랑스럽다. 한국이 유엔 및 국제사회에서 합의한 보편적인 평화와 인권규범을 '한국식'으로 축소 해석해 오던 관행이 더 이상 필요가 없을 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발생하는 분쟁관련 성폭력 문제해결의 기본원칙은 2000년 유엔 안보리의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1325 결의와 이후 9개의 후속결의에 담긴 4+1원칙(예방, 참여, 보호, 구호 및 회복 그리고 이행점검을 위한 국가행동계획)에 기초한다.

이를 바탕으로, 생존자 지원과 동시에 피해 예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는 문제해결의 당사자인 여성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이번에 개최되는 국제회의는 한국의 명실상부한 여성·평화·안보 리더십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동 회의에서 외교부가 "여성과 함께 하는 평화 이니셔티브"를 국제사회에서 '생존자 중심 접근'을 이끌어나가는 구체 "행동계획(Action Plan)"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