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난동·신변보호 사망 후폭풍

경찰도 대응 역량·시스템 부실 자인

2021-11-23 12:08:13 게재

현장대응 강화 TF 구성 하기로 … 강력범 진압 면책특권없인 부실대응 재발 가능

인천 흉기난동 대응 미비와 서울 중구 신변보호 여성 피살 등 경찰 현장 대응에 잇달아 구멍이 발생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도 사실상 역량·시스템 부실을 자인하고 대책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22일 김창룡 경찰청장 주재로 전국 258명 경찰서장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김 청장은 연신 "침통하다"는 표현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 영장심사 종료│데이트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검거된 30대 피의자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김 청장은 인천 논현경찰서 흉기난동 부실 대응 건과 관련해서 "삼단봉 테이저건 무전기가 있었음에도 무방비 상태의 피해자가 피해를 보게 됐다. 비통하다"고 질책하면서 "조직적으로 철저한 진단을 통해 재발을 막자"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청장은 이날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소명인데도 위험에 처한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한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

◆"112신고는 SOS" = 회의에서는 인천 흉기난동 부실 대응 건은 '개인 역량' 문제, 중구 신변보호여성 피살 건에 대해서는 '시스템' 문제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또 경찰대와 중앙경찰학교 등 일선 교육 기관에서 현장형 실습 프로그램 위주로 가르쳐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에 경찰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장 대응력 강화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로 했다. 경찰청 차장이 주관하게 될 현장 대응력 강화 TF에서는 지역경찰과 신임 경찰관 교육체계 개편, 장비 실용성 강화와 사용 훈련 강화, 법 제도적 기반 확충, 매뉴얼 개선 등 종합적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특히 경찰은 범죄 피해자의 신변보호를 내실화하기 위해 스마트워치 위치확인시스템을 개선하고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대책'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경찰은 또 스토킹 등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의 재범차단과 실질적 격리를 위한 대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김 청장은 이날 "위급한 상황에 처한 국민에게 112신고는 SOS(긴급구조신고) 그 자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경찰관 모두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경찰관으로서의 소명의식을 다시 한번 다지면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다 함께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개선방안, 현장에서는 공염불 = 하지만 경찰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때문에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내놓은 개선방안들이 현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공염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총기 등 강력범 진압장비 사용에 따른 현장 경찰들의 부담감이다. 민원제기 감사 소송 등으로 이어지는 후폭풍에 현장 경찰관들이 장비를 사용해서라도 강력범을 제압하는 적극적인 자세보다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2018년 경북 영양경찰서 김선현 경감이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순직했고, 동료 경찰은 큰 부상을 입었다. 앞서 충남 아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에 경찰의 '무장 강화'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에 빗발쳤다. 경찰은 무기 사용 지침이 구체적이지 않은 탓에 흉악범이라도 강하게 제압하지 못했다. 총기 사용 뒤 경찰관은 적절성 시비에 시달려야 했고 감사를 받아야 했다. 범인이나 그 가족들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테이저건(전자충격기)이 도입됐지만 사정거리가 짧고 단발이라 한계가 있었다.

논란 끝에 2019년 경찰청이 총기사용 세부 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과잉 진압' 논란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화력을 대폭 낮춘 비 살상용 '스마트 권총'이다. 최근 경찰이 국내 방위산업체와 플라스틱 총탄을 사용하는 비살상용 9㎜ 리볼버 권총을 개발했다. 화력은 38구경 권총의 10% 수준이라 총을 맞아도 장애를 입거나 사망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장 경찰들은 새로운 총기를 도입해도 부담감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반응이다.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은 면책 범위로는 민원 제기 내부감사 소송으로 이어지는 기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현재 국회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권력 과잉' 견제와 '범죄 앞에 강한 경찰'로 나뉜 국민 여론도 현장 경찰관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또한 경찰은 스토킹 가해 이력이 많을 경우 스토킹처벌법상 명시된 최상위 조치인 잠정조치 4호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잠정조치 4호는 서면 경고나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외에 유치장·구치장 유치 조치를 뜻한다. 하지만 법 제도상 경찰이 법원에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야 유치할 수 있고, 인권 침해 등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경찰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여당 행안위원들, 경찰청장 면담 =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의원들이 23일 오전 김창룡 경찰청장을 면담했다.

서영교 행안위원장은 "경찰이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을지켜줬어야 했는데 현장에 출동해서 국민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봤다"며 "책임도 묻고 향후 대책도 마련하려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또 데이트폭력과 관련해서도 신변보호 요청과 스마트워치가 있었고 대처를 했지만 끝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있었는데 좀 더 신속한 대처를 위해경찰에 대책을 촉구하고 국회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고 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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