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은행들, 클라우드 서비스와 만나다

2022-01-05 11:33:05 게재

뉴욕타임스 "금융권 사업방식 전환 … 데이터 보안 우려는 여전"

뉴욕타임스(NYT) 4일자에 따르면 미국 테크 전문 기고가이자 미스터리 소설 작가인 마이클 W. 루카스(54)는 2020년 3월 전세계 여행 계획을 세웠다. 미국 디트로이트 자택에서 시작해 일본 도쿄를 거쳐 중국 홍콩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한 뒤 인도 방갈로르와 프랑스 파리를 들르는 일정이었다.

비행기표 값만 2932달러48센트가 소요되는 이 여행은 티켓 예약에서부터 일이 꼬였다. 주거래은행인 캐피털원의 신용카드로 티켓 구매 결제가 불가능했다. 이유는 루카스의 평상시 카드결제 패턴과 크게 달라 은행측이 카드 도용 가능성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루카스는 NYT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은행이 이례적인 패턴의 카드결제 사실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에 전화해 자신의 여행계획을 설명한 후 비행기 표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NYT는 "루카스의 사례는 월가에 클라우드 컴퓨팅이 도입되면서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캐피털원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 자사 소유의 서버로 사기거래를 적발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이제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컴퓨팅 능력을 빌린다. 거래를 빠르게 분석하기 위해 머신러닝을 이용한다. 정례적인 패턴을 벗어나는 이상거래를 적발할 수 있다.

월가 은행들은 클라우드 기술의 거대한 잠재력을 주시하고 있다. 금융시스템을 더 빠르고 영리하게, 고객의 필요에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상업은행들은 모바일 뱅킹 어플리케이션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거나, 사기거래를 적발하기 위해 클라우드 기반 도구들을 개발할 수 있다. 또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해 주택담보대출에서 기업대출에 이르기까지 증권인수와 관련한 최적의 결정을 분석할 수 있다. 기계학습을 이용해 자금세탁도 적발할 수 있다. 금융시장 거래액이 급증할 때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해 가격 움직임을 미리 분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을 선뜻 채택하긴 어렵다. 월가의 주요 은행들은 여전히 자사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다. 여기엔 고객계좌 데이터나 지급결제 기록, 매매 로그 등 방대한 분량의 정보가 담겨 있다. 이를 운영하는 비용은 막대하다. 우선 데이터센터를 돌리는 데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서버를 보관하는 장소엔 냉난방 조절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잠재력을 알고 있지만 이에 주저하는 주요 이유는 은행들이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고객 예금이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사안에선 갑작스런 변화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인터넷을 통한 컴퓨팅은 사이버공격에 취약하다. 또 사내 컴퓨터 시스템이 낙후해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골드만삭스 CEO 데이비드 M. 솔로몬은 한 인터뷰에서 "금융서비스 기업이 클라우드 시스템에 진입하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고도의 보안이 요구된다. 데이터와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채택하는 데 조심스러운 이유"라고 말했다.

북미 은행권의 경우 대략 전체 업무의 약 12% 정도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이뤄진다. 컨설팅기업 액센추어는 한 조사에서 "향후 2년 동안 2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JP모간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은 "은행들은 가능한 한 신속히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컴퓨팅 등 신기술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웰스파고는 향후 수년의 기간을 두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로 자료를 옮길 계획이다. 모간스탠리 역시 MS의 클라우드 서비스와 협력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자체적으로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 연간 20억달러의 비용을 줄였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11월 "AWS와 팀을 이뤄 고객들에게 금융데이터는 물론, 데이터 분석 도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들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 저장용량과 프로세싱 파워를 빌릴 수 있다. 아마존과 구글, MS 등을 포함한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전세계 곳곳에 대규모의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은행들은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을 통해 자사의 데이터에 접근해 기술기업들의 초고성능 컴퓨팅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주요 기술기업들은 월가 은행들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해 고위급 은행 간부들을 고용하고 있다. AWS 글로벌 금융서비스 사업개발 총괄인 스캇 멀린스는 JP모간과 나스닥에서 일했다. 구글 클라우드의 금융서비스 부사장인 욜란드 피아자는 씨티 핀테크의 CEO였다. MS의 글로벌 금융서비스 부사장인 빌 보든과 IBM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플랫폼 대표인 하워드 보빌은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보든 부사장은 "데이터 보안과 규정준수, 통제 구조에 대해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기업들은 개별 은행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개발하고 있다"며 "클라우드 서비스 덕분에 은행들은 필요할 때 컴퓨터 프로세싱 능력을 늘릴 수 있다. 자체적으로 서버를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소한 결함들은 불가피하다. 골드만삭스가 아마존 AWS와 협력한 지 일주일 지나 AWS 시스템에 정전이 발생했다. 골드만삭스가 미국 주요 금융기업 수장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웹캐스트(인터넷생방송)가 중단돼 혼란을 빚었다. 아마존의 음성비서 서비스인 알렉사는 물론 디즈니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각종 입장권을 판매하는 티켓마스터 역시 차질을 빚었다. AWS의 경쟁기업인 MS의 애저 역시 최근 정전사태로 곤욕을 치렀다.

미국의 금융규제당국인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연방예금보험공사, 통화감독청 등은 '은행들이 클라우드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데이터 백업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발생 가능한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럽연합(EU) 금융당국도 은행들에게 '단일 기술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집중화 리스크를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증권중개 기업들을 감독하는 '미국금융산업규제국'(FINRA)은 모든 기관의 기능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옮겨놓았다. FINRA 최고정보통신책임자(CIO)인 스티븐 J. 랜디치는 "과거 자체적인 서버를 운영하기 위해 연간 수천만달러를 썼다. 하지만 이젠 AWS 서버를 빌린다. 비용이 대폭 절감됐다"고 말했다.

랜디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FINRA는 최소 1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며 "자체적인 데이터센터를 활용해 시장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비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최근 수년 동안 시장의 거래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그는 "웹 기반 시스템으로 수천억건의 시장 기록을 추적할 수 있다. 감독 직원들이 수초 또는 수분 만에 관련 데이터를 끄집어내 거래 활동의 이상 동향을 분석할 수 있다. 과거였다면 수시간이 걸렸을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 잘못될 경우 한 기업이 중대한 안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캐피털원은 그같은 위험을 잘 알고 있다. 2019년 역대 최악의 데이터 해킹 사건을 겪었다. 한 해커가 캐피털원의 고객 1억명 이상의 개인정보를 빼냈다. 캐피털원은 당국으로부터 8000만달러 벌금을 받았다. 또 보안통제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캐피털원은 9800만명의 고객이 제기한 집단소송에 직면해 1억9000만달러를 배상하는 데 동의했다. 캐피털원 최고정보통신책임자인 마이크 이슨은 "고객 데이터 보안은 은행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라며 "우리는 사이버보안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고 말했다.

캐피털원은 보안상 결함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옮기면서 막대한 장점을 누리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 은행은 지난해 8개 데이터 센터를 폐쇄하고 AWS 시스템을 채택했다. 은행 고객들이 축제와 휴일 동안 지출을 늘리면서 결제가 급증했다. 자체 서버를 돌렸을 경우 이를 처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을 테지만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상당한 비용 절감을 이뤘다.

게다가 클라우드 서비스로 폰뱅킹 담당 직원들에게 영구적으로 재택근무를 시킬 수 있게 됐다. 캐피털원에서 중소기업 대출 상담을 하는 로지 하디는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그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아무런 장애 없이 폰뱅킹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됐다"며 "고객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은 인터넷 연결뿐이다. 직장에 있는 것처럼 업무를 처리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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