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공정을 외치다│①대기업 자회사 '쪼개기 상장' 논란

지배주주, 다양한 자본거래로 소액주주 이익 침해

2022-01-06 11:20:05 게재

상법 개정으로 '주주 이익 보호' 제도화

공정한 거버넌스 구축만이 증시 활성화

주식투자자 1000만 시대, 개인투자자들이 공정한 주식시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회사에 대한 약탈적 형태의 합병, 상장폐지, 대주주에게만 주어지는 경영권 프리미엄 등이 한국 주식시장을 외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기업 거버넌스 구축만이 한국 자본시장을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대기업 핵심 사업부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은 한국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로 인한 소액주주들의 피해와 법적 문제점, 대안, 해외 사례 등을 살펴본다.

과거에는 지배주주들이 배임·횡령, 터널링(tunneling) 및 사익편취로 주주이익을 훼손했다면, 최근에는 지주사 전환, 기업분할, 합병 등 다양한 자본거래를 통해 주주이익을 침해하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유행처럼 번진 기업 핵심사업부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은 대주주들은 엄청난 이익을 안겨 주었지만 기존 소액주주들은 일방적으로 손실만 입었다. 21세기형 수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앙꼬 없는 찐빵' 주가 급락 = 6일 오후 2시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 고양시정)과 국회 입법조사처는 공동으로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과 유튜브 '일산 이용우TV'를 통해 '모자회사 쪼개기 상장과 소액주주 보호-자회사 물적 분할 동시 상장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는 쪼개기 상장으로 대주주는 지배력과 이익을 강화하는 한편, 소액주주만 일방적 피해보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토론회다.

이용우 의원은 "기존 상장회사를 나누어 모회사와 신규 유망사업 자회사 체계로 전환하는 물적분할 후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해 대주주는 지배력과 이익을 강화하는 한편, 모회사 주식에 투자해온 소액주주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업들의 핵심사업부 물적 분할 발표는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며, 알짜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던 기존 회사 주주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는 상황이다.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면 기존 모회사는 '앙꼬 없는 찐빵'이 되기 때문이다.

2020년 9월 배터리 사업을 물적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하고 상장에 나선 LG화학 주가는 한때 100만원이 넘었지만 지난해 말 61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배터리 사업을 SK온으로 물적 분할하면서 주가는 8.8% 급락했고, 작년 초 30만원을 넘었던 주가가 연말에는 23만원대로 하락했다. 작년 6월 자율주행 사업 분할을 선언한 날 만도 주가가 11.17% 떨어졌다. 지난달 27일에는 NHN이 클라우드사업을 자회사로 떼어내면서 하루에 주가가 9.87% 폭락하기도 했다.

사업 분사 후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한국의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이사회 독립성 형편없어"=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주요 핵심 사업에 대한 물적분할,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 약탈적 합병 등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빼앗는 21세기 형 수탈이 지겹도록 반복됐다"며 "지주회사 전환 이후 많은 기업이 대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에게 피해를 입히는 의사결정을 단행한 사례가 꽤 많다"고 비판했다.

최 연구원은 "물적분할뿐만 아니라 한국앤컴퍼니와 아트라스BX 합병, 하림지주와 엔에스쇼핑간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100% 완전 자회사 편입 등은 모두 상대회사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를 무시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진행형인 하림지주와 엔에스쇼핑간 포괄적 주식교환 내용만 살펴보더라도, 한국 재벌의 상장 시장에서의 소액주주 권리에 대한 인식이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그리고 이사회의 독립성이 얼마나 형편없는 수준인지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주주가치 훼손이 자행됨에도 불구하고 이사회가 전혀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최 연구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집중투표제,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등의 상법 개정이 요구된다"며 "집중투표제는 이사회 멤버 전원이 대주주에 의해 독점 선임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사실상 이사회 독립성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연구원은 "합병 시에만 부여되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적, 물적 분할 시에도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해서 관련 공시로 인해 주가가 하락할 경우 투자자의 손해를 최소한으로 보호해야 하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며 "이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 결정이 공정한 가격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시장주가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미국은 델라웨어주 등 많은 주 법원이 계속기업가치를 기준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을 결정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주주보호의무 전제해야 = 하지만 이번 물적분할 논란의 본질은 지배주주와 이해주주의 이해상충 문제로 주식매수 청구권을 주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끝날 수준이 아니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근 물적부분할 논란의 핵심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주주 간 이해상충"이라며"자금조달을 명분으로 물적분할 선택을 합리화하고 있지만 일반주주를 배제하고 외부에 주식 매각을 통해 매각차익 등 이익을 보려는 지배주주의 인센티브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꼬집었다. 지배 주주의 지배권 유지와 기업가치 극대화는 상관없다. 기업가치가 증가해도 지배주주 가치만 증가하고 일반주주는 오히려 가치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선 기업 인수합병에서 지배주주를 포함 소액주주들도 프리미엄을 받고 매도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배주주만 프리미엄을 받고 매도해 국민연금을 포함한 일반주주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주주 비례적 이익 보호'가 제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사실은 물적분할 그 자체라기보다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회사법상의 선관의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한 "대주주가 주권의 평등 원칙과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침해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은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우리나라 상법 제382조의3조항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 조항을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력 대선 후보도 공약하고 있는 MoM 제도는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가 오래 전부터 지배주주 이해상충 방지를 위해 주장해 온 대안이다. 박 교수는 계열사 간의 M&A, 일정규모 이상의 내부거래에 대해 비지배주주의 다수의 동의(MoM Majority of Minority)를 받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제도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가 우려되는 기업 행위에 주주총회에서 비지배주주의 동의를 얻게 하는 규정으로 상법에 도입하거나 거래소 상장규칙에 반영할 수 있다. 그는 "총수일가의 황제경영이나 사익편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감 몰아주기를 공정거래법에서 규제하는 것보다 이 제도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자회사 '쪼개기 상장' 반발 거세져
해외에선 자회사와 모회사 동시상장 사례 거의 없어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김영숙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