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나흘째 화마에 휩싸인 경북 울진군

"목숨이라도 건졌으니 천만 다행이지"

2022-03-07 00:00:01 게재

이재민 280명 임시보호시설 신세

화마 덮친 마을, 전쟁터처럼 참혹

"집도 내려앉고 트랙터도 타버렸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

울진·삼척산불 나흘째…불타는 장뇌삼밭│울진·삼척산불이 나흘째 이어지는 7일 오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의 한 장뇌삼밭이 불타고 있다. 울진 연합뉴스

6일 오후 경북 울진군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보호시설서 만난 설택환(82)·김혜숙(78)씨 부부는 한숨을 내쉬며 애먼 체육관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4일 발생한 산불로 하루아침에 집과 생계수단을 모두 잃었다. 설씨 부부가 살던 온양1리는 80여 가구나 되는 마을주민 대부분이 화마를 피해 임시보호시설 등으로 대피했다. 집과 농기계는 모두 불에 타 건진 게 거의 없다.

소곡리에 사는 이경희(76)씨도 집이 완전히 불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씨는 "아픈 다리를 치료하려고 병원에 다녀온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며 안도했지만 불타버린 집 걱정이 태산이다. 이씨는 "병원 갈 때 들고 나온 휴대폰과 지갑만 남았다"며 "며칠 전 은행에서 찾아둔 노령연금도 불타 어떻게 생활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4일 발생한 산불로 7일 오전까지 울진에서만 주택 272채가 불탔다. 울진읍과 북면 죽변면 마을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주민 282명이 울진국민체육센터와 마을회관 등 임시로 마련된 보호시설 12곳에 대피해 있다.

울진국민체육회관에도 이재민의 절반이 넘는 160명이 생활하고 있다. 급하게 대피하느라 변변한 옷가지 하나 챙겨나오지 못했다.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홀로 지내던 분들도 많다. 약을 드시던 분들도 많았다. 그나마 울진보건소에서 미리 입소한 어르신들이 평소 진단받아 복용하던 약을 처방해 나눠주고 있었다. 보건소 관계자는 "혈압약이나 당뇨약은 중단하면 안되기 때문에 보건소에 진료기록이 있는 분들은 미리 약 처방을 해 나눠줬다"며 "월요일(7일)부터는 병원 진료도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불이 덮친 마을은 참혹했다. 7일 이른 아침 취재진이 찾은 북면 신화2리는 인적 없이 적막감만 감돌았다. 연기와 연무가 자욱했고 호흡이 불편할 정도의 연기 냄새가 산불현장을 실감케 했다. 이곳은 6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을 다녀간 마을이다.

울진군에서 삼척시 방향 7번국도 왼쪽 산기슭 경사면에 형성된 28가구의 이 마을은 폭격을 맞은 전쟁터처럼 완전히 초토화됐다.

멀쩡한 집은 신화2리 마을회관과 집·창고 한두채 뿐이었다. 이 마을에 산불이 닥친 것은 지난 4일 오전 11시 17분쯤 최초 울진 산불이 시작된 직후였다.

당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신화2리 마을을 순식간에 삼켰다. 주택 20여채는 전소됐고, 반쯤 불탄 집도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목조주택 한 채는 지붕이 폭삭 내려앉았고, 처마 밑에 덧댄 철구조물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웃한 벽돌집은 벽체만 남고 내부는 모두 불탔다. 거실에 있는 운동용 자전거는 뼈대만 남았다. 집 입구에 있는 개는 화염에 놀란 듯 잔뜩 웅크리고 앉아 짖지도 않았다. 마을회관 위쪽 한 텃밭에는 아직도 잔불이 남아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신화2리와 인접한 화성4리 도로변 마을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컨테이너집은 지붕은 물론 벽체도 화염에 녹아 심하게 휘어졌다. 울진군 관계자는 "산불 발생 즉시 위험지역 주민들을 대피시킨 덕분에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소나무군락지는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소광리 금강소나무군락지에는 1600㏊ 면적에 수령이 200년이 넘은 금강송 8만5000여 그루가 보존돼 있다. 수령이 520년인 보호수 2그루, 수령 350년인 미인송 등 다양한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산림당국은 금강송을 지키기 위해 소광리 쪽으로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헬기를 집중 투입했으며 6일 밤까지 진화대를 총동원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날 밤 금강송 군락지 400~500m 지점까지 산불이 번져 위기를 맞았으나 바람이 잦아지고 산림당국의 방어에 힘입어 7일 오전까지 군락지를 안전하게 지켜냈다.

산림당국은 7일 오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까지 불이 확산되지 않게 방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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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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