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③

산재는 의도되지 않은 테러

2022-03-22 11:14:12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올해 1월 2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2021년에 발생된 사망사고 후속대책에 따라 작업감시자가 증원됐는데 그 가운데 한분이 업무 중에 숨졌다.

2021년 6월 17일 포항제철소에 국회의원들이 방문하던 날, 본인도 안전진단을 하기 위해 그 현장에 있었다. 사고에 대한 진단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포스코는 의원들에게 보고할 대책 마련에 급급해 보였다. 제대로 된 대책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물론 급하게 마련한 대책에도 사고 예방과 수습에 필요한 내용들은 있었다. 그 중 크게 띄는 것은 엄청난 양의 안전예산과 작업감시자수 증원이라는 항목이었다.

안전진단이 끝난 후 강평에서 "포스코는 사고예방을 위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작업감시자들을 투입하면 사고 관람객이 되거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결국 그 말이 현실이 돼 돌아왔다.

생산현장 사망사고 80%는 시스템사고

'시스템사고'는 협력업체 등 생산과 작업에 관여되는 여러 요소들의 상호작용과 변동성에 의해 조성되는 위험으로 인한 사고를 뜻한다.

이를 다루는 시스템안전 분야는 1973년 미국 스리마일(TMI) 원전사고를 계기로 사고의 속성과 예방법에 대한 많은 연구를 통해 발전했다. 수년간 TMI사고를 집중 연구한 예일대 찰스 페로우(Charles Perrow) 교수는 "복잡성과 결합밀도가 높은 생산현장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의 위험이 잠재해 있다"라는 의미로 시스템사고를 '정상사고'라고 기술했다.

포항제철소 철광석 하역설비에서 발생된 사고는 A업체가 설비를 운전하고, B업체는 정비를 맡아서 하는 과정에 상호소통 등의 문제에 기인한 시스템사고다. 현재 국내 대형 생산현장 사망사고의 80% 이상이 이와 같은 시스템사고다.

물론 이런 유형의 사고도 예방해야 하지만, 설비와 작업에서 안전기준 위반을 찾아 개선하기 위한 점검량을 늘이는 것으로는 사고방지가 불가능하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요소들의 상호관계와 영향, 변동성을 파악해서 전체 시스템 차원에서 대응함으로써 그 발생확률을 1/10, 1/100로 낮춰가야 한다.

이런 접근은 기업의 자율과 책임을 전제로 각각의 생산 특성에 맞는 전문적인 분석과 설계를 통해 진화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한다.

기본 안전조치도 안지킨 '비정상 사고'

산업안전보건법규에 설정된 기본적이고 안전보건 기준이 지켜지지 않는 생산현장들이 여전히 많다. 건물공사장 외벽에 설치된 작업용 비계에 작업발판과 난간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작업하던 근로자가 추락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사고 위험과 필요한 안전조치가 뻔하게 보이는데도 비용절감을 위해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막지 못한 사고다. 이는 '정상사고'와 상대적 개념에서 '비정상 사고'로 볼 수 있다. 일반인들도 감각적으로 두려움이 느껴지는 위험을 방치해서 일어나는 말이 안되는 사고다.

의도 되지 않은 테러의 결과

사피엔스의 저자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테러를 '도자기 가게 안에 있는 황소의 귀에 파리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당황해서 날뛰는 황소의 뜀박질에 도자기는 다 부서진다.

언론 정치권 정부의 안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압박과 정책이 기업의 안전활동에 엄청난 비효율을 조장하고 있다.

S전자의 경우는 통계뿐 아니라 안전활동에서도 세계정상 수준에 도달해 있다. 사고발생 확률을 더 낮추기 위해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고가 난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고용노동부의 고강도 특별감독으로 법규의 형식을 준수하는 일에 엄청난 업무시간을 할애하고 있어 안타깝다.

국가 전체의 중대산업재해 감소를 위해서 대형 생산현장은 자율적으로 그 특성에 맞는 안전시스템을 갖추고 이행함으로써 사고를 예방하도록 중대재해처벌법에 맡기자. 산업안전 감독 행정력은 기본적인 법규 준수를 회피하거나 못하는 현장에 투입하자.

이것이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에 명시된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라는 전제에 부합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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