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위에 오른 교육정책

인수위 '과거로 회귀'에 교육현장 반발

2022-03-23 10:52:00 게재

교육정책 뒤집기에 현장 피로 … 특목고 유지·고교학점제·정시확대 충돌 조율 과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은 도마 위에 올랐다. 새 정부는 '새 술은 새 부대'라며 이른바 판갈이를 한다. 피해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에게 돌아간다. 정치권도 이를 알지만 무시하고 밀어붙인다.

현장과 소통 없는 정책은 시범사업이나 이벤트로 전락하고 불안한 학부모들은 없는 돈을 짜내서 사교육에 매달린다. 대입 공정성 문제는 항상 도돌이표다.

윤석열 당선인 교육 분야 공약은 △자사고·외고·국제고 유지 △주기적 전수 학력 검증 조사 △정시비율 추가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교육부 폐지와 미래교육을 강조한다. 교육부와 현장교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동안 추진해온 미래교육과 2022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점검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현장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발언하는 안철수 인수위원장│안철수 인수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기 정부가 교육부를 없애든 말든 관심 없어요. 다만 그동안 추진해온 미래형 교육과정을 정치적 이념이나 생색내기 차원에서 갈아엎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22일 서울 송파구 고교 진학담당인 최 모 교사가 2022개정 교육과정 내용을 설명하면서 던진 말이다. 최 교사는 "뉴스를 통해 인수위에 교육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교육을 표로 계산하는 정치적 판단이 한국교육을 망친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과학기술교육분과 위원 3명을 임명했다. 그런데 교육계를 대표할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교육단체들의 지적이다. 인수위 관계자들은 연일 교육부 기능 축소나 폐지를 염두에 두고 거친 발언을 쏟아낸다.

인수위 과학기술교육 분야 간사는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맡았다. 위원으로는 과학기술 전문가로 알려진 김창경 한양대 창의융합원 교수와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임명됐다. 김창경 교수는 과거 이명박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인물이다. 안철수 인수위 위원장 의지대로 과학을 중심에 둔 교육부 조직개편을 설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 인수위원장은 후보 시절 "교육부를 폐지하고 올해 7월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가 주요 교육정책을 결정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과거로 회귀, 학생 교사 혼란 부추겨 = 이념에 사로잡힌 정부는 5년마다 교육정책 궤도를 바꾼다. 역대 정부 모두 그래왔다. 쉽게 달궈지는 교육정책(대입제도)을 지렛대로 정치적 이슈를 끌어낸다.

이번에도 교육정책이 궤도를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초중등교육 사무는 이미 시도교육청으로 권한과 기능이 이관되고 있다. 올해 7월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에 제동을 걸기가 쉽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교육청소년부'로 조직을 개편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시대 흐름에 따라 미래교육과 청소년 문제를 함께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평생교육은 지자체를 비롯한 관련 부처로, 청년일자리는 전문대학을 비롯한 대학과 지자체가 손잡고 융합하는 정책을 출발시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17일 "교육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부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인수위의 조직개편 논의를 비판했다. 보수 성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17일 "인수위에서 교육은 뒷전이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총은 "인수위 판단은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한 처사로, 교육 현장 입장에서 보면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폐지 논쟁에 불을 지핀 이는 이명박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다. 이 교수는 지난 11일 '대학혁신을 위한 정부개혁 방안' 보고서를 통해 "대학을 총리실에 편재하자"고 주장했다. 이러한 보수 성향 인사들의 발언과 인수위 조직개편 방안은 진보진영 교육정책 뒤집기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전남 광주교육감 후보들이 '윤석열 교육정책' 비판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 교육감 예비후보는 "7월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재검토, 정시 확대, 자사고와 일제고사 부활, 교육감 직선제 개선, 대학 자율성 확대 등은 반교육적이고 비교육적이며 갈등을 유발하는 내용들이어서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고 21일 지적했다.

문재인정부 초기 대입제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공론화를 앞세워 지연된 것도 차기정부 교육부 폐지 논쟁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부 폐지는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한 국정교과서 도입 폐지나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폐지에 대한 보복이라는 해석도 있다.

현재 학부모들의 가장 큰 불안은 코로나사태 장기화에 따른 학습격차 문제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한국 공교육은 크게 흔들렸다. 2020년 3월 초 학교는 폐쇄됐고 비대면 교육으로 전환했다. 학생과 교사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학교는 원격수업이라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선택했다. 당시 교육부는 학습격차 대비와 방역 안전망 구축에 나섰고, 교육 사각지대 해소와 국민신뢰 회복력을 높여가는 정책을 시행했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미래인재 양성에는 여야 한목소리 = 대선운동 기간 여야는 미래인재 양성에 한목소리를 냈다. 여야 후보 모두 '교육기회 균등'과 '교육불평등 해소'를 공약집에 담았다. 문제는 실행력에 대한 설계도가 없다는 점이다. 교육제도는 정치경제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 양극화가 교육 양극화로 이어졌음이 지난해 사교육비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22일 대구교육청 김 모 장학관은 "어떤 교육정책을 새로 내놓아도 '능력중심 경쟁사회 교육시스템'을 해소하지 않는 한 한국교육은 파행과 사교육비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획일화된 평가기준과 능력중심 교육과정은 교육을 수단으로 종속시킨다"며 "대입제도를 놓고 '수시냐 정시냐' 단순공식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 교육 분야 공약은 △자사고·외고·국제고 유지 △주기적 전수 학력 검증 조사 △정시비율 추가 확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이 제기한 교육공약에 대해 현장교사들은 '교육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동일한 기회를 주고 똑같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 게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시현상이라는 얘기다. 자사고·외고·국제고 부활은 특권학교를 용인해 고교불평등을 부추기고 사교육시장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주기적 전수 학력 검증 조사는 불필요한 경쟁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정시비율 확대도 공정해 보이지만 고교학점제와 엇박자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대구시 중등교사모임 소속 이진우 교사는 22일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처한 환경과 현실을 얼마나 담아냈는지가 중요하다"며 "특히 '공동체적 공정성'이 무엇인지부터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정책 수립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와 가치를 인정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사는 "윤 당선인이 강조하는 국민통합의 나라를 실현하려면 이런 가치를 교육에 담아야 한다"며 "공정한 경쟁을 위해 획일화된 교육과정을 정비하고 학생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창의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수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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