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위기대응

"입원은 최소화 … 돌봄은 촘촘하게"

2022-04-15 11:09:15 게재

폐쇄병동 경험-갈등 가족 동거, 상태 악화시켜 … "동료지원서비스 매우 효과적"

지금까지 정신장애인의 '위기'는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자의적이지 않는 입원요건'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타해위험'과 동일시되어 왔다. 자해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 상황을 '위기'라는 개념으로 한정한 것이다. 신체적 안전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만 위기 대응이 작동되도록 사회보호시스템이 작동되다보니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보여 왔다.

그동안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 현장전문가가 경험한 위기의 내용과 위기 개입의 방향을 분석하고 지역사회 내 새로운 위기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현장전문가들은 위기대응을 촘촘히 온전하게 지원하기 위해 '자·타해위험'으로 제한된 위기의 개념을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를 돌보거나 온전히 기능하지 못할 상황'까지 포괄하는 쪽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장애인의 현재 돌봄실태를 살펴보고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여러 위기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지원자원과 환경을 선택해 생활할 수 있도록 그 대안들을 모색했다.

청주정신건강센터가 2019년 나눔과 꿈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당사자연구' 워크샵 장면. 사진 청주정신건강센터 제공


#. '니 잘못인데 어떻게 누워 있을 수 있냐' 이모나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대하고 저도 한계치가 왔어요. 문 잠그고 당시 먹던 약 2∼3주분을 털어 넣고...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는데, 중환자실에서 위세척하고 손이 묶인 채로 깨어났어요. 한 2∼3주는 실어증 비슷하게 말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나를 왜 살렸는지 원망하고 싶었는데 극단적 시도를 한 것을 또 비난해요. 제가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생각을 해주지도 않아요.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더라구요.

가족의 폭언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느낌이 들었고 극단적 선택까지 한 정신장애인 D씨의 경험담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위기정신장애인 지역사회정착을 위한 지원체계 연구(2021년)'의 당사자 인터뷰 조사 중 하나다.

장애인개발원이 지난해 10월에 진행한 정신장애인 33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신장애인의 '위기경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이 위기양상을 촉발시켰던 상황, 즉 위기 원인으로는 '사회적 관계갈등'이 90명(27.2%)으로 1순위로 나타났다. 위기 원인 중 일상생활과 사회적 참여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는 것 또한 1순위로 '사회적 관계갈등'이 113명(34.1%)으로 나타났다.

조윤화 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14일 "가족 또는 직장 등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서적으로 긴장감을 주거나 갈등상황이 빚어졌을 때 당사자들은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이는 위기상황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4월 13일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정신질환에 대해 사회복지사와 상담하는 모습. 사진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제공


◆위기쉼터 전환지원서비스 부족 = 장애인개발원의 조사 결과 정신장애인의 위기 상황 중 입원이 필요한 응급상황으로는 '자살시도 및 자해행동'이 75명(22.7%)으로 1순위, '타인에게 공격 행동 및 신체폭력 행사'가 41명(12.4%)으로 2순위로 나타났다.

반면 가족 친구 동료 및 정신보건전문가의 도움을 적절하게 받는다면 수면문제 98명(29.6%), 심한 우울감 44명(13.3%), 불안감 38명(11.5%)은 입원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위기상황으로 인식했다.

정신의료기관의 입원 경험률은 응답자 중 276명(83.4%)이 입원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입원횟수는 평균 4.04회, 강제입원 횟수는 평균 2.05회로 여전히 강제입원을 상당 정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위기 상황발생에 대해 가장 걱정되거나 두려운 부분은 1순위로 '강제적으로 입원될까봐 두려움'이 107명(32.4%)으로 나타났다. 이어 '기존에 하고 있던 학업과 직장생활 등 나의 사회 생활이 무너질까봐 두려움'과 '가족과의 관계가 나빠질까봐 걱정됨'이 각각 49명씩(14.8%)으로 조사됐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정신장애 당사자에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입원보다 지역사회에서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가 293명(88.6%)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유로 '굳이 입원하지 않아도 편안한 곳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으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답이 136명(47.2%)으로 많았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는 곳은 가족지원 이용 정도가 높았다. 지난 5년간 주변 지원 및 가족의 정서적 지원이 260명(79.8%)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위기쉼터 서비스는 14명(4.3%), 전환지원센터는 15명(4.6%)으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 조 부연구위원은 "위기 상황 시 지역사회 내 잠깐 머무르거나 갈 곳이 없어서 입원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현재 위기 지원체계의 한계와 부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위기 사전 예방과 입원 시 권익 보호 중요 = 장애인개발원 조사 결과 새로운 정신건강 서비스 도입 필요성도 제기됐다.

사전의료지시서 82.2%, 절차보조서비스 87.3%, 오픈 다이얼로그 90.3%, 위기쉼터 87.9%로 응답자 대부분이 도입에 동의했다.

사전치료지시서는 급성기 증상 탓에 어떤 치료를 받을지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사전에 계획하는 것이다. 위기시 의사결정 대체자, 선호 의료기관과 의료인력, 입원의 기간과 유형, 선호-비선호 약물 등을 지정할 수 있다. 무작정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하기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자신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치료 및 서비스를 먼저 받을 수 있게 한다.

절차보조서비스는 정신장애인이 입원·치료 과정에서 치료 필요성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각종 절차를 보조해 정신장애인이 치료과정에 자기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퇴원 후 치료·재활서비스 등을 지속 연계해 지역에서 안정적인 정착할 수 있게 한다. 채문현 경기도 정신질환자 절차보조사업단 사회적협동조합 우리다움 팀장은 15일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도록 비자의 입원으로 인한 정신질환자의 권익보장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의의 위기에 대한 서비스 구축해야 =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위기정신장애인 지역사회정착을 위한 지원체계 연구'보고서에서 연구자들은 위기 정신장애인의 온전한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 "자·타해 위험 외 광의의 위기에 속하는 상황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적절한 정책 및 서비스를 수립해야 한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광의의 위기는 '빈곤 소외 고립 낙인 가족갈등 사회적지지 상실과 주거불안 등' 다양하다.

제시된 방안을 보면 '정신의료기관 입원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지역사회 내 서비스'가 존재해야 한다. △자타해 위협 및 일상생활기능의 저하 때 24시간 전화로 응급지원 핫라인 및 상담서비스 △모바일 정신응급팀이 정신장애인 방문 후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게 지원 △23시간 관찰서비스를 통해 불필요한 입원 방지 △지역 사회내 단기주거서비스 제공 △사전치료동의서 보편화를 통해 선택권 보장 △비자의 입원에서 절차보조인 권익옹호서비스 △신뢰할 수 있는 동료지원가가 주도하는 지원집단 등이 필요하다.

나아가 입원 후 지역사회 복귀를 위한 병원 안팎의 서비스로 △퇴원계획 수립 제도화 △퇴원후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전문의 정신재활시설 동료지원서비스 기관과 치료 연속성이 보장 △지원주택 보편화 △노동활동 지원체계 등을 갖춰야 한다.

최경숙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은 15일 "지역사회 내 위기지원을 위한 데이케어 구축과 위기 초기부터 지원체계가 지속적으로 연계 가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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