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방지법 시행 6개월

'안 만나준다는 이유로' … 살인·성범죄·사제폭탄까지

2022-04-25 00:00:01 게재

판결문 24건 분석 … 이성간 교제단절이 대부분

휴대전화 괴롭힘 일반적 … 1원 메시지도 늘어

'안 만나준다'는 게 이유였다. 가해자들은 스토킹에서 시작해 살인과 성범죄, 폭탄테러는 물론 가스 배관을 자르며 피해자를 위협했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2021년 10월 이후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경우는 전국적으로 50건이 넘는다. 이중 24건의 판결문을 취합해 분석했다.

◆전화·미행은 기본 = 종전 스토킹 범죄는 협박이나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벌금형인 경범죄로 처벌했다. 가벼운 처벌은 재범은 물론 강력범죄로 이어졌다. 2020년 이후 신상공개된 10건의 강력범죄 피의자 중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 김태현,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백광석 김시남, '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 김병찬, '송파 전 여자친구 가족 살인사건' 이석준, '천안 원룸 살인사건' 조현진 등 5건 6명이 교제 단절로 인한 스토킹에서 시작해 강력범죄로 이어진 케이스다. 결국 국회는 스토킹처벌법을 통과시켰고,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판결문 24건 중 19건이 교제 단절로 인한 이성에 대한 집착이 원인이었다.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다수였지만 남성인 경우도 있었다. 피해 여성의 연령은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다.

채무 관계로 인한 스토킹 범죄도 있지만 가족간 분쟁, 층간 소음으로 인한 분쟁 등의 사례도 있었다. 이중 교제 단절로 인한 스토킹범죄는 주로 휴대전화와 미행으로 시작된다. 전화를 걸어 받지 않는 경우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스토킹이다. 집이나 직장과 그 주변에 장시간 머무르면서 대화를 시도하거나, 무작정 방문해 행패를 부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경찰이 법원 허락을 받아 잠정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소된 대부분 사건이 잠정조치를 어긴 경우다. 잠정조치를 어긴 경우 상당수는 재판과정에서 양형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피고인들의 상당수는 조현병 등으로 심신미약이 고려된 경우도 있었고, 대상을 바꿔 스토킹을 한 재범도 있었다.

괴롭힘이 진화한 것으로는 '1원 메시지'가 있다. 사귀던 남성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자 여성의 축의금 계좌번호를 구해 1원씩 송금하면서 단문을 보내는 방식이다. 입금자명에는 '내가홍' '길동과' '사귀던' '사람이' '다알고' '있었냐' 등 식이다. 1원 메시지를 보낸 이 여성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 같은 스토킹 방법이 퍼지면서 2000자 이상 송금받은 피해 사례도 있었다.

아예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스토킹범죄를 일삼는 사람도 있다.

A씨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여성이 전화를 받을 경우 반복적으로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음성 및 영상 통화를 시도했다. 일부 피해자가 전화를 받으면 음란한 대화를 이어가면서 수치심을 안겨줬다. A씨는 이미 동종범죄 전과가 있고, 앞선 범죄로 인한 형종료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 도영오 판사는 A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성폭력치료 40시간 수강, 신상 공개 5년, 아동·청소년 기관 등에 취업제한 5년 등을 명령했다.

◆결별 통보에 가스배관 절단 = 지난 12일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합의1부(신교식 부장판사)는 가스방출, 스토킹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된 30대 B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을 명령했다.

B씨는 교제하던 여자친구가 결별을 통보하자 한 달간 문자 830차례를 발송하는 스토킹을 했고, 여자친구 집에 무단 침입했다. 집 주방 도시가스 배관을 잘라낸 뒤 40분간 가스가 방출되게 했다. 이 장면을 촬영한 뒤 여자친구에게 전송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위협하려고 도시가스 배관을 잘라 가스를 누출시켰는데 가스폭발 등 불특정 다수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라며 "비난 가능성이 큰 범죄이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스토킹범죄는 이처럼 휴대전화 등으로 전화, 문자메시지, 소셜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전송을 쉼 없이 하다가 강력범죄로 발전한다.

스토킹처벌법이 입법되기 전이지만 사제폭발물을 만들어 자폭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2021년 3월 전주지법 형사합의11부(강동원 부장판사)는 폭발물 사용과 협박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0대 남성인 C씨는 중학교 동창에게 지속적으로 만남을 요구하자 거부당하자 사제폭발물을 만들었고, 피해자 집 앞에서 불을 붙여 자폭했다. C씨는 과정에서 손가락이 절단되고 고막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수원에서는 직장 동료 원룸 맞은편에 방을 구해 스토킹을 한 남성이 체포됐다. 당시 남성의 방에서는 여성을 제압할 수 있는 물건과 흉기가 발견됐고, 수원지방검찰청에 연수 중이던 검사시보가 직접 나서 살인미수로 기소할 수 있었다.

◆사법·수사기관 속전속결 = 법 시행이후 1심 판결까지 마무리된 사건을 보면 법조계에서는 '신속한 판결이 많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고소를 하면 수사에 착수한 뒤 피의자 입건, 수사, 송치, 기소, 재판 등의 절차를 거친다. 스토킹사건의 경우 경찰이 법원의 명령을 받아 가해자와 피해자를 강제로 분리하는 잠정조치까지 한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6개월 내에 결론이 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올해 선고가 이뤄진 사건을 살펴보면 범행 이후 2달만에 1심 결론이 나온 것도 있다.

올 2월 16일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박성규 부장판사는 스토킹범죄로 구속기소된 D씨에 대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스토킹 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D씨는 8개월간 사귀던 이성과 헤어진 후 반복해서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스토킹을 시작했다. 헤어진 뒤 열흘간 D씨는 134회나 전화를 걸었다. 이유 없이 미행을 하거나 집 인근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경찰은 D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D씨는 집행유예 선고 전까지 수감생활을 했다.

같은 달 대전지법 논산지원에서는 스토킹처벌법으로 기소된 E씨에 대해 징역 8개월의 실형 선고가 있었다. E씨는 자신의 호감을 거부하는 피해자에게 집착하면서 술에 취해 찾아가기를 반복했다. 마지못해 피해자가 집 문을 열어 주면 집안에 들어가 행패 부렸고, 지난해 12월에는 문 잠금장치를 파손하거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범행이 12월에 이뤄졌는데 판결 선고가 나오기까지 두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 법원의 1심 판결까지 속전속결로 이어지는 것은 법원과 수사기관 모두 스토킹범죄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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