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 | ② 교육권
낮은 학력이 노동시장 소외, 빈곤으로 이어져
10명 중 4명 초등 졸업 이하 학력 … 장애인 기초수급률, 정상인의 5.3배
평생교육 절실하지만 참여율 1.6% … 관련법, 국회 상임위서 1년째 계류
#1. "지나가다가 때리시면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여기 무릎 꿇고 저희가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사정하겠습니다."(2017년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장에서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은 한 학부모)
#2. "모든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권을 차별없이 보장해야 하는 국회가 장애인의 교육권을 방치하는 것은 그 어떤 핑계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크나큰 잘못이다. 의원님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원님들이 그 자리에 앉아계실 수 있는 이유는 국가가 교육권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의원님들께서 국가의 역할을 하실 때다." (지난 2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정의당 장혜영 의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이어지면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외침은 이동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권·노동권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28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만 25세 이상 국내 등록 장애인 중 37.6%는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이하(무학 포함)로 나타났다.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또 교육기본법 제8조는 '모든' 국민이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장애인 3명 중 1명은 이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비장애인과 비교하면 교육 불평등은 더욱 두드러진다. 만 25∼64세 장애인의 최종학력은 중졸 이하 31.1%, 고졸 이하 45.0%, 대학 이상 23.9%다. 같은 해 OECD가 집계한 우리나라 25∼64세 전체 국민의 교육수준은 중졸 이하 11%, 고졸 이하 39%, 대학 이상 51%였다.
이처럼 학령기에 맞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장애인에게 평생교육은 절실하다. 하지만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1.6% 이하다. 전체 성인 평생교육 참여율 43.4%에 비해 턱 없이 낮다.
낮은 참여율의 배경으로는 부족한 교육비와 교육기관이 꼽힌다. 전국 평생교육기관 수는 4295개에 달하지만, 장애인 평생교육기관 수는 308개로 전체의 7.2%에 불과하다. 특히 2018년 기준 특수교육대상 학생 1인당 평균 특수교육비는 연간 339만8000원에 비해, 장애인 1인당 평생교육 예산은 연간 2287원(장애인 평생교육 중장기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불과하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전장연 공동대표)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장애인 평생교육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직장 잡아도 고용불안에 시달려 = 장애인들의 저학력은 결국 노동시장에서 소외로 이어진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1년 장애인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7.3%, 고용률은 34.6%, 실업률은 7.1%다. 전체 국민과 격차는 경제활동 참가율은 26.4%p, 고용률은 26.6%p가 낮다.
그나마 일자리를 잡아도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장애인이 많다. 장애인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67.8%에 달한다. 또 사업체 규모를 살펴보면, 43.9%가 5인 미만 사업체에 종사한다. 이 비율은 전체 인구(36.5%)보다 높았다. 평균 주간 취업시간도 35.6시간으로 전체 인구 39.5시간보다 짧고, 평균 근속기간은 6년 3개월이다.
이런 고용불안은 높은 빈곤율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수급자인 장애인은 전체의 19.0%다. 이는 전체 인구 수급률 3.6%(2019년 12월 기준)에 비해 5.3배나 높다.
장애인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고, 실제로도 가난하다. 장애인이 경제상태를 상층 혹은 중층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30.6%다. 전체 인구에서는 중상층으로 인식하는 비율 60.9%에 비해 턱 없이 낮다. 실제로도 장애인 가구의 소득은 낮다. 2019년 기준으로 장애인 가구의 평균소득은 4246만 원으로, 전국가구 평균소득 5924만 원의 71% 수준에 그쳤다. 장애인 가구는 소득분위 1~2분위에 59.8%가 분포해 저소득가구 비중이 높다.
◆가난한 저학력 장애성인, 노동착취 피해 사례 속출 = 사정이 이렇다보니 저학력 장애성인들이 노동착취를 당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상황이 어려운데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2염전노예' 사건으로 알려진 노동착취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전남경찰청은 전남 신안에서 염전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 장 모씨를 사기 혐의 등으로 입건했다. 자신의 염전에서 일한 노동자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 그의 신용카드 등을 부당 사용한 혐의였다.
장애인으로 알려진 피해자 A씨는 2014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전남 신안에서 노동력 착취 등의 피해를 입었다며 사업주를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상습 준사기, 감금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A씨 측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7년 가까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염전 노동을 시켰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 중인 이 사건에서 지난 8일 검찰은 장 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전남경찰청은 염전에서 일한 다른 장애인들의 급여를 착취한 혐의로 장씨 가족 4명도 추가로 검찰에 송치했고 다른 피해 사례도 조사중이다.
또 지난 27일에는 전북 정읍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40대 B씨가 1992년 5월부터 지난 3월까지 익산의 소 축사에서 30년 가까이 노동력을 착취당했다고 밝혔다. B씨는 축사 옆 컨테이너에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며 비료주기, 청소 등을 맡았다. 그는 5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일을 도맡아 했지만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연금, 주택보조금, 기초생활수급비 등 90여만원의 B씨의 수급비도 축사 주인이 모두 통장에서 인출해 썼다.
◆ 희망에 부풀었던 장애인 다시 거리로 = 현재 장애인 평생교육은 '평생교육법' 체계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평생교육법' 체계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장애인 평생교육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장애단체를 중심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 요구가 커지자 일부 국회의원들이 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는 법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장애인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현재 국회에는 유기홍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조해진 의원(국민의힘)이 각각 대표발의한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이들 법안은 장애인 평생교육이 권리임을 명시하고 국가·지방자치단체 의무 규정, 장애인 평생교육의 독자적 전달체계 및 심의체계 확립, 장애인 평생교육 지원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전장연 관계자는 "장애 배제적인 교육 환경으로 인해 교육 불평등과 교육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안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법안은 발의된 지 1년이 넘었음에도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법안 제정을 위해서는 국회 교육위원회의 법안소위에서 심의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법안소위 일정은 미정이며 교육위원회는 4월 임시국회 내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유기홍 의원은 "장애인에게 교육권을 생명과도 같다. 공부를 해야 일자리를 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교육위원회는 하루빨리 회의를 열고 통과에 앞장서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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