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계곡살인' 증거되나

심리적 지배로 살인? … 법원 인정 관심

2022-05-06 11:16:38 게재

검찰 "생명보험 등 증거 종합적 판단" … 공범·조력자 등으로 수사 확대

검찰이 이른바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조현수씨를 사건 발생 2년 11개월 만에 기소하면서 주요 근거 중 하나로 공소장에 적시한 '가스라이팅'에 관심이 모아진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 가스라이팅은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진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씨가 지난 1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6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공소장에 이들이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윤씨를 상대로 이른바 가스라이팅을 했다고 적시했다. 이씨가 교제를 시작한 2011년경부터 윤씨 일상을 철저히 통제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게 했고, 사건 당일에도 계곡에 뛰어들게 했다는 것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가스라이팅'을 살인의 증거로 인정할 것인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가스라이팅을 인정한다면 피해자의 의사능력을 무시한 셈이 돼서 법원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면서 "직접증거가 없다면 '가스라이팅'이라는 정황증거만으로 혐의 인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미국에서 남자친구에게 수만 통의 메시지를 보내서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 여성을 과실치사로 처벌한 사례가 있다"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증거가 충분하다면 처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런 사건의 특성상 자료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 "또한 자료의 해석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가스라이팅과 같은 정황증거 외에도 살인 혐의를 입증할 다수의 증거를 확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도 살해 시도 전마다 (만료된) 보험금의 실효를 살린 행위 등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기소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검찰은 이씨와 조씨를 체포하고 1주일 뒤 이들의 은신처인 오피스텔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안방 천장에 숨겨둔 휴대전화 5대, 노트북 1대, 이동식저장장치(USB) 1개를 확보했다.

◆휴대전화·노트북·USB 확보 = 앞서 4일 인천지방검찰청 형사2부(김창수 부장검사)는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로 두 사람을 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내연남 조씨와 함께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 24분쯤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 윤씨를 살해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검찰은 이들이 수영할 줄 모르는 윤씨에게 4m 높이의 바위에서 3m 깊이의 계곡물로 구조장비 없이 뛰어들게 해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구조를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하지 않아 살해했을 때 적용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아닌 직접 살해한 상황에 해당하는 '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이들은 앞서 2019년 2월과 5월에도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윤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는다. 피해자 윤씨가 사망하기 전 계곡에서 함께 물놀이한 조씨의 친구도 살인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들이 윤씨 명의로 든 생명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씨와 조씨는 작년 12월 14일 검찰의 2차 조사를 앞두고 잠적한 뒤 4개월 만인 지난달 16일 고양시 삼송역 인근 한 오피스텔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건을 맡은 인천지검 주임 검사가 인사 이동할 때까지 도피 생활을 계속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또 수사 검사를 비난하는 기자회견문을 써서 보관하는 등 검찰 수사와 향후 재판에 대비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들이 4개월간 도피 생활을 할 때 은신처를 마련해 준 30대 남성 2명을 최근 구속했으며, 또 다른 조력자 2명도 수사하고 있다.

◆이씨 딸 입양 무효확인 소송도 = 한편, 검찰은 유가족 요청에 따라 윤씨의 양자로 입양된 이씨의 딸에 대해 입양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 관계자는 "유가족이 피해자의 양자로 입양된 이씨의 딸과 관련한 가족관계 등록 사항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검사가 인천가정법원에 입양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 유가족에게는 장례비와 생계비 등을 일부 지급했고 향후 심리치료 등 필요한 지원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안성열 장세풍 기자 · 연합뉴스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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