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원형복원
가리왕산 복원 시동 … 올해 안에 복원방안 나온다
산림청 "올해 설계예산 20억원 강원도로 내려가" … 강원도 "생태복원추진단 자문 거쳐 올해부터 수목 종자채취"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가리왕산에 알파인 스키장을 건설하면서 78.3ha의 원시림을 베어냈다. 올림픽 일주일, 장애인올림픽까지 보름도 안되는 경기를 위해 남한 최고의 원시림을 훼손해야 하느냐를 놓고 5년 동안 큰 논쟁이 벌어졌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강원도는 지역주민 반발을 이유로 경기장을 그냥 방치했다. 2019년 여름 30mm의 비에 표층 토양이 다 쓸려내려가 3km의 슬로프가 온통 자갈사막으로 변했다. 강원도는 환경영향평가 때 약속한 △표토 침식 방지 △표토 저장 △산사태 방지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표토 저장만 네군데에서 일부 이루어졌다.
2019년 여름 연습코스 하단 숙암계곡의 슬로프가 모두 떠내려갔다. 강원도는 국비지원을 받아 그곳을 계곡이 아니라 다시 슬로프로 복구했다.
그 후 4년이 지났다. 슬로프 안에는 '싸리나무' '병꽃나무' '일본잎갈나무' '개벚지나무' 등 일부 수종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개벚지나무는 가리왕산의 주요 수종 가운데 하나지만 임도 주변에 많았다. 1000고지에 순환임도가 개설되면서 햇빛을 좋아하고 빨리 자라는 개벚지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일본잎갈나무는 원래 가리왕산 수종이 아니라 해발 800m 이하 계곡지대에 인위적으로 심었던 나무다. 3km 길이의 알파인 활강경기장 슬로프가 맨땅으로 드러나면서 이 두 수종이 급속하게 세력을 넓히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자연 재생 과정을 거쳐 가리왕산 숲은 원래의 숲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고 있는 숲을 최대한 지키는 쪽으로 복원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손요환 고려대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19명의 생태복원추진단 위원들과 함께 복원방안을 마련중이다. 기존 가리왕산의 임상(숲 상태)에 최대한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하려 한다."
홍사은 강원도 녹색국 산림관리과장의 말이다. 홍 과장은 "기존 가리왕산 슬로프에 있던 16개 대표수종을 선정해 올해부터 종자채취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3월 18일 산림청 산지관리위원회도 복원의 최종 목표가 기존 임상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홍 과장은 "곤돌라 운영을 위한 하봉 정상부 데크는 산림청과 환경부 협의를 거쳐 기존보다 축소된 형태로 설치될 것"이라며 "2년 한시운영 후 시설물 존치 여부는 환경부와 산림청이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철거가 확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조경은 산림청 산림환경보호과 사무관은 "가리왕산 복원을 위한 전체 예산은 420억원이 책정됐고 올해 20억원의 설계비가 70% 국비, 30% 지방비로 강원도에 배정됐다"며 "하봉 정상부 데크 설치에 대한 국유림 사용허가가 나갔고, 정선군에서 조만간 시설 설치공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틀 동안 3km 슬로프 식생조사 =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4년, 가리왕산 슬로프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4월 30일과 5월 1일 이틀에 걸쳐 하봉 정상부에서 숙암리계곡까지 3km에 이르는 메인 슬로프 식생 재생 상태를 조사했다.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회장 윤여창)은 2013년부터 가리왕산 식생조사를 해왔다. 2020년 이후 모니터링은 파타고니아코리아 후원을 받아 진행한다. 이번 모니터링에는 미 산림청 연구관인 내이트 앤더슨 박사도 동행했다.
30일에는 하봉 정상부에서 1000고지 순환임도까지, 1일에는 1000고지 임도에서 해발 750미터 스키경기 종점까지 조사했다. 슬로프 전체 식생 자연 재생 상황과 10개의 조사구 내 식생을 모니터링했다.
하봉 정상에서 1100고지까지는 대부분 '싸리나무'와 '병꽃나무' 같은 관목(작은키나무)류가 자리를 잡았다. 2018년 이후 가장 먼저 슬로프에 퍼진 싸리나무는 이제 자기 역할을 마치고 쇠퇴하는 모습이다.
콩과 식물인 싸리나무는 척박한 토양에 먼저 자리를 잡고 질소를 고정해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밑둥지름 3cm 정도로 자란 싸리나무는 겨울철 '멧토끼'들의 중요한 식량이기도 하다. 멧토끼들이 껍질을 벗겨먹는 바람에 쓰러진 싸리나무도 많다. 싸리나무 바닥에는 낙엽층도 관찰된다.
그 사이로 교목(큰키나무. Tree)인 '개벚지나무' '일본잎갈나무'들이 왕성하게 세를 확장하고 있다. '거제수나무' '사시나무' '사스레나무' '왕사스레나무' '음나무' 등도 눈에 띈다. 아주 척박한 경사지엔 '소나무'들이 씨앗발아를 시작했다.
중간키나무(아교목. Subtree)는 '호랑버들' '마가목' '시닥나무' '함박꽃나무' '쉬땅나무'가 관찰됐다. 초본종은 '독활'(땅두릅) '달맞이꽃' '서양민들레' '물레나물' '당귀' '태백제비꽃' '배초향' '얼레지' '노랑제비꽃' '대사초' '쑥' '취' '양지꽃' 등이 야장에 기록됐다.
원래 가리왕산 하봉 정상에서 1000고지까지는 '신갈나무' '왕사스레나무' '거제수나무' '사시나무' '층층나무' 등 다양한 큰키나무들이 섞여서 자라던 숲이었다.
1380m에서 1300m까지 정상부 일대엔 신갈나무가 제일 많았고 그 아래 밑둥지름 20cm에 이르는 거대 '철쭉'이 대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 스스로 재생중인 가리왕산 숲에서 이런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개벚지나무와 일본잎갈나무 주목 = 5구간(1100~1000m)은 슬로프 양쪽으로 기존 거제수나무숲이 자리잡은 곳이다. 5구간의 우점종은 '거제수나무'와 '호랑버들'이었다. 방형구 안에서는 △교목 - 거제수나무 30개체, 사시나무 19개체, 일본잎갈나무 1개체, 소나무 3개체 △아교목 - 호랑버들 4개체, 쉬땅나무 2개체 등이 관찰됐다.
1일 식생조사를 한 1000고지 임도 아래 슬로프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일대는 정상부에 비해 비탈이 심하지 않고 해발 950m부터는 계곡이 시작돼 상대적으로 수분 공급도 많은 곳이다. '사시나무'(1000~900m) '층층나무'(900~850m) '다릅나무'(850~800m) 등이 우점종을 차지했던 숲이었는데 '거제수나무' '일본잎갈나무' '개벚지나무' 등이 우점종으로 자라고 있다.
사시나무 층층나무 다릅나무도 일부 자연 재생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숫자도 적고 키도 작은 상태다. 반면 일찍 뿌리를 내린 일본잎갈나무나 개벚지나무는 키가 4미터 이상으로 크게 자랐다.
◆"자연 재생에 사람의 힘 보태야" = 윤여창 회장(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은 "지금 상태로 그대로 두면 큰키나무로 빨리 자라는 개벚지나무와 일본잎갈나무가 일단 먼저 자리를 잡을 것"이라며 "가리왕산이 원래의 임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는 폭우가 왔을 때 토양 유실이나 산사태 등을 막는 일"이라며 "슬로프에 있는 인공적인 시설물들을 제거하고 여름철 강우에 토사유출을 막는 사방공사 등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적으로 재생된 지역은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며 "일부 경사가 급한 부분만 손을 대는 방식으로 자연 재생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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