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정현 전 국회의원(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
"호남지역 꿈틀거리는 변화 조짐 느껴"
전남도지사 선거에서 18.81% 득표
보수 정당 후보로는 최고 기록 세워
지방선거 이후 약 보름간 전남 지역을 돌며 낙선인사를 하고 상경한 이 전 의원을 17일 서울 종로구 내일신문 본사에서 만났다.
■6.1 지방선거 이후 보름 가까이 전남 구석구석을 다녔다고 들었다.
선거 이후 14일까지 지역을 누비면서 감사인사를 드렸다. 고마움을 플래카드 하나로 때우기에는 가슴이 벅찼다.
또 한편으로는 제 마음을 다지고도 싶었다. 지방선거에서 보내주신 성원은 기대이자 꿈틀거리는 변화였다고 본다. 16만명이 넘는 분들이 표를 주셨는데, 그 분들 표현으로 하자면 '당신 때문에 처음으로 배신을 했다'고 하시더라. 어떻게 하면 이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낙선했다고 홱 돌아서는 게 아니라 여당의 여러 여건을 활용해서 부응을 해야겠다 싶었다.
■지방선거 결과를 문재인정부에 대한 심판이라고 평가하나.
문재인정부에 대한 심판이 당연히 맞지만, 솔직히 그런 평가는 직선제 이후 우리나라 모든 선거에서 항상 같았다. 어느 선거에서나 국민들은 심판을 한다. 심판은 반복되기 때문에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이 새롭게 혁신과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다음에 또다른 심판을 받아 (승리를) 내주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신을 차려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심판을 받아서 저렇게 됐다라고 룰루랄라할 계재가 아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해서 얻어진, 반사이익으로 얻은 승리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이후 심기일전은커녕 국민의힘이 권력투쟁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권력투쟁이라기보다는 정권경쟁으로 보고 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권한 세력 주변에 정권경쟁이 없었던 적은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상대방을 라이벌이나 파트너가 아닌 '에너미(enemy·적)'로 본다든지, '나여야만 한다' 또는 '우리 당이어야만 한다'는 식으로 가면 그건 권력투쟁이 돼 버린다.
■겉으로야 경쟁이라 하겠지만 결국은 권력투쟁 아닌가.
권력투쟁식 접근으로 성공하는 걸 본 적이 없다. 37년 정치하면서 느낀 점은 새는 정말로 양날개로 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다소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무너지고 붕괴하면 붕괴를 즐거워하던 세력이 몰락한다. 그리고 붕괴된 줄 알았던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당내 정권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상대방을 존중해가면서 자기 존재감을 높여야지, 상대방을 신랄하게 공격해 궤멸시키려고 하면 당장 그 순간에는 시원할지 몰라도 결국은 자신이 죽는 길이라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정권의 흥망성쇠를 가장 가까이, 그리고 깊숙이 들여다봤던 사람의 한 명으로서 느낀 점이다. 언제나 상대방의 흠결은 굉장히 커보였고 나의 작은 장점은 지고지선해 보였지만 세월이 흐르고 많은 걸 겪다 보니 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라.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뭐라고 보나.
총선 공천이 2년이나 남았고, 당권경쟁까지도 시간이 좀 있고, 대선은 아직 5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쇄신하고 혁신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당장 선거를 의식한 행보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차제에 당을 혁신하고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
■당의 현대화란.
국민들 요구나 의식수준이 달라지게 되면 거기에 맞게 정당구조, 정치체제가 변해야 하고 선거운동방식이나 메시지도 달라져야 한다. 국회의원 포함한 공천 대상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옛날처럼 그저 지역에서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하기에는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인의 자질이 변화했다. 다양성과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높다. 외교, 안보, 경제, 대기업·중소기업·중견기업·소상공인 문제, 과학, 통일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풀을 만들고 이들을 실제 필요에 따라 뽑아야 한다.
국회는 국정전체에 대한 법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고 하는데 어느 한쪽 세력이나 한 분야 사람들만 몰려있으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다. 당이 지속적으로 집권하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려면 이런 노력이 있어야 한다.
■곧 출범하는 혁신위원회는 긍정적으로 보나.
37년 정치하는 동안 당에 혁신위가 없었던 적도 없지만, 실제로 혁신이 된 걸 본 적도 없다. 상한 뿌리는 방치하고 벌레먹은 이파리 몇 개 따는 데 그치는 의례적인 혁신만 했다는 이야기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혁신위가 되려면 시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사심섞인 진단을 하면 바르지 못한 해법이 나오기 때문에 혁신안이 발표되는 바로 그 순간에 또다른 혁신이 요구되거나 그 자체가 혁신 대상이 돼 버리는 상황이 된다.
그동안 존재했던 모든 혁신위나 쇄신위가 제대로 역할을 못했던 이유는 당시 당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의 사적인 의견이 반영되는 '사심위'였기 때문이다.
■최근 김건희 여사 행보 관련해 논란이 있다.
일단 야당의 문제제기에 대해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국민 중 한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김건희 여사 행보가 꼭 부정적이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퍼스트레이디 상이 다 똑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과거 구중심처에 들어가 있는 왕비처럼 꼭 그렇게 있어야 하는 게 맞나. 대한민국 여자는 남편이 공무원이고 하면 무조건 뒤에서 숙이고 살고 자신의 삶을 다 반납하고 살아야 하나.
물론 모든 공인은 평가를 받는 것이 숙명이고 그 평가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오버를 해서도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인이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예를 들어 패션이든 뭐든 하나하나 시비를 건다면 시비를 거는 그 사람이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지고 쩨쩨한 사람이다.
■다시 지방선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전남에서 얻은 18.81%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나.
변화의 조짐이라고 본다. 호남의 민심이 변화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섣부른 이야기다. '변화의 조짐'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87년부터 35년간 막대기만 꽂아도 민주당이면 된다라고 했던 것이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호남 민심이 민주당 지지에서 바로 국민의힘 지지로 바로 변하기는 어렵지만 '비민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주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이건 몇 사람이 사발통문 돌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광주시민 전체가 민주딩에 대해 강한 경고를 한 거다. 그동안은 사실상 민주당과 호남이 동일체였다면, 이제 호남은 한 발 떨어져서 민주당을 바라보고 있는 거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호남지역에 꾸준하게 다가서려고 한 부분도 작용했을까.
국민의힘이 그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호남 지역을 지속적으로 찾은 부분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사실 미미하다. 그보다는 35년 민주당 독점 체제에 대한 불만이 호남 민심의 목젖까지 찬 부분이 가장 컸다고 본다. 또 처음으로 국민의힘에서 맞수다운 맞수가 될 만한 후보들을 냈다는 점도 있다. 그 전에 보수정당은 호남 지역에 아예 후보를 내지 않거나 도저히 대안으로 볼 수 없는 후보를 냈다면, 이번에는 (민주당 후보가) 못마땅하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상대를 냈기 때문에 의미있는 득표를 했다고 본다.
■호남지역 단체장 선거에서 무소속 돌풍에 대한 관심도 높다.
전남지역의 경우 22개 시장군수 중에 7명, 3분의 1이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이들은 민주당이었다가 공천에 반발해서 무소속 출마한 경우이기 때문에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큰 의미를 둘 사안은 아니다. 국민의힘이 무소속 단체장들과 일종의 당정협의를 하겠다는 이야기도 일부 있다고 들었는데 그 역시 지극히 소극적이고 효과가 크지 않은 '이벤트성'이라고 본다.
솔직히 그동안에도 별의별 이벤트 다 했다. 그것 가지고는 절대 변화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호남 포기 전략이 마치 아닌 것처럼 위장할 게 아니라 국민의힘을 전국정당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목표의식을 갖고 호남 지역에 각별한 관심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어떤 각별한 관심과 정성일까.
정치의 기본이 재화의 배분인데 호남에 더 적극적으로 재화를 배분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호남지역에선 '호남소멸'의 위기감이 큰 상황이다. 대통령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내에 호남특위를 둔다든지 해서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호남 지역에 접근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호남만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구산업시대에는 여건이나 환경 때문에 다른 지역에 재화가 배분됐다고 치자. 그러나 신산업시대에는 교통이나 항만 여건, 수도권과의 거리나 이런 부분이 의미가 없다. 신산업에 있어선 정치적 정책적 배려가 호남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내연기관 차들이 울산같은 곳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면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차는 얼마든지 호남 지역에 둘 수 있다. 2차 전지 산업은 어떤가. 전남 여수 여천 화학단지나 광양제철에서 나오는 원재료를 가지고 얼마든지 이쪽에 부품 소재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 코로나19 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전남 화순의 백신산업은 어떠냐. 이제는 백신 개발이 필수인 시대가 됐는데, 그렇다면 전남대병원까지 있는 화순에 예방백신과 치료백신까지 할 수 있는 백신산업단지 조성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호남에서 할 수 있는 산업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국책사업으로 추진을 해야 한다고 본다.
■향후 계획을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음 번에 출마해달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지금 호남 소멸의 문제가 너무 절박해서 앞으로 정치일정에 대해 섣불리 말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정부쪽하고 일할 수 있는 여건만 마련된다면 광주 전남에 내려가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 민주당 도지사든 민주당 도의원이든 시군구 의원이든 가리지 않고 호남지역의 현안 문제에 대해 정부·여권과 호남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