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 지역 역사가 되다

2022-07-05 10:56:12 게재

관악구 '생애 구술사' 책자로 정리

마을·이웃의 삶 통해 공동체의식↑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생겼어요.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고…." "모임에 가면 대화는 하는데 남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이야기 들어주는 것의 소중함을 느꼈어요."

서울 관악구에 사는 박후란(45·대학동)씨와 박수진(27·남현동)씨는 최근 '글쓴이' 대열에 합류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남기는 '구술채록자'다. 평범하지만 지역과 동네 역사의 일부를 채워가고 있는 이웃이 글의 주인공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풀어낸 주민들과 함께 책자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관악구 제공


5일 관악구에 따르면 구는 지역 역사와 함께 한 여성들의 삶을 주제로 한 책을 펴냈다. 관악에 뿌리내리고 꽃피운 '그녀들의 이야기(Her Story)'다. '관악, 여성 구술 생애사(生涯史)'라는 부제도 붙였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지역이 품고 있던 각종 기억과 생활유산이 급격히 사라지는 가운데 마을 모습과 주민들 삶을 기록해 보존하는 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관악구는 특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해서 지역 발전과정에서 역할·기여한 부분을 재조명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구 관계자는 "여성의 자긍심 고취, 양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관심 있는 주민을 공개 모집, 구술채록자로 양성하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박후란씨와 박수진씨를 비롯해 20대부터 최고령자인 김경옥(69·낙성대동)씨까지 9명이 동참했다. 관악구 관계자는 "문화재단이나 연구원 등에서 지역 여성의 생애사를 구술·기록하는 작업이 간혹 진행되곤 하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기획하고 주민들이 주체로 참여하는 사례는 처음"이라며 "한국구술사연구소와 협력해 구술채록자를 양성하면서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와 역량을 확대하고 강화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권희정 구술채록 전문가와 함께 옛 신문기사 등 사전조사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줄 여성부터 발굴했다. 개략적인 지역의 사회 문화 역사를 공유하고 구술 후보자를 추리고 면담을 진행했다. 봉천동에서만 30년을 살아온 윤집득(93) 할머니를 비롯해 미성동 일대 봉제공장 역사를 꿰뚫고 있는 채춘희(55)씨 등이 흔쾌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지역과 공유하겠다고 동의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화상회의를 통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등 제약이 많았지만 1년 5개월여만에 결실을 거뒀다. 의료협동조합을 만들어낸 난곡엄마 김혜경(78)씨, 관악문화원과 함께 해온 문화인 오미숙(59)씨, 관악에 정착한 결혼이주 여성 '흐엉 박채원(35)'씨 등 10명이 그간 살아온, 지금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갈 관악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경옥(69·낙성대동) 채록자는 아예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관악에서 자라고, 관악에서 살아온 50년의 삶'을 기록했다.

관악구는 지난달 '그녀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기록한 주민들에 감사장을 전했다. 참여한 주민들에는 감사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박후란씨는 시아버지의 자서전, 박수진씨는 엄마를 비롯한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지역사를 정리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경옥씨 역시 "최근 들어 젊어지는 관악,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 담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와 이웃에 대한 애정, 공동체 의식은 기본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2019년 여성가족부 지정 '여성친화도시'에 합류하면서 성평등정책 추진기반을 구축하고 여성의 경제·사회 참여확대와 지역사회 활동역량 강화 등 5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여성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양성평등한 문화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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