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 가리키던 '블랙박스'의 진실은?

2022-07-06 11:45:59 게재

3년 전 수원 물류창고 화재사건 피해자

또다른 블랙박스 존재 알고 재조사 요청

경찰 "차주·소방측 확인결과 녹화 안돼"

3년여 전 경기도 수원시 오목천동 물류창고 화재사건의 한 피해자가 최근 국민신문고에 재조사를 요청하고 나섰다. 당시 소방당국의 화재조사서에 언급되지 않은 또 다른 '블랙박스'의 존재를 뒤늦게 알았고 경찰과 소방의 최초 목격자 진술이 상이한 점 등에 의문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5일 당시 피해자 중 한명인 류옥승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 3월 21일 국민신문고에 '2019년 4월 26일 오전 11시 45분쯤 발생한 수원 오목천동 샌드위치패널 물류창고 화재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하는 민원을 냈다. 류씨가 3년이 지난 화재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요청한 이유는 소방당국의 화재현장조사서 등 관련 자료에 언급되지 않은 아반떼차량 블랙박스의 존재를 지난해 7월에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4월 25일 수원 오목천동 물류창고 화재 진압 후 현장 사진. 왼쪽이 식품창고, 오른쪽이 킴벌리숍이다. 경계부분 아래쪽이 소방당국이 추정한 발화지점이다. 사진 류옥승씨 제공


◆피해자, 소방이 추정한 발화지점에 이견 = 소방당국이 작성한 화재현장조사서에 따르면 이 화재로 물류창고(바닥면적 196.79㎡) 1동이 불에 탔다. 당시 창고를 임대해 마스크 유통업(킴벌리숍)을 하던 류씨와 식품유통을 하던 또 다른 임대인 A씨, 창고건물 소유자 B씨가 재산 피해를 입었다. 소방당국은 신고자 진술과 화재당일 건물 인근에 주차된 백색화물차(A씨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확인한 결과 킴벌리숍 앞에 쌓아둔 파지더미에서 최초 불꽃이 시작돼 건물외부에서 내부로 연소가 진행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발화지점에 전기설비 등 특이점이 없고 창고 직원이 담배를 피우나 블랙박스 영상엔 흡연여부가 안보이며 담배꽁초 및 라이터 등 발화요인도 발견되지 않아 '원인미상'으로 결론 내렸다.

당시 류씨의 사업장은 무보험 상태였고 A씨와 B씨는 보험에 가업한 상태였다. 이 화재로 류씨는 약 5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화재사건 이후 절망하던 류씨는 당시 화재현장 사진과 블랙박스 동영상 등을 하나씩 확보해 살펴보면서 화재발화지점 등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 유력한 증거로 작용한 '백색화물차 블랙박스' 풀버전을 확보, 이를 판독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아반떼차량의 블랙박스가 백색화물차 블랙박스보다 화재현장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음을 알게 됐다. 백색화물차 블랙박스의 영상을 보면 아반떼차량의 블랙박스 LED램프가 좌우로 움직이고 있어 주차중 녹화상태임을 알 수 있고 화재조사관이 이 차량의 블랙박스에서 SD카드를 빼자 LED램프가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해당 블랙박스 제조업체측은 "SD카드가 불량일 경우 LED램프는 점멸되지 않고 멈추며 기계가 고장 나면 LED램프가 작동될 가능성은 많이 낮다"며 "주차중 LED가 정상동작됐다면 정상적으로 녹화됐다고 판단하면 된다"고 류씨에게 회신했다.

류씨는 또 자신의 사업장 직원이자 화재를 처음 목격한 C씨의 진술내용이 경찰조사기록과 소방조사서에 다르게 기록된 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C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2층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초인종 소리가 울려 내려가보니 출입문 오른쪽 구석의 배 높이부터 불이 올라가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소방조사서에는 "C씨가 최초 타는 냄새를 맡고 건물 밖으로 나와 확인 시 파지가 쌓여 있는 건물 입구에서 불꽃과 연기를 보았다고 진술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류씨는 "화재 당일 YTN은 '소방당국은 창고 안 컨테이너에서 처음 불꽃을 봤다는 신고자 말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현장사진과 원주 국과수의 블랙박스영상 분석결과 등을 보면 식품유통점 내부에서 발화해 외부의 파지와 킴벌리숍으로 옮겨붙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만약 발화지점이 식품유통점 내부라면 A씨측 보험사가 류씨의 피해까지 보상해야 할 수도 있다. 류씨는 이런 사정이 화재조사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불길·발화지점 알 수 있는 증거 = 하지만 경찰과 소방은 류씨의 주장은 억측일 뿐이며 조사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반떼차량의 블랙박스에 대해서는 녹화가 안되어 있어 증거 가치가 없다고 했다. 수원서부경찰서 관계자는 "국민신문고 민원을 넘겨받아 재조사한 결과 블랙박스는 당연히 지워졌고 차주와 소방측에 확인해보니 (작동이 안돼 녹화가) 안됐음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사건을 종결했는지 등 추가 질문에는 "더 자세한 내용은 없고 알려줄 수도 없다"고 했다.

류옥승씨는 "아반떼차량 블랙박스는 발화지점과 불길이 번지는 과정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증거인데 이를 확보했으면 기록에라도 남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경찰 조사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너무 억울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납득할 만한 해답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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