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비대위 한 달 …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재창당 등 6개 의제 제시 … "시민과 공개 토론 하겠다"
"기성 정치문법에 완전 포획" "실력 갖춰 효능감 보여야"
정의당이 모든 것을 바꾸는 '재창당' 수준의 재건축에 들어갈 것인지,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보이는 부분들을 고치는 리모델링에 그칠지 시험대에 올랐다. 대통령선거에 이어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은 정의당이 존립 위기에서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혁신안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가 한 달이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재창당' 수준의 변화를 위한 방향을 잡을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계파간 힘겨루기가 존재하고 책임론을 앞세워 경쟁자를 밀어내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는 전언이다. '당명'까지 다 바꿀지, '당명'만 바꿀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12일 정의당에 따르면 2012년 6만명에 육박했던 정의당 일반당원의 수가 4만명대로 떨어졌고 4개월이상 월 1만원 이상의 당비를 내고 선거권을 확보한 유권자(권리당원)는 1만8000명대까지 떨어졌다. 2017년2월 대선후보 선출 때에 2만227명이었던 유권자가 2019년 7월 당대표선거 때는 3만213명까지 상승했다. 2년 만에 1만명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2020년10월 당대표 선거때는 2만6578명으로 줄더니 지난해 3월 당대표 선거땐 2만3317명으로 3000명이상 감소했다. 6개월 후인 같은 해 9월에 2만1159명으로 줄었고 올해 들어서는 2만명대마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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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은 대중의 관심권에서 벗어난 듯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4%내외를 벗어나지 못한 지 오래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 자중지란에 빠져 있지만 정의당 역시 '대안'이 아니라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가운데 '정의당의 위기'로 만든 책임론이 최근 부상했다. 지난 10년간 진보정당의 얼굴 역할을 해온 심상정 의원에 직격탄이 던져졌고 비례대표 5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본격적으로 '정의당 수술'을 위한 '백가쟁명'이 시작됐다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재창당 수준의 전면 쇄신" =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전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비상대책위원회는 한 달간 이루어진 평가를 토대로 재창당, 노동, 지역, 진보정치통합, 선거연대, 지도체제 등 여섯 가지를 핵심 의제로 압축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재창당 수준의 전면적 쇄신의 과제로 당명과 강령 개정을 논의하겠다"며 "당명과 강령은 당 노선의 가장 확실한 선언인 만큼 치열하고 심도 깊은 토론을 거쳐 쟁점을 정리하고 정돈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노동을 현장 연대와 사업뿐만이 아닌 구체적인 정치 행보와 정책의 토대로 만들겠다"며 "지역정치모델을 수립하는 한편 중앙당에서 지역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전당적 차원의 사업의제를 발굴하는 등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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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진보정치통합과 선거연대에 대한 논쟁은 밀린 숙제와도 같다"면서 "정의당의 10년 전망을 수립하는 과정 속에서 이 또한 치열하게 토론하고 쟁점을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 "지도체제는 차기 혁신지도부가 쇄신을 이끄는 데 필요한 정치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자 동시에 당내 다양한 의견을 통합하는 하나의 정치과정"이라며 "당의 소통과 리더십의 책임 문제가 꾸준하게 제기돼온 만큼 차기 지도부 이후까지를 고려한 책임 있는 체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혁신안'을 만들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 비대위원장은 "내부 토론의 시간을 끝내고 당원과 지지자, 시민들과 함께 하는 공개 토론을 벌이겠다"고 했다.
◆"정세나 상황에 조응해야" = 최근까지 정의당에서 핵심 역할을 해온 모 인사는 "정의당이 이념과 계파에 빠져 실력을 키우지 못한 데에 정의당 위기의 원인이 있다"며 "민주노동당때와 달리 국민들이 정의당에서 효능감을 찾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거대양당과의 차별화와 함께 이를 성취하고 실현해 내는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럴만한 조직이나 시스템, 인물이 없다"는 진단이다. 효능감 부재는 기대감 부재나 비호감 확산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인사는 "현재의 모든 것을 형해화한 후에 다시 만들어야 한다"면서 "일부만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며 그럴 경우 2024년 지방선거에서는 원외정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비례대표 사퇴 건도 국민들이 시각을 끌고 관심을 끄는 식으로 (정면돌파하는) 접근을 해야 한다"며 "내부에서 맞다, 안 맞다를 놓고 싸우면 정말 끝난다"고 했다. 그는 "모니터링 등으로 정세를 분석하고 총의를 모아 전략적으로 운영해나가는 정당다움이 사라져 있다"며 "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도 경직돼 있고 지도부와 (진보정의연구소) 당내 연구원의 긴장된 관계도 없다"고 했다. "기성 정치문법에 완전히 포획돼 버린 모습"이라며 "이걸 깨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사대부처럼 이념이나 원리 같은 '옳은 이야기'보다는 정세나 상황에 조응하는 '맞는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며 "아직은 그런 태도가 뚜렷하게 안 보인다"고 했다.
비대위는 8월 임시 당대회에서 혁신과제를 의결하고 9월27일 지도부를 선출한 후 역할을 마무리 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정의당은 9월 혁신지도부 선출까지 더욱 시끄러워 질 것"이라며 "분열과 갈등의 파열음이 아닌 통합과 변화의 목소리로 당 안팎을 울리게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