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서 전기포트 물이 늦게 끓는 이유

2022-08-16 11:20:50 게재
김태용 '별일 있는 미국' 작가

"돼지코를 챙겨 가세요." 미국으로 떠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돼지코는 콘센트 모양 때문에 생긴 '플러그 변환 어댑터'의 별칭이다. 돼지코가 필요한 이유는 미국의 전기 콘센트 모양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표준전압(V· 볼트)을 한국과 달리 120V를 사용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간 전자제품을 미국에서 사용하려면 전압을 220V로 바꿔주는 변압기도 필요하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변압기를 매번 사용하는 것도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불편함이 극에 달할 때 120V의 가전제품을 아예 사버린다.

누군가 미국에서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면 한국보다 오래 걸린다고 했다. 수압이 높을수록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듯, 높은 전압에서 전기도 힘차게 흐른다. 미국보다 한국에서 전기포트의 물이 더 빨리 끓고 배터리가 더 빨리 충전되는 이유다.

그 밖에 220V는 120V와 비교해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송전 시 손실전력이 적고 전기 전달 효율이 높아지는 이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 국가가 200V대의 전압을 사용한다. 같은 이유로 한국도 1973년부터 2005년까지 표준전압 110V를 220V로 바꾸는 승압사업을 진행했다.

세계 최고기술력 미국 여전히 120V 사용

세계 최고기술력을 자랑하는 미국이 여전히 120V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첫째, 오래된 전기 역사와 관련 있다. 18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는 전압이 높아지면 끊어지기 일쑤였다.

또한 그 당시 많은 사람이 전압이 높으면 감전위험이 크다는 에디슨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110V가 표준전압으로 자리잡게 됐다.

미국인들은 1895년부터 전기조명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100여년 전부터 미국 전역에 구축된 송전 설비 인프라를 바꾸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설사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인프라를 교체하더라도 각 가정에서 사용 중인 가전제품을 모두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에서 1970년대에 승압작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당시 전력 인프라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서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 면적은 미국의 1/100 정도다. 그런데도 표준전압 110V를 220V로 바꾸는 데 무려 1조4000억원에 장장 30여년의 시간도 소요됐다.

둘째, 미국 전력회사는 민영방식이다. 발전 송전 배전 등 단계별로 다수의 기업이 수익성을 우선하는 전력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각 기업이 일괄적으로 승압작업을 추진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미국도 기존 100V의 표준전압을 2차대전이 끝나고 117V로, 1967년에는 120V까지 야금야금 끌어올렸지만 200V대까지는 엄두를 못내고 있다. 미국은 전력망에 있어서 아직 갈 길이 멀다. 노후화된 전력망 설비 교체도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아직 갈 길 먼 미국 전력 시스템

필자는 미국에서 거주하며 원인불명의 정전을 여러번 겪었다. 집 안에서 동시에 돌아가는 에어컨 식기세척기 건조기를 보며 전압 과부하가 아닐까 의심했다.

1880년대 후반 미국 전류 방식을 놓고 '으르렁'댔던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가 지금의 미국을 알았다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전압을 논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