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확장 주제탐구
지식 '연관의 통일' 알면 대학문이 열린다
교과 수업 배운 지식 활용 '주제탐구' … 물리학 마찰계수 적용 미끄럼방지 시설 설치
학생들이 교과 수업을 통해 배운 지식을 스스로 적용하고 활용하는 모습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주제 탐구' 활동은 대학에서도 눈여겨보는 부분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탐구 주제를 찾는 단계부터 막막해한다. 이때 내가 배우는 과목과 과목 간 연결고리를 찾다보면 궁금한 주제가 생기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다는 학생들의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 이른바 '지식의 연결과 확장'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학생, 고등학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물청소를 하고 난 뒤 급식소에서 미끄러지는 친구들을 보며 해결 방법을 찾는 데도, 장애인 이동권을 주제로 한 특강을 보이콧한 친구들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도, 연구에 재능이 있는지 자신감이 떨어질 때 열정을 되찾게 해준 데도 모두 주제 탐구 활동이 있었다.
우수홍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학생이 물리학을 좋아한 이유는 여러 과목과 실생활에 연결되는 접목의 다양성 때문이었다. '기하' '미적분' '지구과학Ⅱ' 등 수학과 과학은 물론 '체육'에서 100m 달리기를 할 때 팔을 흔드는 행위에도 보행 역학이라는 물리학 개념이 숨어있었다. 물청소를 하고 난 교내 급식소에서 미끄러질 뻔한 경험을 한 뒤 물리학에서 배운 마찰계수를 활용해 탐구를 진행, 미끄럼방지장치 추가 설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어디에나 숨어 있는 물리학 = 우수홍 학생은 물리학에서 배운 마찰계수로 실험을 진행, 교내 급식소에 미끄럼방지시설 추가 설치를 이끌어냈다.
비가 오거나 물청소를 하고 난 뒤 급식소에서 친구들이 미끄러질 뻔한 적이 많았다. 이유도 궁금했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싶었다. 마침 '고급물리학'에서 접한 마찰계수를 이용해 실험을 구상해봤다.
학교 시설 주 바닥재인 화강암 표면 물기 여부에 따른 마찰계수(미끄러짐 정도)를 측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게 목표였다. 화강암 석판과 학생들이 가장 많이 신고 다니는 슬리퍼를 준비해 다양한 조건에서 마찰계수를 구해보니 물기가 있는 경우 미끄러질 위험이 다른 조건보다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한달에 한번 열리는 학생회 회의에서 이 실험 결과와 기숙사 계단에 설치된 미끄럼 방지 테이프를 근거로 이 문제를 알렸다. 이후 급식소에 미끄럼 방지 테이프와 매트가 추가 설치된 것을 보니 뿌듯했다.
우수홍 학생의 '물리학Ⅰ' 성적은 4등급이었지만 물리학을 접목한 다양한 탐구 경험이 특히 두드러지는 학생이었다. 탐구 활동은 시험 문제를 푸는 것보다 많은 시간과 다양한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잘하지 못하는 영역이어도 관심이 있고 흥미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수홍 학생은 14일 "교과서나 인터넷을 찾아볼 충분한 시간이 있고, 도와줄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기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탐구 활동에 도전하는 경험을 쉽게 포기하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수홍 학생은 수학과 물리학이 많이 쓰이는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에 진학했다.
◆친구들 행동에서 '의도적 무지' 발견 = 분쟁에 관심이 많아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싶은 황도연 세종 소담고 학생에게 '사회문제탐구'는 흥미를 불러일으킨 과목이다. 장애인 이동권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친구를 보며 문득 영어 모의고사 지문에서 접한 '의도적 무지(無知)'가 떠올랐다. 이 친구들이 특강을 보이콧한 이유에 의도적 무지가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했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청하는 과정에서 톡톡히 도움을 받은 것은 '사회·문화' 수업에서 배운 '면접법'이었다.
영어 모의고사에 나온 지문 중에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의도적인 선택에 의해 지식을 얻는 의도적 무지는 권력, 정치와 연관된다'는 글이 있다. 지문에서는 의도적 무지에 대한 설명만 있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권력이나 정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궁금했다.
마침 영어 모의고사에 나온 지문을 심화 탐구하는 '배움 확장 보고서' 활동이 있었고, 장애 이해 교육에서 강의 듣는 걸 불편해하던 몇몇 친구들 모습이 떠올랐다.
장애인인 세종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님이 오셔서 직접 장애 이해 교육을 해주셨는데, 두 친구가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았다. 이 친구들이 의도적 무지를 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운 뒤 장애 이해 수업을 듣지 않은 이유와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두 가지 질문을 준비했다.
'사회·문화' 수업에서 배운 질적 탐구 방법 중 면접법을 떠올려보니 이 친구들의 행동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질문에 편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교과서에서 제시한 '라포르'를 형성하기 위해 밝은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두 친구 모두 의도적 무지를 행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근거가 없는 주장은 아니지만,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와 상대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주장한다면 문제 해결이나 통합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수업 시간에 각자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모둠 활동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냈다.
황도연 학생은 14일 "영어와 '사회·문화' '사회문제탐구'를 연결한 것뿐 아니라 '세계지리'와 '세계사'도 함께 공부하니 큰 시너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에 눈뜨게 해준 정보·수학의 연결 = 중학생 때부터 컴퓨터공학에 관심이 많아 정보보안 전문가를 꿈꿨던 이준우 포스텍 학생에게 경기 한민고에 개설된 다양한 정보 분야 과목들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2학년부터 3학년에 걸쳐 단계별로 이수한 정보 과목들은 인공지능 분야로 시야를 넓혀줬고 진로를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이준우 학생은 교과 성적에 비춰볼 때 포스텍 합격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최초 합격한 경우이다. 함께 지원한 친구들에 비해 교과 성적이 다소 부족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지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포스텍의 교육 목표와 방향에 공감했기 때문에 1지망 대학으로 지원했다. 그럼에도 합격한 것은 인공지능과 컴퓨터공학에 대한 관심을 여러 탐구활동에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수학 과목들을 배우면서도 그 개념들이 인공지능 내 알고리즘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탐구했고, '정보과제연구'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진행했다. '응용프로그래밍개발'에서는 실제 오목을 두는 인공지능을 개발해보기도 했다.
여기에는 정보 분야 과목들을 연속적으로 선택해 배운 것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포스텍은 교과 성적을 PASS/FAIL로 평가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단순히 수치적인 성적보다는 탐구 정신과 전공적합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우 학생은 14일 "대학에서는 자신의 관심사와 진로를 좇아 과목을 선택한 학생을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며 "수능과 내신이라는 정형화된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장려하는 교육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