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주택 비상탈출구는 '미닫이 방범창'

2022-12-27 11:09:11 게재

관악구 취약가구에 개폐형 지원

장애인·노인가정 수해·화재대비

"여기까지 물이 찼었어요. 다행히 빠져나오긴 했는데…."
박준희 구청장이 최근 조원동 한 반지하주택에 설치한 개폐형 방범창을 확인하고 있다. 기존 고정형과 달리 수해나 화재 등 비상상황에는 옆으로 밀어서 열 고 탈출할 수 있다. 사진 관악구 제공


서울 관악구 조원동 다세대주택 지하에 사는 이보영(27)씨가 성인 키 높이만한 냉장고를 가리킨다. 지난 8월 서울 등 수도권에 큰비가 내리던 당시 집안이 대부분 잠겼다.

8가구가 사는 다세대주택 1층 공동현관까지 물이 차올랐다. 지상 30㎝ 높이에 당시 흔적이 선명하다. 당시 어린 자녀 둘에 뱃속 아이까지 데리고 대피했던 그는 "(새 방범창을) 쓸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7일 관악구에 따르면 구는 상습적으로 침수피해를 입는 취약계층 가구에 안쪽에서 열리는 방범창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물이 찰 때면 현관문을 제외한 유일한 탈출구가 창문인데 고정형 방범창이 설치돼있어 탈출이 어렵다. 실제 지난 폭우때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현관문이 막히자 외부에서 방범창을 뜯어내려 했지만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전역에 반지하 가구는 20만여 세대다. 그 가운데 10%인 2만여 세대가 관악구에 산다. 구는 지난 9월 외부 전문가와 관련 부서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침수피해 종합대책 티에프'를 구성하고 4대 분야 18개 대책을 마련했다.

별빛내린천(도림천 관악 구간) 범람을 예방하기 위해 2027년까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설치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2025년과 2026년에는 신림공영차고지와 신림재정비촉진지구 내에 빗물 저류조를 마련하고 빗물펌프장 증·신설을 2030년까지 마무리한다.

물막이판과 역류방지시설은 침수피해를 입은 전 세대에 설치한다. 내년까지 규모가 작은 상가에도 지원할 예정이다. 박준희 구청장은 "장기 대책도 필요하지만 5~8년 걸리는 계획이라 당장 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8월 침수피해를 입은 반지하주택 피난여건을 분석, 특히 안전에 취약하다고 판단되는 세대에는 개폐형 방범창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검색, 조달청에 등록된 개폐형 특허 제품을 찾았다"며 "설계를 일부 변경, 금형(금속 거푸집)을 새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고정형과 달리 알루미늄 혼합재를 사용해 내구성이 강하고 부식 우려가 없다. 기존 제품보다 1.5배 두께로 제작, 절단기로도 훼손이 어렵다. 전기가 끊어지는 상황에서도 가동한다. 수해나 화재가 발생할 경우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미닫이문처럼 옆으로 밀어 열면 된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침입을 막는 방범창 역할을 하지만 수해와 화재 상황에서는 비상 탈출구가 된다.

피해 가구 전수조사부터 진행했다. 평지에서 2/3나 1/2 이상이 지하인데 경사지에서 봤을 때 1면 이상이 노출된 주택 등이다. 방범창 상태를 살피고 소유주 의견을 물어 장애인 거주 20여 가구를 우선 대상으로 정했다. 이달까지 시범사업을 마무리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노인과 4세 미만 아동이 있는 600가구로 확대한다.

위기상황에 긴급대피가 어려운 가구는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을 1대 1로 배정해 시설 수시 점검과 현장구조 등 돌봄서비스를 확대한다. 장애인과 80대 이상 홀몸노인 주택에는 인공지능 기반 비상알림체계를 구축, '특별 관리'도 한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재난 약자에 대한 침수피해 방지대책을 종합적으로 가동한다"며 "인명사고 예방을 최우선으로 하는 재난대응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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