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터널 화재 사망사고 수사 확대
경찰, 도로관리업체 관계자 입건
설치과정 불법성 확인 필요 지적
4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전날 도로 관리주체인 제이경인연결고속도로(제이경인) 관계자 3명과 터널 시공사 관계자 1명을 소환 조사했다.
경찰은 2일에도 제이경인 관계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화재 발생 경위와 조처 사항에 대해 조사했다.
◆시공사 관계자도 참고인 조사 = 경찰은 제이경인 관계자 2명이 화재 발생 후 후속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화재 당시 도로 양방향에 설치돼 있던 터널 진입 차단시설 중 안양에서 성남 방향의 차단시설만 정상 작동하고, 반대쪽인 안양 방향 시설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화재는 성남 방향으로 달리던 폐기물 운반용 집게 트럭에서 처음 시작됐다. 하지만 사망자 5명은 모두 그 반대쪽인 안양 방향 차로를 달리던 차량에서 발견됐다. 이 때문에 터널 진입 차단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제이경인 측은 "(안양 방향 쪽 차단시설은) 화재로 인해 전선이 불타거나 녹아 먹통이 되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해명했었다.
경찰은 같은 날 방음터널 시공사 관계자를 대상으로 터널공사 개요 등에 관해 참고인 조사를 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회사를 그만둔 상태지만, 방음터널 시공 당시 공사 전반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당장 시공사를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시공 과정에서 위법성이 있었는지 등을 관계자 진술을 통해 확인하는 기초조사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전력있는 노후 트럭 운행 = 이런 가운데 안전불감증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최초로 불이 시작된 폐기물 운반 트럭은 2020년에도 고속도로 주행 중 불이 난 전력이 있었다.
당시 화재는 다른 2차 사고 등으로 번지지 않았으며, 인명 피해는 없었다. 불은 전기적 요인에 의해 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트럭은 2009년식으로, 정확한 주행 거리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노후한 상태로 알려졌다.
경찰은 2년전 화재 이후 차량 정비를 제대로 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31일 이 트럭을 운용하고 있는 폐기물 수거 업체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여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했다.
규제 완화도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방음 시설에 화재에 강한 재질을 사용하도록 한 정부 지침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1999년 '도로설계편람' 제정 당시 '방음벽에 사용되는 재료 중 외부는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이어야 하고 내부의 흡음재료는 자기 소화성으로 연소 시 화염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2012년 개정판부터 해당 내용이 삭제되면서 방음터널이 화재에 더 취약해졌다.
또 화재가 발생한 방음터널의 재질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경고가 여러차례 있었다. 하지만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번에 사망사고로 이어졌다.
방음터널에는 통상 PMMA와 폴리카보네이트(PC), 강화유리 등이 쓰인다.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이 2018년 발간한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 및 방재 대책 수립 연구'에 따르면 PMMA의 인화점은 280℃로 세 가지 재질 중에서 가장 낮았다. 방음터널에 불이 붙으면 터널 내부 온도가 480∼3400도까지 치솟는다.
연구진은 "투명 방음판 중 PMMA는 화재 실험 시 녹아내린 재료가 바닥으로 떨어진 뒤에도 지속해서 연소해 2차 화재 확산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며 "방음터널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자고속도로 구간에서 비용 면에서 월등한 경쟁력이 있는 PMMA가 방음터널 소재로 주로 사용됐다.
◆유사 사고 사례도 있어 = 차량에서 난 불이 방음터널 내 방음벽으로까지 번진 사고는 2020년에도 일어났다.
2020년 8월 20일 경기 광교신도시에서 용인시 구성·동백지구로 향하는 하동IC 고가도로에 설치된 방음터널에 불이 났다. 승용차에 난 불이 번져 터널 200m 구간이 타버렸지만 새벽 시간이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지난 8월에도 부산 동서고가도로 방음터널을 달리던 승용차에서 불이나 방화벽 일부가 불에 타는 일이 있었다.
국토교통부가 터널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작한 건 올해 7월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잔달 30일 "방음터널의 PMMA 소재를 PC로 교체할 때 100m당 비용이 7억원가량 소요되겠지만 비용을 이유로 국민 안전을 미뤄선 안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