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발작 없는 자산감축' 가능할까
향후 통화정책 좌우할 2조5000억달러 양적긴축 시도 … 부채한도 경색국면도 영향
2020년 2월 4조1000억달러였던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자산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두배 이상 늘어 지난해 5월 기준 9조달러에 육박했다. 이는 대략 M2통화량 공급 확대와 맞먹는다. 결국 지난해 미국은 40년래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연준은 자산감축에 돌입했다. 몸집을 약 2조5000억달러 규모 줄이겠다고 했다. 이른바 양적긴축(QT)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문제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몸집을 줄일 수 있느냐"라며 "지난해 중순 시작된 양적긴축으로 연준 자산은 5000억달러 가까이 줄었다. 시작은 괜찮았다는 평가"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수주 동안 미 금융시스템에 잠재적인 스트레스의 전조가 엿보였다. 최근 예금이 줄어든 일부 은행들이 연방기금시장으로 고개를 돌리면서다. 지급준비금 보유규정을 맞추기 위해 다른 은행들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서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지난달 연방기금시장의 1일 평균 대출액은 1060억달러로, 2016년 이래 최대 규모였다.
현재까지 그같은 자금압박은 중소규모 은행에 한정됐다. 이는 금융시스템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상황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희망섞인 신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보다 규모가 큰 다른 은행들까지 자금조달 부족 상황에 직면할 것인지, 그렇다면 언제가 될지 등에 관심이 쏠린다. 나아가 연준이 애초 계획과 달리 양적긴축을 조기 종료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양적긴축 효과 불확실성 커져
연준은 양적완화(QE)를 통해 국채를 중심으로 한 자산을 대거 사들이면서 심각한 침체국면을 맞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부양했다. 미래의 양적완화가 효과를 내려면 현재 진행중인 양적긴축이 효과를 내야 한다. 경제와 금융시장이 어려울 때 자산매입을 시도하려면 좋은 시절 자산을 줄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4차례에 걸쳐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반면 양적긴축은 2017년 말에서 2019년까지 단 한차례 시도됐다. 그것도 단기금융시장이 휘청이면서 조기 종료됐다. 때문에 양적긴축의 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한 상황이다.
양적완화가 장기금리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것과 반대로 양적긴축은 장기금리를 상승시킨다. 전문가들은 연준 자산을 수년에 걸쳐 2조5000억달러 줄이면 기준금리를 0.5%p 올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추산한다. 문제는 2019년 사례처럼 양적긴축이 너무 지나쳤다고 느낄 때면 이미 시장에서는 발작이 벌어지고 난 뒤라는 점이다. 은행의 자본조달 비용은 별다른 사전 경고 없이 치솟을 수 있다.
연준은 양적긴축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연준이 자산을 줄인다는 건 결국 부채를 줄인다는 말이다. 부채 감축엔 두가지 채널이 있다. 은행 지급준비금과 이른바 역레포다. 은행들이 연준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은 약 3조달러다. 연준이 시장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국채와 교환한 역레포 시장 규모는 약 2조달러다.
연준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는 "은행 지급준비금이 미국 GDP(2022년 기준 약 25조달러)의 약 10%에 이를 때까지 양적긴축을 진행해야 한다"며 "그때가 되면 연준이 적정한 유동성 수준을 찾아내려 노력하면서 자산감축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급준비금과 역레포를 사실상 같은 성격의 돈으로 볼 경우 현재 지급준비금 규모는 GDP의 19%에 달하기 때문에 양적긴축 지속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2년 정도 더 진행해도 된다는 것.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은행이 필요한 지급준비금 규모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많아졌다는 점이다. 은행 자산이 경제의 다른 부문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다. 또 역레포와 지급준비금을 같은 성격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역레포 수요의 상당 비중은 초단기공사채형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말 "연방정부 부채 한도로 미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가 희소해졌다. MMF가 접근할 수 있는 단기국채가 줄어든다는 의미"라며 "결국 MMF가 더 많은 돈을 역레포 시장에 묻어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연준 양적긴축에 영향을 받는 다른 채널, 즉 은행 지급준비금이 더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멜론은행 외환·거시 전략가인 존 벨리스도 블룸버그에 "모든 유동성이 연준 역레포에 모여들게 된다. 결국 역레포와 거울이미지를 갖는 지급준비금 규모를 줄이게 될 것"이라며 "지급준비금 규모가 위험한 수준으로 낮아지면 시장 일부에서 발작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펀드기업 '티. 로우 프라이스'는 "이런 시나리오에선 올해 지급준비금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미국금리 전략가인 수바드라 라자파도 "연준이 예상한 대로 유동성이 역레포시장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면, 지급준비금이 희소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연준은 양적긴축을 멈출 수 있다. 연준 자산 규모가 8조달러 수준에 머무른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2배 많은 규모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경우 미래 위기 때 양적완화를 시행할 연준 능력에 큰 제약이 가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인 존 윌리엄스는 지난달 "연준은 지급준비금 규모에 대한 잠재적 변동성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확실한 점은 우리가 철저히 따져보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레포에 과도하게 몰린 펀드는 줄어들 것이다. 그 과정엔 시간이 걸린다"며 양적긴축의 조기종료 가능성을 배척했다.
뉴욕연은에서 연준 자산관리를 담당한 뒤 현재 댈러스연방준비은행 총재로 재직중인 로리 로건은 지난달 "은행 지급준비금이 갑자기 대거 줄어들 경우를 대비해 연준은 새로운 상설레포제도를 준비했다"며 "이 제도는 기업들이 필요한 만큼 현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제도인 동시에 대출 한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잠재적으로 지급준비금이 희소해지는 상황에 대한 조기경보 신호로 기능할 수는 있다"고 전했다.
미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연방정부 부채한도 논란이 언제 종료될지도 주목할 지점이다. 지난달 초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연준 자산은 4060억달러 줄었고 연준 부채를 구성하는 재무부 일반계좌(TGA)는 4220억달러 줄었다. 연방정부의 부채한도(31조달러)에 근접하면서 미 재무부가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연준에 예치한 돈을 찾아 썼기 때문이다. TGA에서 인출된 돈은 가계와 기업을 거쳐 결국 은행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결국 은행 지급준비금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미 의회가 부채한도를 늘려주기 전까지는 지급준비금 부족 상황을 향후 수개월 동안 모면할 수 있다.
양적긴축 조기종료할까
관건은 미 의회가 부채한도를 상향하게 되면 미 재무부가 국채 발행량을 급격히 늘릴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이 급속히 줄어들게 될 것을 의미한다.
블룸버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부채 한도 경색국면이 종료되면 은행 지급준비금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부채한도가 늘어난다면 미 재무부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국채를 발행할 것이다. 유동성을 끌어모으면 은행 지급준비금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시장전문가들은 미국 단기국채 공급량이 여러달에 걸쳐 약 5000억달러 규모에서 8000억달러 규모로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본다.
반면 미 워싱턴 소재 정책분석기업인 'LH메이어'의 이코노미스트 데렉 탕은 "은행들이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면, MMF와 역레포에 쏠린 유동성을 끌어들여 지급준비금이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 연준은 2024년까지 양적긴축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는 최근 많은 연준 관계자들이 지지하는 시나리오"라며 "연준은 시장이 필요한 곳에 유동성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