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갚겠다" 매일 360명 도산(개인회생·파산) 신청

2023-02-20 11:33:45 게재

개인회생·파산신청 5년 연속 13만명

부울경 1만명당 43명 도산, 전국 최대

돈을 못 갚겠다며 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한 개인이 5년 연속 13만명을 웃돌고 있다. 하루에 360명씩 채무상황을 버티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인구대비 개인도산 신청은 부산과 울산, 경남 등 부울경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급증했던 개인파산은 진정세로 접어들었고 대신 개인 회생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개인도산사건은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으로 나뉜다. 개인회생은 채무자가 소득이나 상환의지가 있지만 빚을 갚지 못한 경우 신청한다. 법원이 최저생계비를 제외하고 빚을 변제할 수 있도록 빚의 최대 90%까지 탕감해주기도 한다. 개인파산은 빚을 갚을 수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남은 자산은 경매 등을 통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준다. 개인회생을 마무리하면 금융거래에 문제가 없지만 개인파산을 하면 기록이 남아 신용카드 발급 등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출처 : 법원통계월보, 통계청


◆파산 줄고, 회생 늘어 = 20일 법원통계월보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개인파산 신청 4만1462건, 개인회생 신청 8만9965건으로 개인도산사건 신청이 13만1427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13만93건보다 다소 늘어났다. 최근 5년간 개인도산 신청은 13만명을 웃돌고 있으며, 코로나가 시작된 2019년 13만8229건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이후 다소 줄었다. 2020년 이후 개인파산은 감소하고 있지만 개인회생은 늘고 있다. 한계 채무자들의 숫자가 줄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개인파산은 2020년 5만379건에 달했으나 2021년(4만9063건) 2022년(4만1462건)으로 크게 줄었다. 2020년과 비교하면 17.7%나 감소했다. 하지만 개인회생 신청은 2020년 8만1030건에서 2022년 8만9965건으로 11%나 늘었다. 개인 파산이 줄어든 만큼 개인 회생이 늘어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인 파산이 줄고, 회생이 증가하면 경제지표가 살아나는 것으로 보곤 한다. 하지만 이는 착시라는 지적이다. 도산사건 전문 변호사는 "지난해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이자상환 유예조치가 연장됐기 때문"이라며 "대내외 경제상황 때문에 한계채무자들에게 억지로 연명치료를 하고 있는데, 유예조치가 연장되지 않거나 또 다른 악재가 터지면 개인도산 신청자가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출처 : 법원통계월보, 통계청


◆ '서울이 최다' 하지만 = 개인 도산사건을 권역별로 나눠보면 서울(2만7399건)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경기(2만7244건), 부울경(2만1569건) 충청(1만4252건), 대구경북(1만2803건), 인천(1만2038건) 호남(1만900건), 강원(3394건), 제주(1828건) 순으로 나타났다.

개인도산사건 데이터는 대법원이 각급법원 자료를 취합하는 방식이다. 다만 법원별 데이터는 행정구역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사회문화경제적으로 유사성을 띠는 지역간 데이터를 재구성했다. 우선 서울과 경기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제규모나 인구를 고려할 경우 실제 상황과 괴리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법관은 "개인도산 통계는 법원 관할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지역별 통계도 나오기 힘들고 심도 있는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면서 "대개 신청 규모에 관심을 갖는데, 이는 단편적 데이터"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관은 "대도시 개인도산사건 절차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지역의 경우 그렇지 않다"며 "소도시의 개인회생·파산 신청이 적다고 지역경기가 건강하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을 고려해 내일신문이 '개인도산신청건수/주민등록상 인구(2022년 기준)'을 토대로 정리해 봤다. 그 결과 인구 1만명당 개인도산사건 신청이 가장 많은 곳으로 부울경 지역(43명)이 꼽혔다. 다음으로는 인천(40명), 충청(34명), 서울(29명) 제주(26명) 대구경북(25명) 강원(22명) 경기(20명) 호남(14명) 순이었다. 개인도산 신청이 가장 많은 서울과 경기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은 편이다. 신청건수가 적은 제주지역은 서울 다음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1만건 이상 접수된 호남은 인구를 고려할 경우 가장 건강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 개인파산 50대 이상 77% = 수년간 경제계에서는 개인 회생 및 파산 데이터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해왔다. 연구 또한 더디다. 개인회생·파산 등 도산사건 신청자의 성별은 물론 연령,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된 조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융소비자단체나 지자체 산하기관이 상담사례를 공개해 개인 도산사건을 추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도는 낮다. 대법원에서는 예산과 인력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통계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서울회생법원이 지난해 11월 '2022년 상반기 개인도산 통계 비교 결과 보고서'를 내놔 주목 받았다. 이는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등을 신청한 이들을 집단별로 분석한 데이터다. 조사 결과 개인파산 신청자의 월 평균 수입은 60만원, 개인회생 신청자는 205만원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개인파산을 신청한 이들의 채무 평균액은 1억1236만원, 개인회생 신청자의 채무 평균액은 8490만원으로 집계됐다. 한계채무자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성별로는 개인도산을 신청하는 남성과 여성 비율은 6:4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개인파산은 50대 이상이 77%로 나타났고, 개인회생은 30~49세 비중이 60.5%로 집계됐다. 중장년은 수입이 감소하면서 채무를 갚을 수 없어 파산을 택하는 경우가 많고, 중년층의 경우 회생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러한 조사를 지속적으로 벌일 예정이다. 2022년 하반기 통계는 올 상반기 중 발표된다.

◆법인 파산도 줄지 않아 = 전문가들은 법인 파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8년 806건이던 법인파산 신청이 증가세를 보이면서 900~1000건 사이에 머물러 있다. 2019년 이후 4070개 기업이 파산을 신청했다. 특히 2021년 955건이던 파산신청은 2022년 1004건으로 5.1% 늘었다. 대개 개인이나 법원이 도산사건을 신청하면 심리를 한 후 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시간차가 발생하는데, 파산 인용은 코로나 전보다 30% 이상 늘었다.

법인 파산 신청은 "우리 회사 어려우니 문 닫게 법원이 판단해 달라"는 호소이고, 파산 인용은 "법원이 보기에 당신 회사는 이제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결정이다. 전문가들은 파산인용 수치를 실질 경제지표로 보는 경우도 있다.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지방법원에서 회생사건을 담당하는 한 법관은 "파산 신청은 굴뚝산업이나 전통제조기업으로 한계상황에 다다른 경우가 많다"면서도 "이 기업으로 인해 지역경제와 고용 등의 여파를 생각하면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어려운 기업'이라는 낙인 효과 때문에 문을 닫을 때가 돼서야 회생 신청을 하는 법인이 상당하다"며 "법원을 찾아온 경우 회생은 어렵고 파산 수순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어려움을 겪는다면 법원에 채무조정을 요청하는 등 선제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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