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정권맞춤형 대기업 봐주기 제재' 논란 확산

2023-02-21 11:49:27 게재

보수정권 들어서자 대기업 형사고발 '0' … 화물연대는 신속고발 "정체성 실종"

5년간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등 405건 중 고발은 단 4건 … 최근 3년 아예 없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보수정권 코드에 맞춰 대기업편향 제재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 관련 사건은 봐주기로, 경제약자인 화물연대 등엔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안팎에선 "그동안 경제적 약자의 보루 역할을 해왔던 공정위 정체성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 출석한 공정거래위원장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왼쪽부터),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21일 공정위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더불어민주당·서울 강북구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과 차별취급,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에 대해 단 한 건도 고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 위반 행위의 중대성을 인정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도 고발은 끝내 회피했다. 대표이사 등 임직원에 대한 검찰고발이 주는 기업에 대한 압박감은 과징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3건의 행위는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갖고 있는 대기업이 대부분 해당된다. 반면 사업자단체 여부가 불명확한 화물연대는 논란을 무릅쓰고 신속하게 검찰에 고발, 논란을 자초했다.

◆알고리즘 조작 카카오도 과징금만 = 최근 5년간 공정위에 접수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차별적 취급, 거래상 지위남용 사건은 총 405건이다. 이들 405건 가운데 공정위가 고발한 사건은 단 4건이다. 더구나 최근 3년 동안에는 한 건도 형사고발하지 않았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주로 대기업·대형 플랫폼과 같은 '독과점 사업자'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거나 소비자로부터 독점적 이익을 과도하게 취하는 불공정 행위를 말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공정위가 25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 콜 몰아주기' 사건이다. 지난 14일 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T앱의 택시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해 카카오T블루 가맹 택시를 우대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257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위반행위의 중대성을 인정해 백억대 과징금을 부과하면서도 고발은 하지 않았다. 공정위 심사관은 당초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에 카카오모빌리티 법인과 대표 등을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하지만 공정위 전원회의(1심 재판부 격)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법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화물연대 고발은 이례적 신속처리 = 박용진 의원은 "이런 카카오의 행태는 소비자 기만이며 사실상 온 국민을 향한 기만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과징금을 257억이나 부과하면서 정작 카카오모빌리티를 고발하진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노조 등에 대해서는 강경·신속한 조치로 대비됐다. 지난달 공정위는 현장조사를 거부한 화물연대를 한 달 여만에 검찰에 고발했다. 보통 대기업 사건의 경우 조사착수에서 위원회 제재결정까지 수년씩 걸리는 통례를 고려하면 매우 신속한 조치다. 당시 고발 결정은 경쟁당국이 노조를 검찰에 고발하는 첫 사례였다. 화물연대는 '노조 탄압'이라며 맞섰다. 공정위는 화물연대가 사업자로 이뤄진 사업자단체라고 보고 형사고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특고)'의 노동권 관련 중요 쟁점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오히려 논란이 커졌다.국제노동조합단체인 ILO는 세계 각국에 특고를 노동자로 인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도 일부 특고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전속고발권 이대로? 또 논란 = 공정위의 대기업편향 제재는 '전속고발권'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 의원은 "카카오의 의도적 회피는 공정위가 아니면 고발할 수가 없다"며 "이럴 거면 뭐하러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갖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 등 6개 법률 위반사건은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전속고발제라고도 한다. 다만 공정위가 고발을 하지 않더라도, 중기부나 조달청, 검찰은 사후에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수 있다. 고발요청기한은 6개월이다. 중기부 등이 고발 요청을 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의무고발요청제도는 공정위의 대기업 봐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4년부터 도입됐다.

특히 최근에는 공정위가 형사고발을 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중소기업벤처부 등이 검찰고발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아져 주목된다. 지난달 19일 중기부는 '제21차 의무고발요청 심의위원회'를 열고 하도급법을 위반한 GS리테일을 공정위에 고발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중기부 조사에 따르면 GS리테일은 하도급법 위반 행위로 9개 중소기업에 피해를 줬다. 2016년 1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8개 사업자에게 도시락 등 신선식품 제조를 위탁하면서 매입액의 0.5~1.0%를 납품대금에서 공제해 총 68억7900만원을 받았다. 같은 기간 매월 음료수 증정 행사 등 판촉 행사를 진행하고 전체 판촉 비용 중 126억1300만원을 납품대금에서 공제해 수급사업자에게 부담토록 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GS리테일에 재발방지명령과 243억6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기부는 이날 GS리테일이 중소기업에 상당한 피해를 줬음을 고려해 고발을 요청하기로 했다. 중기부나 중소기업 입장에선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을 '솜방망이'로 판단한 셈이다. 최근 과징금으로만 끝낸 카카오모빌리티 사건 역시 마찬가지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박 의원은 전날 국회 정무위 현안질의를 통해 "대기업엔 관대하고 노조, 노동자는 막대하는 공정위가 어떻게 공정과 상식을 다한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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