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형 지산학협력
지자체 주도로 산학협력에 날개단다
부산시 지산학 협력모델로 위기 타개 … 성공사례 평가 받아 라이즈(RISE) 시범지역 선정
부산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서울과 지방 간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우수 인재 양성이 어려워지고, 이는 또 기업 유치가 어려워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2018~2022년 사이 부산지역 법인 유출은 957개 업체에 달하고 인재 유출 또한 심각하다. 해마다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청년만 1만명에 달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산학 협력을 통해 불균형·저출산·청년유출 문제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부산은 지산학 협력 성공사례 경험이 많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라이즈(RISE) 사업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지난 21일 부산광역시청을 찾아 부산지역 라이즈 추진 상황에 대해 들었고 부산지역 라이즈 사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RISE센터와 지산학 협력 현장인 동아플레이팅(주)도 방문했다.
부산시는 지산학 협력의 선두주자(First Mover)이다. 산학 협력에 지자체를 더한 개념인 지산학 협력은 부산시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온 대표 정책 중 하나다. 지자체가 나서 산학 협력의 연결·매개 기능 강화가 핵심이다.
지산학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산시는 2019년 1월 지자체 내 대학지원부서를 마련하고 2021년 8월 전국 최초로 지산학 협력 전담 기관인 지산학 협력센터를 설립했다. 기업 유치를 위해 2021년 2조원, 지난해 3조원을 투입하고 전입한 기업이 부산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채용 연계형 교육을 실시할 경우 지자체가 교육비를 지원하는 등 기업 유치와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공을 들였다.
◆부산시 지산학 협력 라이즈 모태 = 부산시는 지산학 협력 성공사례 경험이 많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8일 교육부의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 RISE·Regional·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시범 지역에 선정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혁신 거점의 중심이 대학인데 대학의 혁신 역량이 되지 않다 보니 지역과 대학이 함께 가라앉는 국면이 지속했다"며 지산학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지산학 협력을 통해 부산 지역에서도 청년들의 자기실현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소영 교육부 지역인재정책과장은 "부산시의 지산학협력센터 등의 사례는 라이즈 사업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부산이 지산학 협력을 추진하게 된 것은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이 지역소멸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산 지역내총생산(GRDP)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2018∼2022년 지역 법인은 957개가 경기 서울 경남 등으로 순 유출했다.
부산 지역 대학과 대학원 졸업자는 꾸준히 감소하는 가운데 그마저도 42.5%는 부산 외 지역으로 취업해 지역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해 1만명 가까운 청년이 수도권으로 유출된 것으로 부산시는 파악했다. 서울과 지방 간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지역은 우수 인재 양성이 어려워지고, 이는 또 기업 유치가 어려워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다.
박 시장은 "기업 사람들을 만나보면 가장 먼저 묻는 게 '인재 있냐'고 한다. 지역에서는 그 부분에서 막힌다"며 "이런 부분을 지역의 대학과 협력해서 정말 새로운 기업이 유치됐을 때 인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수 있도록 해야 더 많은 기업 유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가 대학에 다닐 때 부산대는 SKY대와 맞먹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지역과 서울의 교육 격차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지산학 협력 사업 라이즈로 날개 달아 = 지난 8일 부산은 경남 경북 대구 전남 전북 충북과 함께 라이즈 사업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박 시장은 "최근 교육부가 고등교육정책을 지방정부가 대학과 지역 기업들과 함께 숙의를 통해 진행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재원을 과감하게 이양하는 정책을 결정했다"며 "교육부가 그동안 한 일 중에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지방대학은 가만히 있으면 물에 빠지는 형국"이라며 "물에 빠진 사람이 나오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데 너 여기서 자유형해서 나와, 평영해서 나와 이런 식으로 하면 대학이 살 수 없다"고 비유했다.
부산은 국비 1500억원을 포함해 2027년까지 2145억원을 투입해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지산학 협력을 통해 지역혁신과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한다.
부산은 2019년부터 지역과 산업, 대학이 협력해 인재 양성을 추진하는 '지산학 브랜치' 정책을 시행해왔다. 부산시는 지산학협력센터를 테크노파크에 설치했다. 테크노파크는 20여년 전 산학연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기관이다. 대학의 연구·개발 성과를 기업에 전파하고 학생을 연결해주는 역할 등에 기업 관련 기관이 더 잘 맞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센터는 설치 후 18개월 동안 지산학 선도기업인 '지산학 브랜치' 52개를 지정해 이들 기업에 지역 내 인력,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역 학생들이 지역 내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취업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연결했다.
박 시장은 "지산학 브랜치와 같은 프로그램을 계속 확산하면 기존에 교육부가 공모사업으로 진행했던 것보다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지산학 협력을 통해서 청년들이 지역에도 좋은 기업이 있고 거기서 자아실현을 하고 정착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인재유출도 중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시장은 "캐나다의 워털루대학 프로그램을 부산형 프로그램으로 바꾸고 있다"며 "현장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산학 브랜치 '21호'인 동아플레이팅(주) 이오선 대표는 "우리 회사에 청년 취업자가 대폭 늘어나는 데 지산학협력센터가 한몫했다"고 밝혔다. 동아플레이팅은 도금 전문 중소기업으로 유해물질 발생에 따른 악취 등의 이유로 젊은층이 꺼리는 뿌리산업에 속한다. 그러나 동아플레이팅은 재직 중인 33명 직원의 평균 나이가 32세로 이제 젊은층이 선호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최근 수년 동안 지산학협력을 통해 혁신을 거듭해온 것이 그 비결이다.
입사 7개월 차인 박가현(24세)씨는 "학교에서 하루짜리 견학프로그램으로 참여했다가 기업연계형 장기 현장실습을 하게 됐고 입사까지 이어지게 됐다"면서 "깨끗한 환경, 회사 분위기, 업무 등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 서열화·예산 나눠먹기 우려 = 라이즈 사업이 각 지역 내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고 예산 나눠먹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규모가 큰 대학으로 지원이 쏠리거나 반대로 대학끼리 예산 나눠먹기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우 동아대학교 총장도 "지자체장 선거를 4년 만에 하니까 너무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지방정부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고등교육협의체를 만들고 있고, 부산도 이미 협의체를 만들었다"고 선을 그었다.
지자체 대학 지원사업을 관리·평가할 라이즈 센터를 별도로 두는 이유도 지자체의 대학 관련 권한이 지나치게 강해지지 않도록 사업 기획과 평가기관을 분리 독립시키기 위해서다.
대학가에서는 지자체가 지방대 살리기를 할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자체가 대학을 관리해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결국 지산학 협력의 주체는 대학"이라며 "대학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바깥에서 요구하더라도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대학지원에 대한 행정과 재정 권한을 지자체에 넘기고 지역발전과 연계한 지원을 통해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이다.
2025년부터 기존에 추진해온 RIS(지역혁신), LINC 3.0(산학협력), LiFE(대학평생교육), HiVE(전문직업교육), 지방대활성화 사업 등 5개 사업을 통합하고 대학재정지원사업 구조와 규모를 조정해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의 50% 이상(2조원 이상)을 지역주도로 전환한다.
시·도에 대학지원 전담부서 설치, 전담기관 지정·운영, 지역고등교육협의회 신설을 통해 지역의 대학지원 기반을 조성한다. 2023년 7개 시범지역을 운영하고 2024년 기반조성을 거쳐 2025년 전 지역에 RISE를 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