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죄 강경대응 강조하지만 실효성 의문

2023-04-07 11:10:07 게재

반복되는 집중단속에도 강남 학원가까지 침투

한동훈 "마약 청정국 지위 회복" 선언 무색

검경 마약범죄 수사 손잡을지 주목

정부의 마약대책에 구멍이 뚫렸다.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마약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강력대응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일상생활로 마약이 더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강남 학원가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약 음료' 사건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 청정국 지위 회복하겠다"고 선언하고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던 것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번에도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마약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강력대응 방침을 밝혔으나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7일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마약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시를 내리자마자 검경은 마약류 범죄에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과 관련해 "마약이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스며든 충격적인 일"이라며 "검경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마약의 유통·판매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라"고 지시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밝혔다.

◆'마약수사 실무협의체 즉시 가동' = 이에 따라 이원석 검찰총장은 6일 "마약범죄의 폭증으로 인한 위험성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며 전국 검찰청에 마약 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긴급 지시했다.

이 총장은 "관세청·식약처·지방자치단체 등 여러 기관과 역량을 결집한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은 마약범죄 수사를 지속해서 진행하고, 일선 모든 마약범죄 전담 부서는 투약과 국내 유통에 주로 대응하는 경찰과 적극적이고 긴밀한 협력을 통해 마약범죄를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철저히 박탈해 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및 인천·수원·부산·대구·광주지검은 '마약수사 실무 협의체'를 즉시 가동해 유관기관과의 대응을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청도 6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마약류 범죄에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이날 자료를 내고 "이 사건을 과거에 유례가 없는 심각한 범죄로 규정하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교육 당국과 협력해 선제적인 예방 활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청소년을 포함한 마약류 사범에 대한 강력한 단속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경찰청은 이 사건을 강남경찰서에서 마약범죄수사대로 넘겨 집중 수사하기로 했다. 서울청은 또 유사 피해 방지를 위해 서울 지역 1407개 초·중·고교 학부모 83만명을 대상으로 '긴급 스쿨벨 시스템'을 발령했다. 긴급 스쿨벨 시스템은 신종 학교폭력 등 새로운 유형의 청소년 대상 범죄가 발생했을 때 학생과 교사, 학부모에게 카드뉴스 형식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서울청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 도봉구 창동 등 학원 밀집지역 4곳을 대상으로 학원 이용 시간인 오후 5~9시 집중 예방순찰 활동도 펼친다.

◆강력대응에도 범죄증가 = 윤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선포 한마디에 검경이 강력 대응에 나섰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지난해에도 법무부와 검찰, 경찰은 마약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강력 대응에 나선 바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13일 대검찰청에 마약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지시하면서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마약범죄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대한민국이 다시 마약 청정국의 확고한 지위를 신속하게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올해 2월 21일 서울중앙·인천·부산·광주 등 전국 4대 검찰청에서 '범정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가동했다.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은 검찰 69명을 비롯해 관세청 6명, 식약처 3명, 서울시·인천시·부산시·광주시 각 1명,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2명 등 모두 84명 4개 팀 규모로 꾸려 대응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7월 강남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신 손님과 여종업원이 필로폰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마약류 범죄에 강력 대처하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바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8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3개월간 전국 단위의 '마약류 유통 및 투약사범 집중단속' 기간을 지정하고 각종 마약류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은 단속을 앞당겨 지난해 7월 14일부터 110일간 특별단속에 들어갔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윤희근 경찰청장이 제시한 '국민체감 전략과제' 1호도 '강남 클럽 마약단속'이었다. 취임 첫날 강남경찰서를 방문한 윤 청장은 "강남지역에 마약경보를 발령한다"며 "강남 일대를 필두로 전국 유흥가 밀집지역에 강력한 마약 단속과 수사를 전개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또 같은 해 9월 특별승진 임용식에서 "마약사범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고질적 병리현상으로 총력대응해 뿌리뽑겠다"고 하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약범죄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강조해왔다. 실제 경찰은 마약류 범죄 집중단속기간을 지난해 연말까지 연장하며 마약사범 단속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번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에서 드러났듯 마약은 오히려 일상생활 속으로 더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14살 중학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상화폐로 필로폰을 구입해 투약했다가 어머니의 신고로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대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사범은 1만8395명으로 전년 1만6153명에 비해 13.9% 늘었다. 올해 1~2월 검거된 마약사범은 2600명으로, 1964명이던 지난해 동기 대비 32.4% 늘었다. 특히 19세 이하 마약사범은 2012년 38명에서 지난해 481명으로 10년 새 1168%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마약 압수량 역시 전년(491.1㎏) 대비 63.9% 증가한 804.5㎏으로 파악됐다.

◆"긴밀한 수사 협조에 들어갈 것" = 한편 윤 대통령 지시로 비상이 걸린 검경이 따로 놀았던 마약범죄 수사에서 손을 잡을지 주목된다. 검경 합동 수사단 출범 가능성도 있다.

현재 법무부와 대검찰청, 경찰청 등 14개 관계부처는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마약류대책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해당 협의회는 매년 1~2회 회의에 그치는 비상시적 조직인 만큼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진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마약범죄를 수사하는 검경의 공조는 수사권 조정 이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2020년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찰은 '500만원 이상 마약 밀수' 범죄만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업무 분장이 달라지면서 경찰이 놓친 마약범죄를 검찰이 적발할 수 없게 됐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9월 법무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마약 유통 등에 대한 단속도 가능하도록 했다.

지난 2월 검찰 중심의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이 출범했지만 경찰은 참여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지시를 기점으로 검경은 공조 체계를 정비할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7일 기자단 브리핑에서 "마약 범죄는 어느 한 기관이 수사해서 근절되는 게 아니다"며 "경찰청장과 법무부장관이 대통령 지시대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긴밀한 수사 협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윤 대통령이 건설 현장에서의 폭력 행위에 대한 엄정한 단속을 당부하자, 검경이 합동으로 '건폭수사단'을 출범한 전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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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구본홍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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