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범죄와 결합하고, 특정 집단 맞춤형까지 등장
경찰 압박에 전화금융사기 수법 다변화 … 대포통장·변조기 등 단속에 전체 범죄는 감소
14일 경찰에 따르면 2021년 3만982건이던 전화금융사기 범죄 건수는 지난해 2만1832건으로 약 30% 감소했다. 이에 따른 피해금액도 7744억원에서 5438억원으로 줄었다. 첫 피해가 신고된 2006년 이후 16년 만에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전화금융사기에 주로 사용되는 범행수단 8가지를 전방위적으로 단속한 것이 범죄 감소로 이어졌다고 판단한다. 8대 범행수단은 대포폰, 대포통장, 전화번호 변작 중계기, 불법 환전, 악성 앱, 개인정보 불법유통, 미끼문자, 거짓 구인광고다.
실제로 경찰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특별단속에 나서 전화금융사기 범행수단 4만6166개, 각종 범행수단 불법 생성·유통행위 4331건을 적발했다. 이 기간에 경찰은 유통사범 4538명을 검거해 201명을 구속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범죄자들도 다른 먹거리를 찾기 위해 새로운 시도에 나서고 있다.
일부 범죄자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집단 대상 맞춤형 범죄를 시도하기도 한다.
13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최근 둔촌주공 조합원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0일 조합원 A씨는 발코니 확장이나 천장에 시스템에어컨 설치 등 추가 시설을 하는데 드는 비용인 '옵션비' 납부 내용을 물어보려고 조합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사기범이 이미 조합 사무실에 통신회사 직원인 척 전화해 "장애가 발생해 통화가 어렵다"고 말하며 다른 번호로 착신을 전환하도록 한 뒤였다. A씨는 사기범을 조합 사무실 직원으로 속아 그에게서 안내받은 계좌번호로 1500만원을 입금했다. 전화금융사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안 그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입주 계약일이 임박한 시점에 조합원들이 사무실에 옵션비 납부 관련 문의할 것을 미리 알고 저지른 범죄로 보고 있다. 용의자는 여러 조합원에게 임의의 계좌번호를 알려주며 옵션비와 분담금을 납부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피해자는 A씨 1명으로 파악됐다.
그런가하면 피해자를 범죄에 연루시키고 협박해 돈 뜯어내는 수법도 등장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발생한 '마약 음료'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마약과 보이스피싱이 결합된 신종 마약 피싱 범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범행을 지시한 '윗선'들이 보이스피싱 조직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됐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화금융사기 수법이 더 발전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화금융사기가 2006년 시작된 1세대(계좌이체)에서 2세대(대면범죄)를 거쳐 3세대(다른 범죄와 결합)까지 진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범죄 조직은 2010년부터 시작된 대포통장 규제 강화 대책 등으로 계좌이체를 이용한 범행(1세대)이 날로 어려워지자, 피해자들에게 대출이나 사기 등에 연루됐다고 속인 뒤 수거책에게 현금을 전달하게 하는 대면편취형(2세대)으로 진화했다. 이 경우 총책은 검거가 쉽지 않고, 아르바이트 형태로 구직된 수거책들은 미미한 처벌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검찰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범죄단체조직·범죄단체활동 등의 혐의를 적용해 수거책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등 처벌이 강화되자 수법을 바구고 있다.
3세대의 경우 몸캠 피싱(알몸 이미지를 촬영한 뒤 피해자 연락처 등을 빼어내 협박)이나 손실 만회해 준다고 접근한 뒤 돈 빼돌리는 코인 사기 등 다른 범죄와 결합하는 수법이다. 여기에 피해자를 직접 범죄에 연루시켜 협박하는 마약 음료사건까지 등장한 것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 한 수사관은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은 어더한 경우에도 전화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특히 사탕·젤리·초콜릿 등으로 가장한 마약을 먹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