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붙은 섬진강
섬진강댐·주암댐 방류중단에 섬진강이 마른다
섬진강댐은 하천유지용수 '찔끔', 주암댐은 아예 방류중단 … 섬진강 수계 대형댐 4개 모두 밖으로 물 빼돌려
지난 3월 말 윤 대통령이 주암호 조정지댐을 방문해 '극한가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직후 한화진 환경장관은 금강 백제보와 보령댐 도수로 현장을 찾아 '4대강 보를 활용한 가뭄대책'을 내놓았다.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10일부터 12일까지 섬진강 수계와 순천시, 보성군 일대를 돌아보았다. '50년 만에 온 최악의 가뭄'이라고 하는데 농업용 저수지들은 대부분 만수위 상태였다. 아직 본격 농사철이 안된 탓도 있지만 지난 겨울 많은 눈이 왔고 간간이 봄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최악의 가뭄'은 전남과 전북 지역에 생활-공업-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섬진강댐과 주암댐이 20% 이하의 저수율을 보였기 때문에 나온 표현으로 보인다. 4월 초의 단비로 두 댐 모두 저수율 20%대를 회복했다.
섬진강 수계의 문제는 4대강 보가 없어서가 아니다. 섬진강에는 4대강 보에 비해 훨씬 큰 규모의 대형댐 4개가 있지만 여기 저장된 물은 거의 다 수계 밖으로 빠져나간다.
용담댐 물을 김제·만경 지역 농업용수로 공급하는 방안, 수자원 부족이 정권을 바꾼 '아랍의 봄' 문제까지 두루 살펴본다.
"5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주암댐 상류가 흙바닥을 드러냈다. 흙바닥에 풀도 말라비틀어졌다. 광주와 전남의 식수원인 주암댐 저수율은 19.76%로 20%가 붕괴됐다."
지난 3월 호남 지역방송 보도 내용이다. 이 방송은 "지난해 11월 저수율 35% 붕괴에 이어 12월엔 30%가 붕괴했고, 결국 2개월 만에 10%p가 줄었다"며 "지난해 광주와 전남지역 가뭄일수가 1974년 이후 역대 최장인 280일을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전남도에 따르면, 주암댐 저수율이 20%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4월(19.8%) 이후 14년 만이다. 다행히 4월 초에 단비가 내리면서 주암호 수위는 조금씩 회복 중이다. 4월 7일부터 저수율 20%를 회복했다.
4월 2일 88.86m까지 떨어졌던 수위는 16일 현재 90.60m로 회복됐고 저수율은 21.2%가 됐다. 총저수량은 4월 2일 8000만톤에서 16일 9600만톤으로 늘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하루 용수공급량을 46만톤 감량(하천유지용수 12톤, 생활·공업용수 34톤)하고, 장흥댐과 연계한 공급량 조정 등을 통해 올 여름 비가 올 때까지 물 공급에 문제가 없도록 관리할 계획이다.
주암댐은 광주와 나주, 고흥 등 12개 시군의 생활용수를 비롯해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광양국가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한다.
수공 주암댐지사 관계자는 12일 "현재 가뭄 상황에서 하루 공급량 102만톤을 유지한다"며 "평상시 공급량 130만톤의 78% 정도만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생활·공업용수가 부족한 상황이라 보성강 수계 하천유지용수는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암댐은 섬진강 수계 제1지류인 보성강 중류에 위치한다. 평상시 보성강 수계로 하루 10만톤의 하천유지용수를 내려보내는데 지난해 7월 이후 하천유지용수 공급을 중단했다.
수공 마이워터 홈페이지에서 주암댐 수문자료를 보니 2022년 4월 이후 1년 동안 본류 쪽 수문 방류량이 '0'이다.
◆"김제 만경으로 하루 99만톤, 본류로 20만톤" = 11일 방문한 섬진강댐도 상황은 비슷했다. 섬진강댐은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이다.
1940년 4월 착공했지만 2차대전과 6.25전쟁 때문에 공사가 중단됐다가 1965년 12월 20일 완공됐다. 섬진강댐은 1926년 건설된 운암댐에서 하류 방향 약 2km 지점에 만들어졌다. 댐 본체 높이는 64m, 길이는 335m다. 만수위는 해발 196.5m, 총 4억6000만톤의 물을 저수한다.
섬진강댐은 4월 16일 현재 9900만톤을 담수하고 있고 저수율은 21.3%다. 16일 소수력발전을 통해 섬진강 본류로 초당 2톤의 물을 방류했다. 아직 수위가 낮은 상황이라 본류 쪽 소수력발전을 매일 하지는 못한다.
수공 섬진강댐지사 관계자는 11일 "연평균으로 보면 섬진강 본류 하천유지용수로 7200만톤을 흘려보내고, 김제 만경 쪽 농업용수로 3억6300만톤을 공급한다"며 "하루평균으로 계산하면 김제 만경으로 하루에 99만톤, 섬진강 본류로는 20만톤 정도를 방류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18년 댐 재개발 때 섬진강 본류 쪽으로 소수력발전소를 설치하고 도수관로를 1500mm 구경으로 뚫었다"며 "그 전에는 300mm짜리 관으로 나가는 방류량이 사실상 섬진강 하천유지용수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내일신문은 2000년부터 섬진강댐 본류 방류량을 늘려야 한다는 문제 제기를 해왔다. 재개발 이전 섬진강댐 본류 하천유지용수량은 하루 3만~7만톤에 불과했다.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11일 오후 비가 뿌리는 가운데 섬진강댐에서 곡성군 압록강변까지 섬진강 본류를 따라 내려가보았다. 압록강변은 섬진강 본류와 섬진강 제1지류인 보성강이 만나는 곳이다.
섬진강댐 바로 아래에서는 아예 강물의 흐름이 관찰되지 않았다. 열흘 가까이 하천유지용수가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이 사는 임실 덕치강변에서 섬진강은 겨우 실개천 수준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 회문산 계곡의 물이 더해진 탓이다.
212km에 이르는 섬진강 전체 구간에서 경관이 가장 뛰어난 순창군 동계면 장군목계곡도 강물이 바닥 수준이었다.
장군목에는 유명한 '요강바위'가 있다. 어른 두명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포트홀인데 이런 바위구멍은 1억년 정도 센 물살에 호박돌이 구멍 안에서 굴러야 생긴다. 지금의 섬진강 본류 수량이라면 새로운 요강바위가 만들어질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보성강이 섬진강 본류와 만나는 곡성군 압록강변에 내려가보았다. 수량이 거의 없는 강 하구에 물막이를 하고 물놀이용 보트까지 띄워놓은 곳이었다.
비가 제법 내렸지만 보성강 수량은 서울시내를 흐르는 청계천 정도였다. 섬진강 본류와 제1지류가 만나는 이 장면에서 오랜 고생 끝에 만난 형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우야! 왜 이렇게 야위었니?"(섬진강)
"형! 형이 나보다 더 야위었어!"(보성강)
'섬진강 1' 시에서 김용택 시인은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이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섬진강은 지금 수계 밖으로 너무 많은 빨대를 꽂은 섬진강댐과 주암댐, 보성강댐, 동복댐 때문에 점점 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