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보이지 않는 세상 이야기 - 암흑물질은 정말 존재할까

2023-04-25 11:33:23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

북극성에서 출발해 큰곰자리의 꼬리를 지나 계속 내려가면 '베레니체의 머리'라 불리는 별자리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천문학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가 하나 숨어 있다.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수많은 별들이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코마 은하단(Coma Cluster)이 바로 그것이다.

1933년, 괴짜 천문학자 츠비키는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보통의 천문학자와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에 어딘가 이상한 점이 보였다.

프란츠 츠비키. 출처: https://zwickymeeting.astro.phys.ethz.ch/zwicky.php

라틴어 비스 비바(Vis viva)는 우리말로 활력(活力)을 뜻한다. 물리학적으로는 운동에너지라 보면 된다. 또 다른 물리량으로 포텐셜 에너지란 말이 있는데 이를 보통 위치에너지라 불린다. 높은 곳에 있는 물체는 낮은 곳에 있는 물체보다 더 큰 위치에너지를 가지므로, 굴러떨어져 내려오면 더 큰 운동에너지를 갖게 된다. 한편 여러 물체들이 모여 있을 때 이들이 갖는 위치에너지의 총합에 비례하는 양을 옛날에는 비리얼(Virial)이라 불렀다. 비리얼이 크면 그만큼 물체들의 활력도 커진다.

성단이든 은하들이 모인 은하단이든 중력으로 뭉쳐있는 집단은 얼마나 많은 천체들이 얼마나 조밀하게 모여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비리얼을 갖는다. 재미난 사실 하나는 집단이 평형상태에 이르게 되면 물체들이 갖는 평균 운동에너지와 평균 위치에너지가 서로 비례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물리학자들은 이를 비리얼 정리(Virial theorem)라 불렀다.

츠비키가 발견하고 베라 루빈이 확인

츠비키는 코마 은하단에 비리얼 정리를 적용해봤다. 비유하자면 운동장에서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운동에너지를 관측해서 아이들의 평균 몸무게를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아이들의 체중은 겉모습과 달리 수백배나 더 무거워야 했다. 츠비키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었다. 츠비키가 찾아낸 범인은 바로 암흑물질이었다.


츠비키의 발견은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묻혀 있던 괴짜 천문학자의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서였다.

베라 루빈(Vera Rubin)은 여성 천문학자로 암흑물질의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 인물이었다. 1970년대 루빈은 안드로메다은하의 회전속도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태양계에서 행성들의 공전속도를 보면 태양에서 제일 가까운 수성이 가장 빠르게 돌고, 제일 멀리 있는 해왕성이 가장 느리게 돈다. 수성이 해왕성보다 대략 9배 빠르다. 은하는 많은 별이 군집해 있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을 적용해보면 태양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허블 망원경이 찍은 코마 은하단. 1000여개의 은하들이 밀집해 있다. 출처: J. Mack (허블망원경과학연구원)과 J. Madrid (호주 국립천문대), NASA, ESA

안드로메다 은하. 은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바깥 쪽을 돌고 있는 별들이 만유인력의 법칙과 달리 빠르게 돌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안드로메다가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는 암흑물질 속에 들어 있음을 말해 준다. 출처: 킬라니 주립공원 천문대


그런데 루빈이 관찰한 안드로메다는 그렇지 않았다. 은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돌고 있는 별들의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거의 일정한 속도로 빠르게 돌고 있었다.

답은 둘 중 한가지였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틀렸거나, 아니면 안드로메다가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속에 잠겨있다는 결론이었다. 40여년 전 츠비키가 주장했던 보이지 않는 물질이 다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아리조나주 로웰 천문대에서 관측을 준비하고 있는 베라 루빈(1965). 출처: Carnegie Institution of Washington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천문학자들은 백색왜성이나 블랙홀처럼 관측하기 힘든 천체들이 숨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범인의 이름을 마초(MACHO)라 짓고 검거에 나섰지만 지금까지의 관측결과로는 마초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물리학자들은 입자에 주목했다. 특별히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무거운 입자가 있다면 암흑물질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윔프(WIMP)라 이름짓고 찾아 나섰지만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암흑물질은 원래 없었고 뉴턴의 중력이론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암흑물질 연구에 두드러진 한국인

암흑물질 연구에는 한국인 과학자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고 이휘소 박사는 윔프의 이론적 틀을 제시했으며, 1970년대 말 김진의 교수가 제안한 액시온 입자는 현재 강력한 암흑물질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한양대 신상진 교수와 중원대 이재원 교수가 주창한 퍼지암흑물질(FDM) 이론은 기존의 암흑물질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설명해 내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꽁꽁 숨어 있는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물리학자와 천문학자의 공조는 이미 시작됐다. 애초에 뉴턴의 중력이론이 틀렸거나, 아니면 암흑물질이 발견되거나 둘 중 하나로 이 영화는 끝나게 될 것이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