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열풍이 불러온 폐해 '투자중독'

2023-04-28 11:21:03 게재

주식보다 더 큰 중독성 … 24시간 매달리다 일상 무너져

젊은층 좌절감에 몰두 … 중독 치유에 사회적 관심 필요

코인 투자 열풍이 불러온 사회적 문제는 범죄에 국한되지 않는다. 코인 투자에 빠져 일상이 무너지는 '투자중독'은 코인 열풍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투자중독은 범죄보다 더 광범위하고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회적 폐해가 크다.

28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가상자산 거래를 위해 등록된 계정 수는 1177만6115개(중복 포함), 실제 이용자 수는 627만2676명으로 집계됐다. 코인 인기가 한풀 꺾이면서 지난해 6월말 690만637명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경제활동인구 2906만3000명의 21.5%에 달하는 적지 않은 규모다.

이 가운데 투자 중독자가 얼마나 될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중독 증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증가하는 추세는 뚜렷하다.

주식·도박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는 최삼욱 진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코인 열풍 이후 가상자산 중독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증가해왔다"며 "특히 지난해 체감할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코인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다른 투자대상보다도 훨씬 중독되기 쉽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코인은 중독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갖고 있다"며 "진입장벽이 낮고 항상 접근할 수 있는데다 사행성을 기반으로 한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장이 열리는 시간이 제한돼 있는 주식과 달리 코인은 휴대폰만 있으면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거래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상한가, 하한가 없이 변동성이 커 투자자들이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다. 밤새 코인에 집중하느라 밤잠을 설쳤다는 대학생, 직장인들이 많은 이유다.

특히 젊은층에서 코인 투자 열풍이 일었던 데에는 이같은 코인의 특성 뿐 아니라 취업이 어렵고 직장을 구해도 월급만으로는 내집 장만을 꿈꿀 수 없는 경제적 현실도 한몫했다. 경제적 좌절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투자에 나서면서 마치 투자하지 않으면 세상에 뒤처지는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홍 교수는 "코인 중독은 세상을 비관하고 빠르게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며 "투자를 권하는 사회가 이러한 욕구를 증폭시킨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코인 투자를 통해 '대박'을 내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코인 투자를 하다 중독에 빠지면 오히려 직장과 학업 등 본업을 잃고, 재산은 물론 인간관계까지 파탄나게 된다.

정보영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중앙센터장은 "처음에는 소액으로 투자했다가 몇 번 수익을 경험하면 빨리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금액이 늘어난다"며 "결국 가지고 있는 재산을 쏟아붓고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심지어는 캐피털, 불법사채까지 손을 대 채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중독 양상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투자중독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내성(점점 더 위험한 곳에 더 큰 액수를 투자) △금단(투자 중단시 불안초조) △집착(투자에 몰두하면서 본업을 등한시) △부정적 결과(금전적·정서적·사회관계상의 문제 발생) △조절장애(투자 중단 시도하나 번번이 실패) △금전적인 의존상태(투자금이나 빚 해결을 타인에 의존) △추격매매(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투자) △은폐(가족이나 주변에 숨김) △회피성 투자(투자 중독으로 인한 괴로움에 벗어나기 위해 투자에 더 의존) 등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4~5개에 해당되거나 이 보다 적은 항목이라고 강도가 심하다면 중독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최 원장 설명이다.

하지만 이미 투자 중독 증상을 보이는 데도 스스로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정 센터장은 "주식이나 코인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는 투자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합리화한다"며 "더 이상 손실을 감출 수 없는 상황에 가서야 가족에 의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만큼 치유도 어렵다. 중독은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워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언제든 다시 투자에 빠져들 수 있어 장기간 치료가 요구된다. 최 원장은 "투자를 경제적으로만 보지 말고 정신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며 "투자중독 문제에 대해 사회적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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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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