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청년들 불러들여 소멸 막는다

2023-05-12 10:33:30 게재

출생-사망 역전에도 유지

괴산군 소멸대응정책 눈길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자리잡은 행복보금자리주택. 방 3개에 화장실 2개를 갖춘 타운하우스 형태의 임대주택이다. 보증금 없이 1년에 180만원만 내면 이 집에서 살 수 있다. 모두 10세대가 마련됐는데 입주경쟁이 치열하다. 단 입주 조건은 초등학생 자녀들 둔 전입 세대다. 아이를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도록 하는 게 목표인 주택이다.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11일 오전 충북 괴산군 소재 숲속작은책방에서 청년마을 관계자, 영농 유튜버 등과 지방소멸대응 정책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행안부 제공


괴산군이 지난해 면 지역 5곳에 이 같은 임대주택을 조성한 덕분에 98세대 349명이 새 주민이 됐다. 더불어 학생수가 20명이 안돼 통폐합 위기에 놓인 백봉초등학교와 장연초등학교 등이 폐교 위기에서 벗어났다. 괴산군은 모든 읍·면 초등학교 주변마다 임대주택을 만들어 폐교를 막고 마을공동체를 유지해갈 계획이다.

청년 농부 6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농업회사법인 '뭐하농'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마을 사업을 계기로 뭉쳤다. 복합문화공간과 카페 등을 운영하면서 도시 청년들의 '두달살이' 사업을 시작했다. 참여 청년들에게 농업기술을 가르치거나 새로운 직업을 찾는 일도 도왔다. 2021년 5월 사업을 시작할 때 23명이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무려 18명이 괴산에 정착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들 중 한 쌍의 청년은 13일 결혼해 새 가정을 꾸린다. 이지현 뭐하농 대표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청년은 앵무새를 기르고, 기술자는 농부가 됐고, 화가는 작가가 됐다"며 "청년마을은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의 인생을 바꿔놓은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미루마을도 독특한 마을이다. 이곳은 도시생활을 접고 귀촌을 결심한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조성한 전원마을이다. 전체 57가구 중 주말에만 내려와 생활하는 사람들(22가구)을 뺀 35가구가 괴산에 주소를 둔 어엿한 주민이 됐다. 특히 이 마을은 '숲속작은책방'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책방 운영자 백창화씨는 서울에서 잡지 관련 출판업에 종사하다 2011년 남편과 함께 귀촌해 괴산에 정착했고, 2014년에 이 책방을 열었다. '국내 최초 가정식 책방'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 산골마을 책방은 '관광객 서점'으로 알려졌고, 전국에서 방문객이 몰려들었다. 지난해부터는 괴산에 귀촌한 사진관 출판사 책방 대표들과 의기투합해 '책문화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잡지 '툭(toook)'을 발행하고 있다. 백 대표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출판사 작가 책방주인이 모이니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며 "귀촌한 사람들이 지역과 발을 맞추고 연대하면서 새로운 주민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귀촌 도시청년 정책에 초점 = 괴산군은 이 밖에도 다양한 귀촌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한 '산촌청년창업특구 프로젝트' '한지문화산업경제특구 조성' 등도 새로 추진하고 있다. 산촌청년창업특구는 산주학교나 산촌청년학교 등을 운영하며 도시인들의 귀농·귀촌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재 도시출신 청년 5명이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농장'은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업이다. 서울시와 협약해 추진 중인데, 연 20회 500여명을 괴산으로 불러들여 농촌을 체험하게 도왔다. 이 프로그램 참여자 9명은 괴산에 정착해 새 주민이 됐다. 이에 힘입은 괴산군은 올해부터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한 '유기농 정원마을 살아보기' 사업도 진행 중이다. 정기적, 반복적 지역 체류를 통해 정착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괴산군은 이 밖에도 소멸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첫째와 둘째 아이에게는 1200만원, 셋째 아이 이상은 50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준다. 산모 1인당 100만원의 산후조리비도 준다. 만 2세가 될 때까지 기저귀 비용으로 월 8만원을 준다. 여성농업인에게는 80일간 출산도우미도 지원한다. 정원 122명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새로 지었고, 실내놀이터와 장난감도서관 등 보육환경도 갖추고 있다. 모든 중학생에게 연 50만원, 고등학생에게는 연 100만원씩 장학금도 준다.

◆인구 유지 비결 '귀촌' = 충북 괴산군 인구는 3만7000여명.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 중 한 곳이다. 지난해 새로 태어난 아이가 80명인데 사망자는 540여명이나 된다. 교육이나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나는 학생·청년들까지 고려하면 인구 감소가 당연한 상황이다. 하지만 괴산군 인구는 몇 년째 현상유지 중이다. 이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78명인 상황에서, 그것도 전체 면적의 76%가 산림인 전형적인 농·산촌 지자체가 인구를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송인헌 괴산군수는 "귀농·귀촌 청년들과 은퇴자들이 줄어드는 인구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며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자연환경을 활용한 정주여건을 만드는 정책을 유지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은 11일 충북 괴산군 숲속작은책방에서 청년마을 관계자, 영농 유튜버 등 지역에 정착한 도시청년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부의 지방소멸 정책 효과와 과제 등을 논의했다. 한 차관은 이 자리에서 "국정목표인 지방시대 구현은 어느 곳에 살든지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주민과 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어 지방이 살아나는 전략을 마련하고, 정부가 힘을 보탬으로써 지방소멸 위기를 타개할 단초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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