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가족'의 시대로 … 관심·반대 동시에 받는 '생활동반자법'

2023-05-15 11:19:23 게재

비친족 가구원 100만명 … '다양한 관계' 수용 필요성

"생애 길어지면서 다양한 관계 경험할 가능성 커져"

국회 입법예고 사이트에는 반대 의견 쇄도

전통적인 가족 모델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를 제도 안에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기독교계에선 '사실상 동성혼 허용법안'이라며 반대 운동을 벌이는 등 반대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4월 26일 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회견 후 생활동반자관계증명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용혜인 의원실


15일 생활동반자법을 대표발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국회에서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 토론회를 열고 생활동반자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용 의원은 축사와 기조발제를 통해 "국민 10명 중 7명은 혈연과 혼인을 하지 않더라도 생계를 함께 하고 있다면 가족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법은 이러한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국가가 모든 국민이 맺고 있는 다채로운 관계들을 지원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남성생계부양자와 여성돌봄전담자,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기존 '정상가족' 모델은 점차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2000년 44.5%를 차지했던 전통적인 가구 비율은 2021년에 18.8%로 줄어들었다. 반면 혼자 살거나 다양한 유대를 실천중인 1인 가구 비중은 같은 기간 동안 15.5%에서 33.4%로 늘어났다. 비친족 가구원은 2021년 조사에서 10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친구가족, 노인돌봄공동체, 중장년 동거 커플, 퀴어 커플, 장애돌봄공동체 등 수많은 관계로 구성된 새로운 가족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도 점차 높아지는 중이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조사를 보면 '혼인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데 응답자 중 61.7%가 공감했다.

이번에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에 따르면 성년이 된 사람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함께 사는 친구, 결혼을 준비하는 연인, 이혼이나 사별 후 여생을 보낼 사람, 동성커플 등 다양한 형태의 생활동반자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쌍방이 관계 해소에 합의했거나 일방이 해소를 원하는 경우 등에는관계 해소가 가능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생활동반자법이 이미 다수 국가에서 제도화돼 있다는 점, 기존 전통 가족의 해체 및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성별과 무관한 시민결합을 인정하는 국가로서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안도라 뉴질랜드 체코 슬로베니아 스위스 우루과이 헝가리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몰타 크로아티아 칠레 키프로스 그리스 에스토니아 이탈리아 북아일랜드 산마리노 모나코가 있다"면서 "사회적 현상으로서 발생하는 비혼 동거가족의 유형을 생활동반자로 포섭하여 법제도로서 보호하려는 목적은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평가했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21년 비친족 가구에 속한 가구원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며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친밀한 누군가와 생활을 공유하는 관계가 1인 가구나 비친족 가구 통계에 포함되어 있을 것을 고려하면 한국 가족의 다양성 증가를 엿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변 연구위원은 "과거와 비교해 개인의 생애가 길어졌기 때문에 한 개인이 여러 유형의 가족이나 다양한 관계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친밀성을 가지고 돌봄을 공유하는 동반자 관계를 보호하는 생활동반자법은 특별한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기독교계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을 동성혼 합법화의 길을 터주는 법으로 보고 입법 반대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도권기독교총연합회 등 1200여개 단체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국회 입법예고 사이트에는 해당 법안에 대한 1만8973건의 의견이 등록됐는데 이 중 다수가 반대의견이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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