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우 온다는데 유수지(빗물 저장 및 방류시설) 없앤다고?

2023-05-22 12:07:26 게재

주민들 "침수피해 우려, 유수지 지켜야"

전문가 "앞뒤 안맞는 정책, 재검토 필요"

서울시 "면적 줄여도 치수 용량은 유지"

유수지 상부를 주차장이나 체육시설로 활용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부족한 도시공간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주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유수지를 덮고 그 위를 활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서울시가 빗물저장 시설인 유수지를 줄여 주택을 짓는 사업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빗물이 담겨 있는 방화 유수지 모습. 사진 서울시 제공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전역 유수지는 52개이며 이 가운데 완전복개 된 것이 9개, 부분복개 된 것은 29개다. 복개하지 않고 유수지 기능만 하는 곳은 14개다.

유수지가 서울 치수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집중강우 시 저지대 및 배수불량지역의 빗물을 조절하고 펌프 등을 사용해 하천으로 빗물을 강제 방류하는 기능을 한다. 시는 유수지를 덮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경우에도 용량 변화는 없다고 주장한다. 주변 수방시설을 증량 또는 개선해 기존 용량을 유지하는 것을 용도 변경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유수지는 평소에는 총 저장 용량의 30%만 쓰기 때문에 여유가 있고 만약 계속되는 이상기후로 용량 확대가 필요하면 넓이는 못 늘려도 깊이를 보강해서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서울시 주장에 대해 "이론적인 얘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방재 분야 한 관계자는 "유수지를 넓히는 건 쉽지만 아래로 깊게 파는 수직증축은 비용과 기술이 상당히 필요한 일"이라며 "차라리 새로 만드는 게 나을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유수지 위 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또다른 이유는 '불가역성' 때문이다. 주차장이나 축구장 등은 유사 시 복개를 허물어 원래대로 되돌리거나 저수 용량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주택 같은 대규모 건축물은 이 같은 조치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유수지 용량을 회복하는 공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예측한다. 서울시 52개 유수지의 저장 능력은 대부분 30년 빈도에 맞춰져 있다. 52개 중 46개가 30년 빈도이며 20년 빈도(1개), 10년 빈도(3개)로 설계된 곳도 있다. 50년 빈도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2개 밖에 되지 않는다.

용산 유수지 일부 폐쇄와 고층 건물 신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침수 위험을 호소하고 있다.

최교천 용산유수지 축소반대 및 고층건물신축 반대 주민대책위원회 간사는 "환경부 연구발표에 따르면 100년에 한번 올 만한 홍수가 이제는 3년 7개월마다 온다고 한다"며 "서울시도 100년에 한번 올만한 홍수에 대비해 수해방지 시설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구와 서초구에 각각 시간당 116㎜, 115㎜ 비가 왔고 동작구엔 무려 141.5㎜가 쏟아졌다. 강남, 서초구는 150년과 100년, 동작구는 500년만에 발생한 최대 강수량이었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용산구엔 폭우가 오지 않았지만 이번에 축소하려는 유수지 일대는 비만 오면 빗물과 하수가 모여드는 늪지대로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일어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일대는 과거 심각한 침수 피해를 겪은 일도 있다. 2010년 9월 폭우로 하루 강수량이 263㎜를 기록했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이 침수돼 전동차 운행이 중단됐고 현재 용산 래미안 아파트 자리에 있던 농협건물에서 침수가 발생, 1명이 사망했다.

서울시 수방대책 자문을 맡았던 한 방재 전문가는 "서울시가 부동산 폭등 때문에 서울 곳곳 빈땅을 찾아 공공주택을 짓는 사업을 벌였는데 유수지들이 그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택공급이 중요하지만 안전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면서 "비 피해를 막기 위해 수조원을 들여 수방대책을 세우면서 한쪽에선 홍수 조절에 큰 역할을 하는 유수지를 축소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며 이제라도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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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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