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급등 … 전기·가스요금 못 올려 '빚더미'
한전 누적빚 193조원 최다, 가스공사 미수금 9조원대 … "탄소중립 정책목표 차질"
▶ "에너지 공공기관 빚, 작년 70조 늘어" 에서 이어짐
또 한국도로공사(35조8000억원), 국가철도공단(20조4000억원), 한국철도공사(20조원), 한국석유공사(19조8000억원), 한국수자원공사(12조4000억원) 등이 10위권에 들었다.
◆사상최대 손실 행진 = 한전의 부채가 대폭 커진 것은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지만 전기요금이 그만큼 인상되지 않아 대규모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2조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전의 영업손익은 2020년 4조1000억원 흑자에서 2021년 5조8000억원 적자로 돌아섰고 지난해 적자 규모가 32조원 수준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한전의 영업손실 역시 전체 공공기관 중 가장 컸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2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착시 효과'가 작용했다.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폭등에도 서민 경제 안정을 위해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9조원 가까이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수금은 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가스요금으로 회수되지 않은 판매 손실금이다. 올해 1분기에는 가스공사의 영업이익이 588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35.5% 줄었다.
◆탈석탄 계획 차질 우려 = 한편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의 대규모 적자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와 주목된다. 채권 시장 혼란, 전력 생태계 붕괴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선 한전의 적자가 중장기 탄소중립 계획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달 발간한 스튜어드십 관련 보고서에서 한전이 목표로 제시한 탈 석탄과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한전의 쌓여가는 적자로 인한 재무 불확실성이 배경이다.
한전을 비롯한 전력공기업 7개 사는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고, 탄소 배출량이 사실상 '제로'에 수렴하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석탄을 해상풍력, 수소, 태양광 등 탄소 배출이 없는 발전원으로 완전히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JP모건은 "한전의 탄소중립 선언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에너지 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지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만 이를 위한 한전의 자금 조달 여력은 우려 요인"이라며 "회사가 구체적인 중장기 목표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채 자금조달도 한계 = 실제 한전은 작년에 32조655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올해 1분기에도 6조177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JP모건은 "한전이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지만, 투자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나 관련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지만, 한전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한전은 이미 10조원이 넘는 한전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말 기준 총부채는 192조8000억원으로 부채비율은 460%를 기록했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올해 초 "한전이 신재생에너지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하면서, 한국의 탄소중립 추진 속도가 다른 국가에 뒤처지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2020년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G20 국가 중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낮았다"고 했다. 지난해 같은 기관이 발표에서 한국의 풍력, 태양광 발전 비중은 4.7%로 전 세계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미국 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IEEFA) 역시 보고서를 통해 한전의 재생에너지 투자가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했다. IEEFA는 한전이 변동성이 크고 비싼 화석연료를 고집한 것이 재무 위기 악화로 이어졌고, 일반 채권에 비해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는 녹색채권 발행액도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