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 교수의 전공 파격 03 | 수포자·물포자를 포기한다?
‘자기 주도 학습’ 이끄는 대학 수업
2023-05-26 16:50:26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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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챗GPT? 가속화된 디지털 전환 주목
최근 대학생들의 학업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습니다. 예상하셨나요? 네, 바로 챗GPT입니다. 미국의 오픈AI사가 출시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로,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대학생들은 챗GPT를 활용해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넘어 프로그래밍에 대한 조언까지 구합니다. 즉 챗GPT를 활용하는지 안 하는지, 또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에 따라 과제물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대학처럼 직업 환경 역시 챗GPT로 인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챗GPT의 시대엔 무엇이 필요할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빌리티 산업을 다룬 지난 칼럼에,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또는 디지털 문해력의 중요성을 언급했죠? 이보다 더 확장된 AI 리터러시(AI Literacy) 또는 인공지능 문해력이 필요해질 겁니다. 과거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많은 지식을 습득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정보 자체는 인터넷에 널렸죠. 정보를 빠르고 적절하게 검색하면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앞으론 빠르고 적절한 정보 검색은 인공지능이 대신해줄 거예요. 대신 새로운 도구를 잘 만들거나, 새 도구를 누구보다 잘 사용해 생산력을 높이는 사람을 주목하겠죠. 이러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디지털 경험(Digital Experience)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바일,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로봇 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산업 분야에서도 이에 기반한 자동화, 지능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 기업 경영, 고객 관리, 운영 프로세서 등의 전 분야에서 혁신이 이뤄지고 있고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우리 곁에서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미지확대디지털 시대, 대학 교육 키워드 ‘자기 주도’ ‘성실’ ‘도전’
그렇다면 대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대학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새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전 그 전략의 핵심에 ‘자기 주도 학습’을 두고 있습니다. 학생 스스로 디지털 문해력을 습득하고 디지털 경험을 쌓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종전처럼 교과목을 정해 끌어주는 것만으로는 이제 부족합니다.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신문물을 접하고 써보며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앞으로 대학 교육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 봅니다. 이 자기 주도적인 학습은 ‘성실성’과 ‘도전 의식’을 요구합니다. 디지털 기기가 많은 일을 대신 해줄 텐데 왜 여전히 성실성이 필요할까요? 기술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개선과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생하는 문제들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협업할 일도 많고요. 이때 문제의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타인과 원활하게 소통해야 하죠. 불성실하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어렵고, 타인과 협업하긴 더 힘듭니다. 또 새로운 첨단 기술을 탐구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적응하려면 ‘도전 의식’이 필수죠. 실패를 경험 삼아 성장을 도모하고,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데도요.자격증은 1학년, 교양은 4학년? 의미 있는 거꾸로 ‘교육과정’
앞선 세 키워드는 뻔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실제 대학 교육에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지, 제 수업을 예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저는 모빌리티 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는 ‘미래모빌리티전공’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신입생들은 ABCD(AI BigData Coding Design)를 배웁니다. 디지털 시대에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교과목을 1학년에 배치한 셈이죠. 반면 교양은 2~4학년에 배우도록 구성했습니다. 일반적인 순서와는 좀 다르죠? 고등학생 때는 접하기 힘들었던 ‘디지털 경험’부터 충분히 체험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1학년 1학기는 CD(Coding Design) 기초 역량에 집중합니다. 1학년 1학기 수업의 최종 목표는 자율주행자동차 제작입니다. ‘자율주행’과 ‘인포테인먼트(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 기술을 익혀야 가능하죠. ‘코딩’과 ‘디자인’에 뿌리를 두기에 1학기 동안 집중 학습합니다. 배경지식이 없는 학생들에게 어려울 것 같지만, 실습 중심이라 대부분 재미를 느낍니다. 이때 설계 자격증도 취득합니다. 보통 자격증은 고학년 때 취득한다고 들었을 겁니다. 1학년 때 부담스럽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고학년 시기는 전공에 가장 집중해야 할 시기입니다. 자격증 공부에 시간을 쏟게 된다면 오히려 더 부담이 큽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1년 앞의 기술 변화를 내다볼 수 없는 상황, ‘범위가 정해진’ 자격증 시험을 미리 준비하면, 사회 진출을 앞둔 고학년 때 유연하게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겠죠. 이런 이유로 1학년 때는 코딩, 디자인, 그리고 CATIA V5 Mechanical Design, Assembly Design 등의 설계 자격증 취득을 중심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수포자·물포자 변심 이끄는 자율주행자동차 제작 수업
CD 기초 역량을 기른 후 학생들은 자율주행자동차 제작에 나섭니다. 시작은 가상현실 구현입니다. 1학년 교과목 중 하나인 CAD를 통해 가상현실을 만들어내죠. 프로그래밍 능력도 필요합니다. 또한 학생들은 자율주행자동차를 위한 가상(Virtual) 설계 과목을 통해 ‘버추얼 트윈(Virtual Twin)’을 배웁니다. 버추얼 트윈은 가상현실에 제품을 단순 구현하는 것을 넘어, 충돌이 발생하면 그 충돌로 인한 제품의 상태 변화까지 구현해내는 기술입니다. 주행 중 다양한 변수에 대처하고,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자율주행차의 과제인 만큼 제작 과정에서 중요한 기술이겠죠? 특히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원리를 고민하고, 물리와 수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초음파 센서로 거리를 측정해서 감속을 하는 것에서 가속도 공식을 사용하고, 지자기 센서를 이용해서 회전 변환을 만드는 행렬식을 구하고 이를 프로그래밍합니다. 실습을 통해 원리를 몸으로 체감하고 활용하면서 더 쉽게 이해하고요. 그렇다 보니 고교 때까지 수포자·물포자였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물리, 수학 공부를 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도 비슷합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변수를 예상해 구축해야 하는 자율주행 시스템, 마찬가지로 다양한 부품이 조화를 이뤄야 움직이는 완성차 둘 다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를 쉽게 풀어내려면,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야 하죠.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 빅데이터 기술도 써야 하고요. 이를 반영해 수학, 물리, 프로그래밍, 버추얼 트윈 4개의 전공 수업을 만들고, ‘자율주행자동차제작1’ 수업으로 연결했습니다. ‘프로젝트 중심형 학습(Project Centric Learning)’이죠. 특히 학생들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4개 전공 과목의 진도에 맞춰 ‘자율주행자동차제작1’ 과목에서 직접 응용하며 실습하는 구성입니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배운 것이 실제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움직이고 제 길을 찾는 차를 보며 성취감을 맛봅니다. 또 ‘배우는 즐거움’을 알고 스스로 노력하게 되고요. 앞서 말한 성실성과 도전 의식, 자기 주도성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셈이죠. 다음 호에선 이러한 교육을 통해 성공을 거둔 학생들과 포기한 학생들의 사례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사례를 잘 참고해서 여러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내일교육 기자 naeiled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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