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민주화 공로 인정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20년 넘게 자동폐기 '민주유공자법', 이번엔 꼭 처리해달라
"특혜 비판하지만 특혜 받을 처자식 없어, 부모도 70% 사망"
"혜택을 받으려야 받을 가족도 없습니다. 다만 민주주의 발전에 공이 크다는 인정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6.10 민주항쟁 36주년 기념일을 앞둔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장남수 회장의 얼굴은 어두웠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 다가왔지만 그 밑거름이 됐던 희생자들이 여전히 유공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장 회장은 경원대학교 재학 중 학원자주화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 경찰의 고문수사와 학교측의 집단구타로 지난 1995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분신 산화한 고 장현구 열사의 아버지다. 장 회장을 비롯한 유가협 회원들은 2021년 10월부터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처리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부터는 릴레이 단식도 이어오는 중이다. 장 회장도 82세 고령임에도 5일간 단식에 참여했다.
현재 국가가 인정하는 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는 4.19와 5.18 관련 공헌자들 뿐이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4.19 관련 희생·공헌자들을,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5.18 관련 희생·공헌자들을 각각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보훈 대상자로 분류돼 국가와 민주주의 발전 기여자로 예우 받고 교육·취업·의료 등의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다른 시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유가협이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여 1999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이 법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망자·부상자 등을 민주유공자가 아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분류하고 있다. 6월 항쟁의 불씨가 됐던 박종철·이한열 열사,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운동을 일으킨 전태일 열사 등은 모두 민주유공자가 아닌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일 뿐이다.
민주유공자법은 이들처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희생된 노동자·농민·학생 열사들을 국가 유공자로 예우하자는 법이다. 민주유공자법이 처음 발의된 것은 15대 국회인 1998년이다. 이후 국회가 바뀔 때마다 민주유공자법이 발의됐지만 대상이 모호하다거나 정당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자동폐기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장 회장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으니 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20년이 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민주유공자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반대로 심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운동권 세습법', '셀프 보상법'이라며 이 법에 반대해왔다. 민주유공자 유가족에게 교육·취업 등의 지원을 하도록 한 조항이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 자녀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우 의원이 발의한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을 갔거나 해직·징계를 받은 이들을 제외하고 사망자와 부상자, 행방불명자로 적용대상을 제한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이 법의 대상이 되는 민주유공자 본인은 829명, 유가족은 3233명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교육·취업 지원은 30세 이하 자녀 1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이 법이 통과돼도 지원을 받는 이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장 회장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이들은 대부분 미혼이어서 처자가 없고, 부상자 자녀들도 이미 다 성장한데다 부모들도 70% 가량 돌아가셔서 혜택을 받으려야 받을 사람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것에 대해 장 회장은 "특혜지원이니 하는 것은 구실이고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면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게 싫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 회장은 "대한민국이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권위주의 정부에 항거하다 희생당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당사자나 가족들이 불순분자, 빨갱이 취급당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가가 공식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공이 크다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장 회장은 여당의 반대에도 21대 국회에서 민주유공자법이 처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유가협 회원들이 천막농성과 단식까지 하는 것은 국민의힘을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민주당에게 의원 수가 많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처리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는 지난달 31일 단식 농성장을 방문한 바 있다.
장 회장은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6월 중에 상임위를 통과시키고 연말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시기를 놓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민주유공자법이 국회에서 최종 통과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