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1000만 관객 신화 거품있나

'28시 30분' 예매? … 경찰, 사재기 수사

2023-06-28 11:28:29 게재

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이상예매 상당수

새벽에 수만건 예약, 하루새 30% 예매 취소도

경찰이 영화 관람객 순위(박스오피스) 조작 의혹과 관련해 주요 영화관과 배급사들을 상대로 강제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영화표 사재기 등에 대한 의혹이 커져가고 있다.

28일 경찰 관계자는 "관련 기관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도 압수물과 함께 분석중"이라면서 "예약과정에서 매크로 기법이 사용됐는지, 순위 조작 의혹 등 전반적 구조에 대해 실태를 파악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예매 실태. 실제 존재하지 않는 28시 30분과 27시 40분에 상영하는 영화가 매진됐다는 표시. 사진 류호정 의원실 제공

지난 15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CJ CGV 등 영화사 3곳과 배급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내일신문이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영화진흥위원회의 박스오피스 집계 결과에도 석연치 않은 이상예매 흔적이 상당수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27시나 28시 등 존재하지 않는 시간대에 예매를 받고선 매진이 된 경우다. 당시 사재기 의혹이 제기되자 영진위는 이들 실적을 박스오피스 집계에서 제외했다. 해당 영화관과 배급사는 '테스트였다'고 해명한 바 있다.

◆심야 예매 수두룩 = 자정 이후 1만건 이상 예매가 이뤄진 경우도 상당했다. 야간에 하루 1만장 이상 예약이 된 것은 최근 5년간 36편, 94건(하루 기준)으로 나타났다.

2018년에는 '어벤저스:인피니티 워'와 '신와함께:인과 연' 등 12편, 2019년 '어벤저스:앤드게임' '백두산' 등 15편이 자정 이후 1만건 이상 예매가 이뤄졌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크게 줄었다. 2020년 심야 예매 1만건은 한편도 없었고, 2021년에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더 박스' 두편에 불과했다. 2022년에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 등 외화 4편, 국내 영화는 '비상선언' '범죄도시 2' '그대가 조국' 등 3편이 심야 1만건 이상 예매를 기록했다.

이러한 예매는 개봉 1주일차에 집중됐다는 점에 경찰은 주목하고 있다. 개봉 1주일이 지나면 야간에 대량 예매가 거의 없었다. 개봉 초기 박스오피스 진입을 위한 사재기를 하고선 이후에는 사재기를 중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심야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일신문 취재 결과 다수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매크로를 통한 사재기'를 인정하고 있다.

한 영화마케팅 업체 관계자는 "'개봉빨'을 위한 매크로 예매"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인터넷 예매는 1인당 4장만 예약할 수 있는데, 심야에 과도한 예매가 이뤄지는 것은 주간에 일반 관람객들의 예매를 방해하지 않고 안정적 대량 예매를 하기 위한 방식"이라며 "동호인들 사이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심야가 아닌 오전으로 분산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개봉 직후 사재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현재 영화관의 상영 시스템 때문이다.

한 영화 제작자는 "오랜 관행이었다"고 입을 뗐다. "개봉 1주일 성적이 상영관에 영화가 계속 걸리느냐 아니냐를 결정 짓기 때문에 일부가 무리한 활동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관련업계가 군중심리를 이용한 '밴드웨건 효과'를 노린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불법 여부는 관련 기관이 판단할 일이지만 관련 업계가 시장을 왜곡하고 소비자 눈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밴드웨건 효과는 요란한 연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악대'에서 유래했다. 주로 기업이 충동구매를 유도할 때 활용된다. 영화가 개봉 이후 매진 행렬을 이어가면 일반 관객들이 앞다퉈 예매하도록 한 것을 의미한다.

배급사와 영화관의 유착관계를 묻자, 한 영화관 관계자는 "이상 예매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며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10장 예매, 3장은 취소 = CJ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영화표를 예매하고선 취소하는 비율도 상당했다. 최근 5년간 202편의 영화가 하루 1만건 이상 예약이 취소됐다.

2022년 대량 예약 취소가 이뤄진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멀티버스' 등 31편으로 조사됐다. 이중 '더 배트맨'은 개봉당일 3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27만2375건(장)이 발권됐다. 하지만 30.24%인 8만2373건이 취소됐다. 더 배트맨은 개봉 후 5일간 17.38~30.24%의 예약 취소율을 보였다.

2021년 최고 예매취소율은 보인 것은 '매트릭스:디저랙션'으로 개봉 초기 5일간 22.34~31.81%의 예매취소율을 기록했다. 2020년 8월 개봉한 '테넷'은 개봉당일 21만837건 예매됐는데, 35.7%인 7만5266건이 취소됐다.

업계 관계자는 "매크로를 통해 영화를 예매한 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취소수수료가 부과되기 전에 예매를 취소한다"고 말했다.

박스오피스 실적 포함되지 않더라도 매진 실적이 있거나 좌석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늘기 때문이다.

류 의원은 "박스오피스 순위는 관객들이 영화 선택 시 고려하는 기준 중 하나인데, 이러한 행태가 사실이라면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볼 수 있다"며 "관객들이 박스오피스를 다시 신뢰하려면 수사를 통해 사재기 정황이나 통계 조작이 있었는지 투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스오피스가 공신력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가 영화업계 관계자들과 소통해 이와 같은 불공정 행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대안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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